[Opinion] 어느 날, 우리는 집에 갇히게 되었다 [영화]

낯설고도 익숙하게, 일상을 재정립하는 영화 <핑크 클라우드>
글 입력 2022.04.0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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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지구의 맑은 하늘에 분홍색 구름이 나타난다. 솜사탕처럼 달콤해보이는 이 구름은 10초간 흡입하는 것만으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유해성을 갖고 있다. 해변에서 몰려온 '핑크 클라우드'는 점차 증식해 도시 상공을 뒤덮고, 사람들은 곳곳에서 무방비하게 죽어간다. 정부에서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창문과 문을 걸어 잠근다. 그렇게 반강제적인 격리 생활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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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울리 제르바지 감독이 만든 브라질 영화 <핑크 클라우드>의 줄거리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본 건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의 온라인 상영을 통해서였다. 영화제가 열린 21년 7월은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시행되던 때이자, 밀접 접촉자로 분류된 내가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한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다. 그런 나에게 영화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라는 현실의 은유처럼 느껴졌다. 소설 <페스트>처럼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예견한 셈이다.

 

그러나 감독의 의도는 이와 달랐던 듯하다. 영화 시작 전, 감독은 본 작품의 각본을 2017년에 쓰기 시작해, 코로나 이전에 촬영을 마쳤다고 밝히며 '핑크 클라우드'가 뜻하는 바를 생각해 보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재난을 맞닥뜨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인간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원나잇을 즐기기 위해 만난 지오바나와 야고는 갑작스러운 재난 사태로 하루아침에 동거인이 된다. 집에 가지 못하게 된 야고는 간병인과 단둘이 있는 아버지를 걱정하며 불안해한다.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서는 간병인에게 돈을 부쳐야 하는데, 척추치료사로 일하는 그는 환자를 만나지 못하면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웹 디자이너 지오바나는 실직자가 된 야고를 위로하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실감할 수 있는 타인이 상대방뿐인 생활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사귀는 사이로 발전하고, 이내 아이를 가진 부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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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겨울이 오면 구름이 걷힐 거라는 희망을 품고 버텨보지만, 계절이 바뀌어도 하늘은 여전히 시리도록 달콤한 분홍빛이다. 끝이 없는 격리 생활 속에서, '핑크 클라우드'를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는 점차 역전된다. 어느 순간부터 이 상황을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적응한 야고와 달리, 이 상황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지오바나는 시간이 갈 수록 지쳐간다.


불안해하던 야고를 위로해주던 지오바나는 이제 하루종일 인터넷을 들여다보며, 슈퍼마켓에 갇혀있던 사람끼리 싸우던 중 살인이 일어났다든가, 누가 투신했다든가 하는 암울한 이야기들을 그에게 전해준다. 야고는 절망적인 현실을 되새김질하는 지오바나를 "손쓰지 못할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 여기며 답답해한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뉴스에 취약해, 일부러 외면할 때가 많은 나로서는 스트레스를 알아서 키우는 지오바나가 이해되지 않았기에 야고의 심정이 어느 정도 납득 갔다. 이 상황이 괴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해결책을 강구할 수 없다면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빨리 수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처럼 '안'에서 살든가 '밖'에서 죽든가, 극단적인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다면 더더욱 말이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영화를 보는 내내 야고의 처지에 더욱 공감했는데, 그럼에도 그를 도저히 비호할 수 없었던 상황이 있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지오바나에게 야고가 넌 조금도 희생도 하지 않으려 한다고 쏘아붙이는 장면이다. 같은 여자로서 감히 말해보건대, 그게 어떻단 말인가? 다른 무엇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손실을 감수할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러나 야고는 자유를 누리고 싶어하는 지오바나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던 지오바나는 결국 임신을 하게 된다. 이 결과가 지오바나의 의지인지는 알 수 없다. 영화상에서 야고와 지오바나가 임신을 놓고 다툰 것은 그로부터 한참 전의 일이고, 임신 이후부터 출산까지의 과정은 생략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임신에 대한 동의나 대화가 나오지 않는 건 다소 의도적인 연출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지오바나는 무척이나 예뻐하고, 아낀다. 그렇다면 어찌 됐든 잘 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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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론이 그렇다고 해서 '결국'이라는 부사를 지워버릴 수는 없다. 어느 날 몰려온 '핑크 클라우드'가 아니었다면, 지오바나와 함께 갇힌 사람이 야고가 아니었다면, 그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낳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지 않으려던 지오바나가 엄마가 되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렇기에 부자연스럽다. 지나치게 성녀화된 모성애는 여성에게 때때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사랑하고, 기꺼이 희생하라고 강요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핑크 클라우드가 가진 의미를 유추해 보고 싶다. 그중 하나는 여성성, 모성을 비롯한 전통적인 성 역할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성녀' 혹은 '마녀' 둘 중 하나다. 사회가 제시하는 어머니, 아내, 딸이 되어 가부장제에 부역하는 여성은 전자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은 후자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회는 전자에 속하는 여성들을 숭고하고, 고결하며, 아름다운 존재로 그려왔다. 성녀 프레임은 여성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고, 하나의 표준을 벗어나는 여성을 부정하고 배척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혐오가 된다. 이러한 혐오는 '핑크 클라우드'가 그러하듯, '모성애'라는 보기 좋은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하늘을 뒤덮은 분홍색 구름에 익숙해진 것처럼, 이러한 관습은 우리의 삶에 무서울 정도로 당연하게 스며들어있다. 지오바나가 VR 기계가 보여주는 가상세계에 빠져든 것은 단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함이 아니다. 무엇이 진짜 현실인지 계속해서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오바나에게 있어 '핑크 클라우드'는 언젠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지,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거기에 적응한다는 건 곧, 이전의 자신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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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기계가 망가진 후 지오바나는 기계를 새로 사는 대신, 오랫동안 닫혀있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간다. 지오바나에게 있어 '안'은 더 이상 '안'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다. 그 속은 지오바나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핑크 클라우드'가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구름은 대기 중의 물방울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액체에 조금 더 가깝지만, 물이 기화하면 수증기가 된다는 점에서 기체가 될 가능성 또한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집 안으로 스며들 가능성도 없지 않은데, '핑크 클라우드'는 결코 닫힌 틈새들을 열어젖히지 않는다. 그로 인해 생명체 대 멸종이 아니라, 격리 생활이라는 현 상황에 놓인다. 이는 격리 생활이라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지만, 감독이 의도한 바를 드러내는 교묘한 설정이기도 하다.


