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차 한 잔의 여유 [사람]

20대에게 여유를
글 입력 2022.04.0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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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을 담아 찻주전자와 찻잔을 데운다. 날씨, 기분, 취향에 따라 고른 찻잎. 인원수에 맞춰 떠 넣고, 기포가 큼직하게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뜨거운 물을 찻잎을 때리듯 붓는다. 위아래로 춤추듯 움직이는 찻잎을 구경하며 기다리다 적당히 우러나면 찻잔에 돌아가면서 조금씩 따른다. 주전자의 진하고 연한 부분이 섞이도록 찻잔에 따르고 나면 따뜻한 온도와 향, 맛을 느끼며 넘긴다. 상대와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차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릇들을 씻고 정리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이 1시간을 못 보낸 지 어언 두 달째. 이 1시간이 없다. 이 말이다.

 

복학 후 흔히 말하는 화석이 되었다. 아는 사람은 다 졸업하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이제는 나이를 먹어 자기 할 일들에 치여 못 만나기 일쑤. 바쁜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너무 나태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덩달아 바빠진다. 불안감. 초조함. 여유 없음. 현재 나를 표현하는 세 단어다. 시간적 여유로움이 생겼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일까. 입시 시절에는 비슷하게 여유가 없었지만 괜찮았다. 대입이라는 끝이 있었지만 이제 성인 되고는 끝이 보이질 않았다. 내 앞길을 정해야 했고 방향을 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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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조급함에 시달려 일정 정리마저 잘 안 되었다. 바쁜 시간 내 만난 친구마다 비슷한 상황이었다. 게임? 취미? 이런 거로 시간을 보내도 될까 싶어 손도 못 대고 있다. 초조함에 짓눌려 업무 처리 속도도 줄어들고 무기력해지고 축축 처진다. 하루하루가 초조하고 뒤처지는 기분이 든다.

 

이미 주변의 사람들은 달려가고 있는데 나만 과거에 남아있고 싶은 기분.


이전처럼 모두와 차 한 잔씩 앞에 두고 가만가만 이야기하고 싶다. 미래, 취직이 아닌 어제의 수업 이야기, 내일 점심, 주말 약속. 소소한 이야기를 하던 시절이 그리웠다. 차를 언제부터 좋아했더라. 중학교 때부터였을까. 날씨가 쌀랑해질 때쯤부터는 자주 감기에 걸려 항상 보온병을 들고 다녔다. 물에서 나는 보온병 냄새가 싫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 보온병에는 항상 티백이 걸려있었다. 처음엔 쉽게 구할 수 있는 티백으로 시작했다. 둥굴레차, 메밀차, 매실차 등. 주변에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마시곤 했다. 중학교 시절 차는 그저 물 대신이었다. 다른 게 아니고 물. 차를 마시기 위해 따로 자리를 만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관심은 있었다.


딱 그 정도의 관심. 물 대신의 마시는 거 이왕 다른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만 알 정도의 관심.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갈 즈음 동네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왔다. 어른 흉내가 내고 싶었던 걸까. 주로 커피를 사 먹었다. 쓴 건 싫으니 우유와 시럽이 잔뜩 들어간 거로. 하지만 커피는 오래 마시지 못했다. 몸이 커피의 카페인과 우유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가벼운 혓바닥의 일탈을 끝내고 다시 차로 돌아왔다. 여전히 혼자서 차를 마셔오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면서 차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관심은 무럭무럭 자라 드디어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처음 친구에게 홍차를 얻어 마셨던 순간이 기억이 난다. 일본 여행을 가서 가득 찻잎을 사기도 했다. 나를 위한 찻잔을 샀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 다과회가 기억났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다양한 차를 마시는 게 좋았다. 차를 우려내기 위한 기다림,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여유로운 시간을 좋아한다. 첫 순간은 물에 대체에 지나지 않았지만 차는 어느새 내 삶에 있어 소중한 여유로움을 담당하게 되었다.


차 속에는 테아닌이라는 성분이 존재한다. 다른 식물보다도 차에 특히 많이 함유된 물질로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정신적 안정감을 주며 스트레스 완화에도 영상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차 소비율이 높은 나라가 우울증 환자의 비율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로 정신적 안정에 도움을 준다. 확실히 속에 따뜻한 게 들어가면 긴장이 풀리고 차분해지는 경험 있지 않은가?

 

조용한 분위기도 한몫한다. 다도체험을 해 보면 조용한 분위기에서 하는 곳이 많다. 조용한 분위기와 따뜻한 온도로 차분한 정신으로 고민을 되뇌어보면 의외의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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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과 모이기도 힘든 시기와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가 겹쳐져 부정적인 감정이 폭발했다 모임에 조금 느슨해진 지금 나는 다시 차모임을 모집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며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한다. 이미 졸업한 사람들을 가끔 만나 즐거웠던 이야기를 한다. 같은 차를 마셔도 다른 기분이었다. 이야기하며 차를 마시다 보면 초조함, 불안함이 잠시 잊혀졌다. 숨통이 좀 트이는 것만 같았다. 갑갑했던 속이 풀리는 기분이다. 내가 조금은 괜찮게 살고 있구나. 하는 긍정적인 기분이 올라오기도 한다. 여유의 소중함을 다시 느꼈다.

 

집에서도 가끔이지만, 다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방학이 되면 티 클래스도 신청해보려고 한다.

 

차 도구를 씻고 정리하는 게 귀찮아 티 타임을 즐기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럴 땐 티백으로 간편하게 한잔해도 되지만 가끔은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보는 건 어떨까. 가끔은 초조함, 불안함을 도구를 준비하며 부산스러움으로 잠시 잊어버리고 가장 좋아하는 차와 좋아하는 간식과 함께 자신을 위해 여유를 만들어보자. 초조함에 눌릴 필요는 없지. 가벼운 행복과 여유로움으로 자신을 돌보아 주었으면 한다. 너는 잘하고 있다고. 충분히 이 여유를 즐길 자격이 된다고.

 

 

[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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