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당신이 있어서 깊어요

성장기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
글 입력 2022.03.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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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음으로는 일곱 살짜리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오늘 아침에 쓴 편지랬다. 아주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있어서 깊어요.’ 

그걸 보고 할아버지가 웃었다. 

“기뻐요를 잘못 썼구나!”

 

- 이슬아 <심신단련>, '당신이 있어서 깊어요' 편 中

 

 

Q. 안녕하세요. 인터뷰 전에 요즘 마음에 품고 사는 문장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드렸었는데요, 지은님께서는 이슬아 작가의 <심신단련> 속 한 문장을 뽑아주셨어요. 어떤 문장인지, 왜 가져오셨는지 설명 부탁드려요.


오늘 이 인터뷰가 독자분들께 저를 처음으로 소개하는 자리라고 들었어요. 어떤 것으로 나를 소개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당신이 있어서 깊어요'라는 제목의 수필을 읽었어요. '기뻐요'를 잘못 쓴 것인데 오히려 더 깊고 풍부한 표현이 되었죠. 비슷한 발음이지만 기쁜 것과 깊은 것은 다르잖아요. 생각해 보니 저는 지금까지 저를 소개할 때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위주로 얘기했더라고요. 뭘 좋아한다든가, 뭘 할 때 기쁘다든가요. 그래서 이번에는 '나를 깊게' 하는 것으로 저를 소개하고 싶어요. '당신이 있어서 깊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저를 잘 나타내주지 않을까 해서요. 그런 마음으로 위의 문장을 가져왔습니다.

 

 

Q. ‘당신이 있어서 깊어요.’에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설명을 들으니 더욱 궁금해지는데요, 지은님은 무엇이 있어서 깊으신가요?

 

저를 깊게 만드는 것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성장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성장이 있어서 깊어요. 제가 성장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거든요. 이 성장에는 남의 성장과 나의 성장이 다 포함이에요.

 

 

Q. 남의 성장이라…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저는 다른 사람이 성장하는 걸 보면 참을 수 없이 마음이 벅차올라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만 봐도 모두 주인공들의 성장 스토리예요. <싱 스트리트>,<월 플라워>,<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빌리 엘리어트> 그리고 <벌새>.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시나요? (웃음) 불안하고 불완전했던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상황 속에서 한층 더 성장했음을 느끼는 순간 심장이 쿵쿵 뛰면서 저항 없이 눈물이 나와요. 슬픈 장면이 아닌데도요. 그런 상황이 계속되니 자연스럽게 깨달았죠. 아, 나 성장 좋아하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영화나 만화 주인공들의 성장만 좋아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가족이나 친구들이 성장했을 때, 축하의 마음보다는 좀 더 커다란 마음이 들었어요. 내 일처럼 기쁘고, 벅차고, 심지어 막 기특하기까지 하고요. 내가 뭐라고. 물론 '네 성장에 감동했다'라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지만요. (웃음) 그런데 그 감정이 나쁘지 않은 거예요. 성장을 응원하는 마음, 성장을 좋아하는 마음이요. 그래서 이런 저를 스스로 ‘성장의 목격자’라고 정의 내렸어요. 타인의 성장을 목격하는 것이 저의 사명인 것처럼요.

 

 

Q. ‘성장의 목격자’라는 말이 인상 깊어요. 그렇다면 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왜 성장에 감동하시는지, 다른 이의 성장을 목격하는 것이 지은님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성장이 더뎠어요. 뭔가를 깨닫고, 변화하는 게 답답할 정도로 느렸어요. 제가 원체 게으르고 둔한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겁이 많거든요. 알을 깨고 나가려면 상상 이상의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에요. 무서워 죽겠고 못해낼 것 같고 그냥 안주하고 싶고..

 

그러다 결국 눈 질끈 감고 도전했을 때, 도전하기 전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걸 느껴요. 그걸 느끼는 그 순간의 희열을 저는 알거든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니까 남의 성장에도 크게 감동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어디서 어디로 성장했는지 보다는 과정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매서운 파도가 치는 바다를 항해를 하기 위해 어떤 마음으로 닻을 내렸는지, 어떤 다짐으로 항구를 떠나왔는지 그런 것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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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연스럽게 ‘나의 성장’으로 이야기가 넘어왔네요. 지은님의 성장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나요?

