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팬데믹 이후의 도시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3.1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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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단절의 상황 



2020년의 문을 엶과 동시에 인류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전파되는 바이러스의 특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각자의 공간으로 숨기 시작했다. 거리에서는 예전과 같은 인파를 찾아볼 수 없고, 가게 안은 텅 빈 채 배달원만 바쁘게 오간다. 팬데믹 시대의 인류는 물리적 단절의 시대라는 생소한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각자의 방 안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각종 학문 분야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고민하며 새로운 시대에 적용 가능한 삶의 양식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원격 기술과 비대면 서비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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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대다수 사람에게 밀접하고 익숙한 기술이 아니었던 원격 기술은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삶에 급작스럽게 침투해 우리의 일상 전반에 변화를 가져왔다. 물리적 만남을 통해 이어오던 여러 공적, 사적 관계들이 온라인 공간으로 이동했고,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가상의 공간에서 소통하고 관계 맺는다. 우리는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소통할 수 있는 신인류가 되었다.


한편 삶의 터전이 가상의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감에 따라 대도시를 벗어난 삶을 고민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근대적 의미의 도시계획이 공중보건위생과 전염병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것이 무색하리만큼, 21세기의 팬데믹은 오랫동안 굳건했던 대도시의 장소적 매력에 위협을 가했다.

 

그간 대도시에 집중되어왔던 새로운 인프라와 자본의 흐름은 팬데믹을 기점으로 디지털 공간으로 이행하기 시작했고, 사람과 바이러스가 득실대는 대도시는 수차례의 봉쇄와 제약을 겪으며 극렬한 사회적 갈등의 장으로 전락했다.

 

 


팬데믹이 드리운 빛과 그림자 



그렇다면 팬데믹 이후의 도시는 어떤 국면을 맞이하게 될까? 혹자는 가상 공간에서의 새로운 일상이 대도시의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우리는 원격 기술과 비대면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삶의 공간과 관계 형성의 가능성을 발견했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들이 물리적 만남과 직접적 감정교류를 온전히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닫기도 했다.

 

가상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은 내가 수많은 타자와의 직접적이고 긴밀한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하며, 끝내 정서적인 고립과 불안의 상태에 이르게 한다. 결국 인간은 살아있는 몸을 통해 타인을 마주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바로 도시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팬데믹의 끝자락에 선 우리는 도시의 존속 가능성 그 자체보다는 코로나 사태 이후 변화되어야 할 도시 경관의 모습을 고민할 필요가 있으며, 여기에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도시의 소외된 계층에 관한 관심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팬데믹은 원격 기술과 비대면 서비스를 필두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그 문이 모두에게 활짝 열렸던 것은 아니다. 재택근무가 불가한 대다수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직장으로 향해야 했고, 디지털 기술과 가상 공간이 주목받을수록 그것에 접근하기 어려운 디지털 약자들은 더욱 소외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신체적, 정서적 위협을 마주한 이들 역시 주거 환경이 열악한 빈곤층이었다. 앞으로의 도시는 팬데믹 시대에 소외된 이들을 모두 품을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날 것을 요청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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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 속에서 도시 안의 공공장소의 필요성, 특히 도시 내 ‘오픈 스페이스(Open Space)'의 중요성은 팬데믹 시대에 이르러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오픈 스페이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며 밀집된 실내 공간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된 탓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언택트 시대를 지나온 도시인들이 일상적인 대면 교류와 야외 활동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 된 탓도 크다.

 

감염병 대유행으로 단절과 고립을 경험한 대중들은 공원과 광장을 단순한 편의시설을 넘어 꼭 필요한 도시의 자원으로 재인식하게 되었다.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달라진 도시민들의 요구에 응답해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도시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팬데믹 이후의 도시 



전통적인 도시 조직이 빈약한 상태에서 자본화, 도시화, 산업화가 맞물려 급격한 속도로 성장해온 서울은 오늘날 그로 인한 심각한 공간의 불평등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IMF 이후 개인의 재산권 행사가 부동산에 집중되었고, 그 결과 도시의 많은 기반 시설들이 민간 기업의 아파트 단지에서 제공되는 서울은 다른 곳에 비해 공공장소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 재난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모든 가치와 논리에 앞서는 최소한의 인간적 삶의 조건을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만남과 소통,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과 휴식을 가능케 하는 도시 속의 쉼터들을 아직 개발되지 않은 여백이 아니라 그 자체로 기능하는 도시의 장소들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팬데믹이 끌어낸 새로운 도시 모델에 대한 논의는 서울이 공공의 가치에 기초한 도시공간의 균등화를 모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도시 안의 누구나 안전하게 일하고 즐겁게 유희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은 모두의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공공을 위한 장소는 팬데믹 시대에 고립되고 흩어졌던 개인들이 다시 뭉쳐 공동체와 참여, 연대의 방향으로 다시금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최초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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