'핑크 클라우드'는 결코 '안'으로 침투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밖'에 있는 사람들은 꼼짝없이 죽었다는 뜻이다. 영화에서 묘사되다시피 집이 없는 노숙인들은 이 '핑크 클라우드'의 가장 확실한 희생자가 된다. 이 '안'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지오바나의 동생인 줄리아는 데보라의 집에서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를 하던 도중 그 집에 갇히게 된다. 그곳에 있는 유일한 어른은 데보라의 아빠다. 영화 초반 보호자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던 그는 딸 또래의 아이들과 성관계를 맺고, 임신시킨다.(동의했다고 하나, 도망칠 곳도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그게 정말로 선택일 수 있겠는가?) 지오바나의 친구인 사라는 홀로 집에 갇혀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며, 지병이 있는 야고의 아버지는 간병인이 죽은 후 치매에 걸린다.


로맨틱한 색을 띤 '핑크 클라우드'는 판타지적 상상력을 품고 있지만, '핑크 클라우드'가 불러일으키는 위험은 더없이 현실적이다. 재난 상황에서 보급 물자는 튜브를 연결할 집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제공된다. 누군가 튜브를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의 '자유'만 공급받을 수 있다고 불평할 때, 누군가 그런 자유를 누릴 튜브조차 갖지 못한다. 독거노인, 아픈 사람, 홈리스, 어린 여자 아이들... 장르가 SF로 달라져도, 가장 외진 곳에 있는 자들이 가장 위험한 건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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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바나와 야고가 겪는 '억압'의 차이 또한 여기서 발생한다. 슈퍼마켓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 찍힌 CCTV 영상을 보여주며 사람이 죽었다고 불안해하는 지오바나에게, 야고는 조작된 그건 3D 영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지오바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하는 말이겠지만, 지오바나는 이에 맞서 여러 각도에서 촬영된 동영상을 들이민다. 이런 지오바나의 모습은 야고에게 있어 편집증적 환자와 다름없다. 나 역시 처음에는 지오바나가 편집증적 사고에 사로잡혀, 굳이 사서 걱정을 하고, 과민할 정도로 불안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야고가 질렸다는 얼굴로 돌아선 뒤 혼자 남겨진 지오바나를 보는 순간, 지오바나가 왜 '굳이'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갔다. 야고에게 있어 영상 속 내용이 사람들의 불안을 조장하고 이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으로 조작된 영상일 여지가 있는 것이라면, 지오바나에게 있어 그건 실현 가능한 위협이다. 지오바나는 "밤에 혼자 거리를 걸으면 가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무서울 때가 있었어. 그러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발걸음을 더 빨리했지. 잔뜩 긴장한 채로."라고 말하는 사람이니까.


야고가 "그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언제 또 나가게 될까?' 그는 생각했다. 참 재미있었다. 그는 지금 섬에서 별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본토로 돌아가고 싶지도, 그 많은 근심 걱정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열린 창문으로..."라는 라디오를 들을 때, 지오바나는 "구름에는 나쁜 점도 많지만 분명 좋은 점도 있어요. 납치랑 강도가 완전히 사라졌잖아요. 자동차 사고도 안 일어나고요."라는 인터뷰에 "그거야 차까지 가질 못하니까 그렇지"라고 대꾸한다. 같이 티비를 보던 야고는 이에 질린 표정을 하지만, 지오바나를 이해하게 된 나는 이제 도리어야고가 지나치게 무심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여기의 문제들을 두고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말로 덮어온 사람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야고가 영화 초반 느끼는 불안이 '핑크 클라우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면, 지오바나가 느끼는 불안은 '핑크 클라우드'로 선명해진 기존의 위험에서 나온다. 야고가 '핑크 클라우드' 속에서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찾으려 할 때, 지오바나는 차라리 저 치명적인 분홍빛 구름 속으로 뛰어들고자 한다.


<핑크 클라우드>가 가진 교묘함은 영화가 우리에게 친숙한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서 나온다. 두 사람이 '핑크 클라우드'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성별이 아니라 타고난 기질에서 나오는 듯하며, 불평등 또한 노골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저 이 모든 것은 현실이라는 듯, 다소 무심하게 지나갈 뿐이다.


분홍색 구름을 통과해 내리쬐는 햇볕은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카메라가 비추는 세상은 낭만적이고, 신비한 색으로 그려지지만 그 속에 들어찬 내용은 이와 정반대다. 코로나가 그러했던 것처럼 '핑크 클라우드'는 우리의 삶에서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위험들을 낯설게 부각시키며, 현실이 곧 악몽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임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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