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찜찜한 해방 -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공연]

희망차게만 볼 수 없는 이유
글 입력 2022.03.22 05: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XXL 레오타드


 

준호는 크로스 드레서이다. 연극 내에서는 주변 학생들이 그런 준호를 호모, 혹은 게이라고 비난하는 반응을 보내지만, 준호는 동성애자가 아니다. 그는 민지라는 여자친구가 있으며, 그저 레오타드 입는 행위를 즐기는 이성애자일 뿐이다. 오히려 마초의 이미지에 훨씬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준호는 왜 레오타드를 입게 되었을까? 그는 발레 하던 누나의 모습을 보고 선의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준호를 이상성욕자로 바라보았다. 그는 단순히 레오타드를 입으면 기분이 좋다고 했지만, 레오타드를 입고 거울을 보며 포즈를 취하는 자세가 상당히 은밀하고 비밀스러웠다.

 

그는 그 은밀한 취미를 희주에게 들킨 이후로 희주에게만은 당당하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낸다. 그렇지만, 그 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남에게 레오타드를 입는다는 사실을 들키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으며 필사적으로 부정했고 그로 인해 함께 어울리던 친구에게 상처를 입혔다.

 

과연 준호는 레오타드를 입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방을 느꼈을까?

 

 

 

안나수이 손거울


 

HUR_7704.jpg

 

 

이 연극에서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한 건 레오타드가 아니라 ‘안나수이 손거울’이었다. 왜 굳이 안나수이 브랜드의 손거울이어야 했을까. 준호의 여자친구인 민지는 매년 생일선물로 부모님에게 안나수이 손거울을 받았다. 그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매일 엄마가 머리를 빗어주고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다.

 

희주는 민지와 친했으나 고등학생이 되면서 멀어졌다. 연극에서는 깊게 이유가 나오지는 않지만, 그들의 대화로 추측하건대 희주가 민지를 질투하여 그의 거울을 훔치고 뒤에서 없는 말을 지어내어 험담했다고 말한다. 민지는 부모님이 자신을 때린다고 말한 희주가 거짓말쟁이라고 했지만, 민지의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면 과연 희주가 거짓말을 한 건지 진실인지 긴가민가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안나수이 손거울이 혼란스러웠다. 과연 이 손거울로 무얼 보려고 한 걸까? 거울의 의미는 알 것 같기도 하지만, 희주와 민주 사이의 안나수이 손거울의 의미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물론 지나치게 사물을 의미화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두 여성의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의문이 생겨났다. 오히려 연극이 끝나갈수록 더 복잡해져 가는 관계에서 준호가 사라진 학교에서의 둘의 관계 변화가 기대된다.

 

 

 

결말의 섬뜩함


 

HUR_8515.jpg

 

 

연극의 결말을 보면서 나는 더 없는 절망을 느꼈다. 결국 준호는 레오타드를 입고 체육 수행평가를 마치지만, 그의 취향이 성공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해방감도 잠시 결국 준호는 전학을 가게 되고, 희주는 학원비가 밀려 더 이상 학원에 다니지 못한다.

 

그들은 마지막을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지난 회포를 푸는 듯 훈훈하게 마무리하는 척 하지만 그들의 끝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준호는 결국 레오타드 취향을 친구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부모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전학을 가야 한다. 희주는 준호도 없는 학교에서 혼자 졸업을 해야 할 테니까. 이게 과연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지 나는 답을 내릴 수 없다.

 

주인공은 준호였지만, 난 희주의 결말이 가장 섬뜩했다. 준호는 레오타드 취향을 제외하고는 성적도 좋고 집안도 부유하여 그의 은밀한 취향을 들키지 않는 이상 최상위 계층에서 살아갈 것이다. 전학 갈 학교 역시 송도에 있는 고등학교이다.

 

그렇다면 희주는? 학원비가 밀려 학원을 다니지 못하고 그를 지지해주는 선생님도 최대한 신경을 쓰지만 자신의 일로 바쁘다. 아르바이트 일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만, 항의할 수도 없는 노동자이다. 준호도 없는 학교에서 희주는 다시 왕따로 돌아가야만 한다. 과연 희주는 희망하는 체육학과에 갈 수 있을까. 만약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불합리한 노동환경에서 계속 있어야만 할 것이다.

 

희주는 목표로 하는 철봉 매달리기 60초 버티기에서 겨우 30초를 넘겼지만, 나는 그들의 미래가 감히 희망차다고 장담할 수 없어서 무서웠다. 연극이 거대한 거울이 관객을 비추고, 그들이 마치 포스터처럼 멋진 포즈를 취하면서 마무리되지만, 나는 차마 그 거울을 마주할 수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남은 미래에게, 그리고 뛰어난 연기를 해낸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xxl_poster_arko_370x520.jpg

 

 

[이승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