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어른

글 입력 2022.03.1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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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오후, 저 멀리서 아이가 걸어옵니다.


공원 한가운데 있는 분수 앞에 멈춰선 아이는 고여있는 물을 지긋이 바라봅니다. 분수 바닥에는 사람들이 던지고 간 동전들이 빛을 받아 반짝이고 흰 동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잔잔한 물을 흩트립니다.


일부러 몸에 크게 맞춘 윗옷이 불편한 듯 작은 어깨가 들썩입니다. 아이는 주머니를 뒤적이는 것 같더니 동전 하나를 왼손으로 집어냅니다.

 

*

 

어깨에는 짊어진 것이 많습니다. 머리에는 너무 많은 생각이 떠다닙니다. 어제 먹은 피자, 혼이 났던 피아노 학원, 오늘 복습할 수학 숙제, 다음 주에 그만둘 미술 학원. 아이는 TV에 나오는 야구선수가 볼을 던지듯 힘차게 동전을 분수 바닥에 꽂습니다. 이미 거기 있었다는 듯 그럴 운명이었다는 듯 동전은 다른 빛나는 동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불량식품을 사지 않고 소원을 들어주는 분수에 자신의 100원을 기꺼이 투자한 아이는 어른스러운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순간 들고 있던 스케치북에 끼워놓은 종이가 바닥에 떨어져 바닥을 구릅니다. 아이는 알아채지 못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변함없이 일렁이는 물 안에 희미한 형상이 보입니다. 날개가 꺾여 물에 휩쓸린 작은 천사의 모양을 한 파동이 한 번 깜박했다가 이내 사라집니다.


빛을 받은 동전 무더기는 변함없이 물 밑에서 반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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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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