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배우 정택운의 미소는 눈물보다 아팠다. [공연]

앙리 편
글 입력 2022.03.11 13:00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담고있으니

감상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프랑켄 포스터.jpg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역작이 되다.


 

2022년, 수많은 뮤지컬 덕후들의 호평을 받으며 막을 내린 작품이 있다. 나 역시 그 작품을 보고 난 뒤 기립 박수를 쳤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보기만 해도 가슴 찡해지는 그 이름. 어렵기로 소문난 넘버에 높은 연기력까지 필요한 극악의 작품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배우들이 프랑켄슈타인 정말 힘들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물론 그걸 보는 관객, 즉 우리들은 그저 황홀했지만.

 

 

캐스팅보드.jpg

내가 본 2월 18일 공연의 캐스팅보드.

 

 

앙리 역을 맡은 정택운 배우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제대 후 처음 선보이는 뮤지컬이라 개인적으로도 몹시 기대가 컸다. 그리고 그 큰 기대감을 멋지게 충족시켜준 그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오늘 나는 ‘택앙’이라 불리는 정택운 배우가 표현한 앙리와 괴물에 대해 하나하나 되새겨보려고 한다. 왜 그날 공연을 본 나는 눈물을 흘렸을까.

 

 

정의감 앙리.jpg

 

 

 

앙리는 순수했고, 정의롭고, 어렸다.


 

내가 본 앙리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생명의 소중함을 외치며 전쟁에서의 무의미한 죽음을 막으려는 청년. 적군의 생명마저 구하려고 한 앙리는 신념과 정의감이 넘쳤고,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생명을 살린 것이 간첩죄가 되냐는 물음에서 끓어오르는 피가 느껴졌다. 앙리에게는 자신의 생명보다 신념이 더 중요했다. 결국 사형 판결 대신 연구소에서 일하라는 빅터의 말을 따랐지만 빅터와의 연구 역시, 자신의 신념이 납득하지 않았다면 함께하지 않았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싶다는 그 신념.

 

다만 택앙에게는 청년 특유의 객기가 느껴졌다. 어린 나이부터 갖은 고생을 하며 남들과 타협하지 않는 단 하나의 선을 스스로 정한 느낌이었다. 그 선을 넘어서면 상대가 누구라도 굽히지 않고 저항한다. 어리다는 표현을 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관객들의 평을 보다가 재미있는 추측을 발견했다. 앙리는 빅터가 사는 제네바로 가서 함께 연구하게 되는데, 택앙은 전쟁이 끝났는데 돌아갈 집이 없어서 따라간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제네바 장면에서 나는 정택운 배우가 연기한 앙리의 캐릭터성을 깨달았다. 세상에 대한 눈치가 부족한 순수하고 정의로운 청년. 그에게는 높은 계급과 어울린 적 없는 티가 났다. 상류 사회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먼저 자기소개를 건넨다. 또, 월터가 빅터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잘됐다는 듯한 해맑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한순간에 싸늘해진 주변 공기를 눈치채지 못한 채로. 집사인 룽게에게 몇 차례 제지당하지만,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점이 웃음 포인트였지만 얼마나 순수하고 눈치 없는 캐릭터인지 감이 잡힌다.

 

 

페어.jpg

 

 

 

앙리의 유일한 친구, 빅터.


  

빅터와 앙리는 신념으로 이어진, 친구 이상의 관계였다. 엘렌에게 빅터의 과거를 들은 앙리는 가슴 시리게 아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단지 연구를 같이할 뿐인데 왜 앙리가 빅터를 그리도 소중히 여기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앙리의 ‘콤플렉스’에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앙리는 낮은 계급의 가난한 청년이다.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신념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었던 건 진통제를 놓아주는 일뿐. 무력함이 그에게는 가장 큰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그런 앙리의 정곡을 찌른 사람이 바로 빅터였다. 전쟁터에서 사경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소독약과 진통제를 주어도 생명을 구하기엔 역부족이다. 그 사실을 되새겨준 빅터의 말을 앙리는 감히 부정하지 못한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하고 미약하게 반발했음에도,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때, 앙리가 갖지 못한 환경을 완벽히 제공해준 사람이 바로 빅터였다. 단순히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손을 내밀어준 사람. 약한 자신에게 신념을 실현할 힘을 주고, 무력한 나와 달리 전쟁터에서도 빛나는 꿈을 꾸던 사람. 삶을 살아가면서 기적처럼 만난 동경의 대상이자 생명의 은인이었다.

 

 

[꾸미기]whiskey-315178.jpg

 

 

빅터를 생각하는 앙리의 마음은 한잔 술 넘버에서도 잘 느껴졌다. 택앙은 진심으로 술에 취한 빅터를 걱정하고 있었다. 한심하게 여길 만도 한데 ‘겨우 이 정도였나?’하는 약간의 도발과 함께 그를 북돋운다. 내가 느낀 택앙의 한잔 술은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힘든 거 이해해, 한잔하겠나?