 

저의 성장은 ‘용기’와 뗄 수 없는 사이에요. 앞의 이야기와 이어지는데, 저에겐 용기를 내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래서 어떨 땐 용기를 냈다는 사실만으로 성장을 느껴요. 성장 참 쉽죠? 하하. 겁 많은 사람으로 태어나 작은 용기에도 성장할 수 있어 축복인 것 같기도 하고요. 어릴 때는 저의 한계를 혼자 정해두고 '내가 감히 저걸 어떻게 해'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진짜 겁쟁이였죠. 그런데 용기를 냈을 때의 결과를 직접 겪어보면서 깨달은 거죠. 결과의 승패 여부와 상관없이 저는 과정 속에서 자란다는 것을요. 재미있는 점은 이걸 깨닫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용기 내는 게 점점 덜 힘들어져요. 도전과 성장을 거듭해가며 도전에 익숙해지는 것이 인생인가 싶기도 하고요. (웃음)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용기를 내어 성장했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영화 창작 학회에 들어갔던 일이 생각나요. 학회는 학과 동아리인데 보통 1-2학년 대상으로 신입을 받아요. 2년 활동이 조건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영화를 만드는 거니까 품과 시간이 많이 들어서요. 그런데 저는 3학년이 되던 해에 돌연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거예요.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은 당연히 없었고요. 평소 같았으면 내 주제에 무슨 영화야, 고학년인데 무슨 학회야. 하고 바로 포기했을 텐데 결국 고민에 고민에 고민을 더하다가 눈 질끈 감고 지원했어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제 '인생 용기'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용기였어요.

 

결과적으로 정말 많이 배웠어요. 2년간 직접 영화를 만들면서 전엔 절대 알지 못했던 지식과 감정을 경험했거든요. 무엇보다 그 모든 배움과 성장이 용기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이 마음을 잊지 말고 다음에도 또 용기 내야지, 하고 저축해두는 심정으로요.

 

 

Q. 그렇다면 지은님은 계속 성장하는 사람인가요?

 

정확히 말하면 ‘계속 성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에요. 얼른 성장해서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말이 아니에요. 계속 성장한다는 것은 성장할 게 아직 남았다는 뜻이잖아요. 평생 아이처럼, 소년처럼 ‘성장 중’이고 싶어요. 제 인생에 보스맵 같은 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계속 꾸준히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고 싶어요. 오직 최종 보스맵을 위해 올라가는 게 아니라 한판 한판 의미 있고 멋지게 깨고 싶어요.

 

또 다른 의미로도 평생 성장기이고 싶은데, 얼마 전에 한 유튜버가 이런 말을 했어요. 자기는 평생 가위바위보 해서 아이스크림 내기를 할 때 “아이 됐어, 그냥 내가 낼게”라고 말하는 어른이 되기 싫다고, 계속 유치하게 가위바위보를 하고 싶다고요. 제 가치관도 비슷해요. 재밌는 일들을 의미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기 싫어요. 아이들 성장기 때는 뭐든 다 웃기고 재밌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계속 세상을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그런 '성장기 어른'으로 살아가는 게 제 목표예요.

 

 

Q. ’성장기 어른‘으로 살고 싶다고 하셨어요. '성장기 아이'과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나요?

 

“어린아이가 사물에 다가갈 때 느끼는 신선함과 순진함을 보존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평생 어린아이로 남아 있으면서도 세계의 사물들로부터 에너지를 길어 오는 성인이 되어야 한다.”

  

얼마 전 앙리 마티스 전시회에서 보고 감명받은 글이에요. 이게 둘의 차이인 것 같아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표현하는 것. 그 표현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성장 중인 어른‘이 아닐까요? 저는 해가 거듭할수록 제가 경험한 세상의 아름다움과 낭만들을 저만의 방식으로 기록해 남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커져요. 그게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더 잘 쓸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지원한 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예요. 이 또한 성장의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Q.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이 지은님께 성장의 기회가 되시길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은님처럼 도전과 성장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마디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마음에 새기고 사는 문장이 있어요. 어느 학자의 명언인데, 겁이 날 때 계속 나아가게 하는 힘을 줘요.

 

"배가 항구에 있다면 가장 안전하겠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당장 항해를 하고 싶어져요. 그 어떤 풍파에도 맞설 용기가 생기는 것도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용기는 용감과 거리가 멀어요. 용감하기 때문에 해내는 게 아니라 두려움에 떨면서도, 그럼에도 해내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해요. 용감해질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도 평생 용감해지진 못할 것 같거든요. 다만 나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는 생각해 보자는 거예요. 찌질한 용기를 쥐어짜내서라도 출항을 해야 하는 이유. 우리의 존재 이유는 정박이 아닌 항해니까요. 당신의 모든 출항과 성장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잘 부탁드립니다. 성장하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김지은이 되겠습니다. 목격자가 되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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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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