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 영화 '수몰지구'를 용서합니다

글 입력 2022.03.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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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물고기


 

2019년 겨울, 화단에 쌓인 눈을 끌어모아 만들었던 눈사람이 냉장고에 녹아 있는 걸 발견했다. 아니, 죄 녹아 물이 되었으니 이제 그건 눈사람이라 부를 수 없었다. 내가 발견한 건 오히려 냉장고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고인 물이었을 뿐이다. 술을 좀 마셨던 탓인지 냉동고에 넣어야 할 것을 착각한 모양이었다. 마른 걸레를 가져 와 물로 흥건해진 용기들을 꺼내 닦았다. 흥건히 고인 물도 정성껏 훔치는데 쌓인 반찬통들 사이로 깡마른 나뭇가지 두 짝이 보였다. 그것을 주워들어 한참을 바라봤다. 물에 젖어 색이 진해진 나뭇가지.

 

나는 앞으로도 평생, 죽은 나뭇가지 두 개와 흥건한 물웅덩이만으로 눈사람을 상상해야만 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기억하는 방식이라고는 그것밖에 알지 못하는. 그날은 열심히 땅을 보며 걸었지만 대부분의 눈은 흔적도 없이 녹아 있었고, 남은 것이라곤 길 구석에 시커멓게 덩어리 진 눈 무더기뿐이었다. 눈사람을 뭉치기 위해서는 다시 한 해를 살아야 한다. 물의 순환을 담담하게 지켜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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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에 거대한 물웅덩이에 빠지는 악몽을 꿨다. 불편한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확인한 시각은 새벽 3시 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상하게 발끝이 가벼웠다. 온 몸이 추위로 떨리는데도 목만은 갈증이라는 탐욕을 부렸다. 나는 물을 찾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고, 컵에 가득 따라 마셨고, 내려놓을까 싶은 참에 다시 한 컵을 따라 마시고, 또 한 번 반복한 뒤에서야 싱크대에 컵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탕 하는 마찰음 대신 손목을 적시는 찰랑거림이 귀에 닿았다. 싱크대에는 얕게 물이 차 있었다. 그때 무언가 약지 사이를 간지럽히고 지나갔다. 나는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물고기 한 마리를 보았다. 얕은 물 때문에 지느러미 끝이 수면 밖으로 노출되었는데도 헤엄은 유려했다. 눈만큼이나 하얀 물고기가 내 손을 지나 싱크대 구석에 치워둔 나뭇가지 두 짝 앞으로 헤엄쳐갔다. 그리고는 작은 주둥이로 연신 나뭇가지를 괴롭혔다. 돌출된 끝이 뚝 하고 부러졌다.

 

눈을 떴다. 버릇처럼 침대 옆을 더듬는데 손끝이 축축했다. 밤 중 목이 마를까 싶어 항상 베드 테이블에 올려두던 물통이 엎질러져 있었다. 나는 이불을 걷어내고 수건으로 대충 물을 훔쳤다. 두 겹의 꿈이 지워질까 싶은 마음에 아주 성급히. 젖은 발바닥을 닦을 새도 없이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아주 긴 글을 썼다. 제목은 <수몰지구>. 아무래도 잠결에 쓴 글이라 형편없지만, 아래는 그를 일부 옮긴 바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사람을 꾸준히 살게 하는 유형이요, 또 다른 하나는 ―뻔하게도― 자꾸만 죽고 싶게 하는 유형이란다. 수가 사랑이 될 것을 단번에 깨달은 나로서는 곧바로 분류 작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를 어떤 카테고리에 욱여넣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종류의 사랑을 단단히 분리하던 벽이 녹아내린 것은 그때부터였다. 수는 작고 발간 혀로 온도의 존재를 알기 시작한 그 얼음벽을 열심히 핥아내렸다. 사랑은 더이상 분류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분류할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망국의 유적지처럼 남은 황량한 사랑의 자리에, 수가 둥지를 틀었다. 그때부터였다. 아마 수만이 나를 꾸준히 살게 하리라 짐작한 것은. 수의 하얀 손등 위로 내 것을 포개는 것으로 이 다짐을 대신했다. 그러나 한강 다리의 마른 철근 위에 앉아 허공에 휘적대는 수의 두 다리를 볼 때면, 딱 죽고 싶었다. 정확히는 같이 끌어 안고 죽고 싶은 기분. 욕조의 물이 죄 식어 빠질 때까지, 온통 투명한 탓에 그 몸뚱어리 하나 숨길 수 없는 곳에 잠기는 수를 볼 때면 내 사랑의 라이벌은 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불공평했고, 불가능했다. 나는 온 지구와 경쟁해야 하는 꼴이었다.

 

수가 바라는 단 한 가지를 안겨주는 건 반드시 나여야만 한다.

 

 

 

글이 영화가 되다


 

학기가 시작되고, 시나리오를 써야 했다. 손톱이 없어질 때까지 뜯어도 생각은 강박처럼 한곳을 머물렀다. 마치 오래도록 고인 물처럼. 다른 걸 떠올려보려 했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물, 물, 물로 범람하고 있었다. 공포증을 의심해볼 만큼이나 물과 상성이 좋지 않은 나에게는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그야 항상 수영이나 잠수를 잘 하는 사람들을, 그들이 향유하는 물이라는 세계를 동경하기야 했지만 이렇게까지 이 상념에 집착할 일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것 말고는 쓸 수 있는 게 없어 시나리오를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초고와 거의 달라진 바 없는 시나리오를 3고만에 완고냈는데,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의 방향성이 확실했다. 얼마 안 되어서 본격적인 프리 프로덕션에 들어갔다. 시나리오 검수를 받고, 콘티를 그리고, 소품을 정리하고, 블락킹 플랜을 짜고, 스태프들의 의견을 받고, 촬영감독과의 걱정 어린 술자리를 몇 번이나 가졌다.

