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첩을 거쳐 두꺼운 천국 만들기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3.2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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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들이 가장 빈번하게 끌어오는 격언 중 하나가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잡는 방법을 가르치겠다.’가 아닐까 싶다. 탈무드라는 믿을 만한 출처 때문인진 몰라도 나 역시 이 말을 오래 맹신해왔다. 1976년 출간된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은 40년이라는 세월을 넘어 그런 나의 믿음에 얌전한 균열을 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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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은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살던 섬 '소록도'에 새로운 병원장이 부임한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소록도는 차별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실존하는 섬이다.) 전직 군의관 출신의 조백헌 대령은 부임 첫날부터 발생한 원생 탈출 사건을 필두로 잘 정비된 것처럼 보이는 이 섬에 무언가 드러나지 못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직감한다.

 

<당신들의 천국>의 초반부, 조백헌 원장이 물고기 잡는 법을 교육하기 위해 분투하는 훌륭한 교육자라는 인식도, 그런 그의 시도가 끝내 이상적인 천국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낙관도 내 오랜 믿음 때문이었다. 조 원장은 이전의 원장들과는 조금 다른 노선을 보여주는 듯하다. 자신이 떠나더라도 자생력을 지닐 수 있는 섬을 꿈꾸는데, 스스로의 부재를 염두한다는 점에서 ―다소 시혜적인 태도이긴 하나― 원장이라는 지배적 지위를 독점하려는 뜻도 없는 사람이라는 순수한 믿음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이상욱 보건과장, 황 장로를 비롯한 인물들이 그의 단단한 신념에 얽혀들면서부터 이 생각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끝내 앞서 언급한 이 진부하기까지 한 격언에 대해 ‘중요한 건 잡는 방법을 어떻게 가르칠 건지에 있지 않아?’라는 냉소를 부르게 된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보면 같은 말을 인용하면서도 누군가는 물고기를 맛있게 구워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는 제 모습만 주구장창 보여줬고, 누군가는 물이 두렵다는 자를 밀어 빠뜨리고 익사 직전이 되어서야 겨우 건져주었으며, 또 누군가는 물 속 생태와 그 위험성에 대해 장황한 연설만을 늘어놓았다.

 

조백헌 원장의 자생 사업들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조 병원장이 병원장으로서의 책임을 충분히 채우기 위해서는 '섬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데 이는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황 장로의 자유와 사랑에 관한 견해를 더해 한 발짝 더 나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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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병원 확장공사 현장 사진

 

 

소록도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싶어하는 것이 맞는지, 맞다면 그것을 왜 잡고 싶어 하는지를 파악하는 게 진정한 ‘섬 사람’으로서 믿음을 쌓아갈 방법이 아녔을까. 이상욱의 편지 글은  ̄그 무엇도 해결하지 못할 긴 비관으로 가득하지만 ̄ 조백헌은 물론 나의 맹목까지 씻어 ‘물고기를 잡는 것’ 이외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언젠가는 떠나게 될 것이라는 원장의 가정은 오히려 오만에 가까웠던 것이다. 물고기로 가득한 망태기를 매고, 온몸이 물곰팡이에 덮힌 이들을 남겨둔 채 미련없이 물가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처음에는 이 작품이 ‘우리들의 천국’은 과연 이룩될 수 있는지, 할 수 있다면 조백헌과 섬 사람들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지에 대해 묻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상 ‘당신들의 천국’과 ‘우리들의 천국’이 과연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가깝다는 결론을 냈다. 어쨌거나 ‘당신’과 ‘나’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니 그것을 최대한 중첩시켜 많은 이들이 천국의 영광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런 세상이야말로 ‘낙토’일 테다.

 

‘당신’은 ―‘너’에 비하자면― 일말의 낭만을 지닌 단어이다. 발음하노라면 묘한 울림과 함께 긴 여운이 남는다. 그 낭만은 또한 타자를 내 안으로 끌어와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작업의 반복으로부터 커져간다. 우리는 모두 타인에게 완전히 가닿을 수 없는 비극을 경험한 바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입안에 쓰게 남은 그 비극의 맛이 낙토에 가까워질 수 있는 실마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주체이자 타자인 이중적인 정체성을 안고 있다. 말하자면 지배적인 위치에 놓인 조백헌의 모습도, 변연부에 고인 일명 ‘문둥이’의 모습도 지닌 채 살아간다.

 

이것을 인식하는 것이 황 장로가 말한 ‘베풂으로써의 사랑’의 첫 단계일 것이다. ‘당신들’과 ‘우리들’의 정체성이 중첩되는 미세한 부분을 찾아낸다면 둘 사이에는 유대가 생겨날 수 있고, 사랑이 가능해진다. 서미연과 윤해원의 결혼은 이러한 사랑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이다. 낙토 건설의 실패라는 비극으로만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렇다면 이렇게 선행된 사랑에 자유가 깃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황 장로는 자유란 싸움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 언급했는데, 우리가 진정 싸워 자유로워져야 할 대상은 ‘자유’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라는 개념 자체로부터 해방되어야 우리는 낙토로 향하는 자유의 날개를 달 수 있게 된다. 사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진정 낙토로 향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유지와 지속을 위해서는 사랑을 자유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것만이 필요하다.

 

내 사견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장황하지 않나 싶은 우려는 존재한다. <당신들의 천국>은 분명 특정 정치·사회적 프레임, 유토피아 공학, 타자의 윤리학 등 구체적인 동시에 실제적인 맥락에서도 충분히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무엇보다 자유와 사랑, 유대와 같은 이제는 매번 냉소하기에 바쁜 원초적인 가치들에 대해 사유하게 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감상을 작성해냈다.

 

‘천국’이란 시시할 정도로 현실성이 없는 개념이며 냉소하기 쉽지만, 영원의 부재에서 영원을 노래할 수 있는 인간의 의지를 다시금 실감하게 하는 문학은 언제나 필요하다. 해서 ‘당신들의 천국’과 ‘우리들의 지옥’이 아닌, ‘당신들의 천국’과 ‘우리들의 천국’의 공존을 다시금 꿈꿔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당신들의 천국>이 내 독서 경험에 남긴 상흔은 꽤나 쓰리고 또 달갑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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