마시고 털어버려. 다시 시작하면 되지.’

 

 

 

때로는 웃는 얼굴이 그 무엇보다 슬프다는 것을.


  

비극의 시작.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였다. 바로 직전 한바탕 즐거운 술 파티를 벌이고 나서 일어난 참혹한 사건. 그 쉽지 않은 감정 전환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배우 정택운의 앙리는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다. 빅터의 살인이 벌어지자, 그는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결연한 목소리로 말한다. 빅터를 기절시킨 뒤, 자신이 모든 사건을 뒤집어쓰겠다는 결정.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할 수 없을 결정이 아닌가.

 


[꾸미기][크기변환][포맷변환]prayer-2544994_1920.jpg

 

 

손을 봐야 한다. 살인자라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변명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앙리. 그러나 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다. 당연히 괜찮지 않다. 죽음을 눈앞에 둔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사형 선고를 받은 뒤 눈이 뒤집힌 앙리는 보는 관객들은 처절함에 입을 틀어막는다. 빅터가 면회를 왔을 때, 앙리는 그를 바라보지 않는다. 태연함을 유지하려고 애써 노력하면서, 운명이라고 생각하자고 말하지만, 목소리가 떨려온다. 얼굴을 보면 혹여나 눈물이 흐를까 봐, 약한 모습을 보일까 봐 마음을 다잡는다. 빅터에게 자신을 웃으면서 보내 달라고 말했지만, 어쩌면 앙리 스스로가 웃으면서 작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택앙은 마지막까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댓글을 보면 알겠지만, 해당 영상에는 무대에서 볼 수 있는 앙리의 연기와 성량이 다 담기지 못했다.

따라서 약간의 상상을 발휘하며 들어주길.

 

 

앙리가 부르는 ‘너의 꿈속에서’. 그는 단두대를 향해 가면서 이 넘버를 부른다. 누구보다 밝고 희망적인 목소리로, 의지에 찬 미소를 지으면서. 때로는 우는 것보다 웃는 게 더 슬프다는 사실을, 눈물을 흘리며 깨달았다. 마음껏 소리 내 울부짖고 싶지만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빅터를 생각하며 환하게 웃어야만 한다. 웃고 있는 입가에 전해진 미세한 떨림이 아팠다.


“날 위해 울지마. 이것만 약속해.

어떤 일 있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1:52)”

 

마지막이니 잘 들어. 앙리의 톤이 확연히 바뀐다. 떠나가기 전 빅터의 어깨를 붙잡고 눈을 맞추며 마지막 당부를 건네듯이. 네가 없었다면 난 전쟁터에서 이미 죽었을 거야. 이렇게 널 살리는 것으로 만족해.

 

앙리는 마침내 허점을 보인다. 단 한 번의 숨소리로 관객들은 모두 깨닫는다. 그는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떨고 있구나. 내내 괜찮은 척을 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새어 나온 두려움이 순간 몸을 덮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터가 보고 있으니 앙리는 다시 웃는다. 세상에서 가장 환한 얼굴로. 아쉽게도 영상에는 이 부분이 담기지 않았지만 약 3분 52초 지점에서, 목이 잘리기 직전에 볼 수 있는 연기이다.

 

 

택앙 포스터.jpg

 

 

 

배우 정택운의 앙리는 특별했다.



그는 희생했고 빅터는 미쳐버렸다. 앙리가 고려하지 못한 점은 그에게 빅터가 소중했듯이, 빅터에게도 앙리가 소중했다는 것. 결국 앙리의 죽음 이후 빅터는 그를 괴물로 되살리고 끔찍한 비극이 일어난다.

 

배우 정택운이 표현한 앙리는 그동안의 앙리 역과는 다른 캐릭터 해석이 돋보였다.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자칫하면 괴짜처럼 보일 수 있는 앙리를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인물로 해석한 지점이다. 그는 순수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정의로운 청년이, 죽음을 마주했을 때의 두려움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냈다. 그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더욱더 아프고, 슬프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특히 ‘너의 꿈속에서’에서 보여준 연기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관객의 심금을 울렸으리라.

 

그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 공연을 볼 가치는 이미 충분하다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정택운 배우가 연기한 괴물 역에 대한 분석은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출처

프랑켄슈타인(2021), 제작 뉴컨텐츠 컴퍼니.

 


변서연.jpg

 

 

[변서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19905
댓글1
  •  
  • 윤희원
    • 직접 보고 온 관객입니다. 글써주신 그 감동 고스란히 느끼고 와서 기사보니 다시 한 번 배우의 애끓는 미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꼭 다시 보고 싶은 배우와 작품입니다.
    • 1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E-Mail: artinsight@naver.com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Copyright ⓒ 2013-2022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