 

그렇게 내 첫 영화 <수몰지구>의 주인공, '수'와 '한'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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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늘어날 때마다 촬영 준비에 열을 올렸다. 촬영 당일에도 탈이 꽤나 있었지만 그다지 큰 문제로 불거지지는 않은 채 무난히 끝을 냈다. 물로 온통 흥건한 촬영장에 스태프들이 고생했지만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충실하게 <수몰지구>의 한 조각들을 채워주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영화 같다는 사실을 그렇게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영화를 용서하다


 

색보정을 위한 임시 시사에서는 내 손으로 모은 사람들과 함께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감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만들고 상영을 한 후 나는 겉잡을 수 없는 우울에 빠져들었다. 내가 너무나 깊이 묻어있는 인물들을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는 것은 고역이었다.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영화가 나였다. 그냥 너무 오송림 그 자체였다. 2주 정도는 해가 뜨는 지 지는 지도 모른 채 침대에만 수몰해 정신을 죽여갔다.

 

그래서 한동안 영화 파일을 하드디스크 구석에 처박아놓은 채 열어보지 않았다. 영화를 보여 달라는 주변인들의 말에도 부끄럽다는 말로 그냥 웃어 넘겼다. <수몰지구>를 잊고 싶었다. 내 꿈과 일상, 헛된 기대와 상념들을 아무렇게나 꾹꾹 뭉쳐 만든 눈사람이 하루 빨리 녹아 내리길 빌었다. 내 삶을 이룬 모든 공간들이 물에 잠긴 듯 먹먹했다.

 

그런데 내가 성장이란 걸 했나 보다. 이후 영화를 용서하게 된 계기는 특별하지 않았다. 시간이 약이라는 아주 당연하면서도 시시한 법칙에 따라 스스로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나를 드러냄으로써 나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가는 일에 조금은 수긍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재편집도 하지 않은 채 <수몰지구> 영상 파일과 시놉시스를 제출했고, 당연히 수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배급 문의가 담긴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독립영화 전문 스트리밍 사이트 <무비온넷>에 첫 영화 <수몰지구>를 배급할 수 있었다.


 

<수몰지구> 각본/연출: 오송림

 

 

나를 '감독님'이라고 칭해주신 메일 내용에 적잖이 부끄러우면서도 물에 잠긴 것마냥 먹먹했던 귀에 비로소 세상의 소리들이 겹겹이 쌓이는 기분이었다. 관계자 분들이 내부적으로 우수하다 평가한 영화였다는 말에 의심과 성취감이 교차했다. 그날은 다른 이유로 밤을 새웠다. 나는 욕심을 내 재편집을 마무리 지었고, 포스터를 만들고, 썸네일을 보정하며 단편영화 전문 스트리밍 사이트 <무비온넷>에 내 첫 영화를 배급했다. 운 좋게도 두 번째로 만든 영화 역시 유튜브 영화 체널에 배급하게 되어 창작자로서의 자질을 인정 받은 것 같은 작은 기쁨에 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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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화를, 내 찌꺼기를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스스로의 과오를 용서하는, 인생 최대의 과업과도 일치하니까. 처음에는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만 비로소 스스로에 대한 인정을 허락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계기가 무엇이든 상관 없다 느낀다. 내 영화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 본 경험은 앞으로도 단단한 발판이 될 것이다.

 

녹은 눈사람으로부터 시작한 상념이 크기를 키우고 키워 <수몰지구>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떠오른 건 얼마 전이었다. 그때 휘갈겼던 <수몰지구>의 초안을 겨우 발굴해낸 것도. 나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아트인사이트라는 또 다른 플랫폼을 통해 내 영화를 불특정 다수에게 소개하고, <수몰지구>의 모든 결핍들을 용서하고자 한다. 그래도 물 속에 잠겨 있는 동안 행복했다. 수많은 한과 수들을 위로하고픈 마음에 기어코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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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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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yoko
    • 수몰지구의 사전적 정의는 물속에 잠긴 지역, 또는 물속에 잠길 지역이네요. 수는 물속에 잠기지 않았는데도 물속에 잠겨있는 듯했어요. 목뒤의 상흔이 더 이상 상처나 흉터가 아니라 아가미가 되었을 때 수는 비로소 자유롭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글을 읽는 내내 물을 연거푸 마시던 푸르스름하고 어두컴컴한 새벽이 떠올랐어요. 읽는 저마저 물속에 침잠해있는 듯 해서, 푹 빠져서 읽고 시청했습니다. 찰랑이는 물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겨져있어요. 수많은 수와 한을 위해, 이 글을 써주셔서 감사드려요. 위로받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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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몰지구
    • 영화를 보기 전에 쓰신 글의 분위기가 영화에서 똑같이 느껴져서 신기했어요. 내내 잠겨있는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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