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레옹' 당신의 의미 [영화]

글 입력 2022.03.06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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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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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does he look like?"

"Serious."

"Somebody's coming up. Somebody serious."

 

 

<레옹>에서 이상하게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웃기다. 누군지 몰라도 심각한 놈이 올라오고 있다라. 남들의 눈에는 심각해 보이는 이 사람은 시키는 일은 끝내주게 잘하지만 사실 심각하지도, 별생각은 없는 듯하다. 아침엔 운동을 하고 화분을 가꾸고 우유를 마신다. 자기 전엔 선글라스를 끼고 의자에 앉아 권총을 근처에 둔다. 죽여달라면 죽여드리는 게 클리너의 본업. 여자와 아이들이 예외라는 원칙이 있다. 그의 이름은 레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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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엔 종종 계단에서 서성거리는 마틸다가 있다. 아버지에겐 익숙하게 얻어맞고 새어머니와 새언니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담배를 몰래 피우곤 하고, 얼굴이 붓거나 코피를 흘리고 있다. 사는 게 원래 이렇게 힘드냐는 말에 대수롭지 않게 레옹은 원래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코피를 흘리는 마틸다에게 손수건을 건네준다. 그게 고마워서인지 마틸다는 우유를 대신 사 오겠다며 집을 비운다. 레옹이 아니었다면 오늘 마틸다는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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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운반을 맡아주던 아버지가 초심을 잃고 마약에 손을 대서 빼돌렸고, 순도가 떨어지면서 들켜버렸다. 들킨 건 그렇다 치고 협박을 하는 사람이 경찰이다. 스탠스필드. 그에겐 원칙도 예외도 없다. 주변 사람들도 총을 든 그를 두려워한다. 온몸을 뒤틀면서 캡슐을 깨물고 조금은 나른해진 눈까지. 약을 하는 게 분명하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는 베토벤이나 브람스가 잘 어울린다는 그에게 마틸다의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인정했으면 죽음은 면할 수 있었을까? 어찌 됐든 결과는 죽음뿐이었을 것이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때문인지 마틸다의 아버지는 별다른 대책도 없이 다음날을 맞이했다. 다음날 정오가 되도록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 때문에 레옹에게 우유를 사러 집을 비운 마틸다를 제외한 일가족이 죽음을 당했다. 스탠스필드는 죽이는 걸 즐기고 있었고, 마틸다의 아버지가 자신의 팔을 다치게 한 걸로 극도의 분노에 휩싸여 총알을 쉴 새 없이 박아 넣는다. 고작 내 옷을 망가뜨렸다는 게 이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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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를 사서 집에 돌아왔을 때 마틸다는 집 근처에 총을 든 사람들을 보았다. 피를 흘리고 쓰러진 아버지의 손을 뒤로하고 레옹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누르고, 제발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했다. 이윽고 문이 열렸을 때 일그러진 얼굴에 환한 안도의 웃음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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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는 애초에 레옹에게 거래를 할 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배짱 있게 레옹에게 자신을 책임지라고 했다. 살려줬다면 나를 책임져야 한다고. 갈 곳이 있었더라도, 친척이 있었더라도 없었다고 했을 것이다.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4살짜리 남동생을 죽인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총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레옹과 함께 실전에 나가게 됐다. 처음엔 분명 하루만 맡아주고 네 갈 길을 알아서 가라는 심정이었는데 레옹은 마틸다에게 매번 지고 만다. 레옹의 이름을 들은 후 그녀는 귀여운 이름이라 했고, 그의 직업을 알고선 멋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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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던 일상을 흩뜨려 놓았는데도 레옹은 마틸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청부살인을 할 수 없을 거라는 말에 창문에 냅다 총을 휘둘렀을 때도, 숙소의 매니저에게 연인이라고 거짓말을 했을 때도, 몰래 집에 다녀와 돈과 남동생의 인형을 가져왔을 때도, 스탠스필드에게 멋대로 찾아갔다가 들통나서 방에 갇혔을 때도.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고,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고, 아직 미숙한 실력이면서도 굳이 타겟에게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미친 듯이 화를 내거나 다그친 적이 없다.


심지어 정식으로 의뢰를 수락하지도 않았는데 직접 스탠스필드의 동료이자, 마틸다의 가족을 죽인 경찰을 처리하고 오기까지 했다. 아마 마틸다가 움직이지 않았더라도, 레옹이 직접 복수를 해줬을 것이다. 복수는 의미가 없고 잊으라고 말하던 사람이, 마틸다가 직접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대신 피를 묻힐 생각까지 다 하고. 마틸다가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람이 마틸다가 머리에 총구를 대고 잘못될까 봐 숨을 몰아쉬지를 않나. 얼마나 애틋한 언행불일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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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스필드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남동생을 죽여서 복수하러 왔다는 말에 '너도 남동생 곁으로 따라가려고?' 같은 이야기나 하는 사람이다. 개인적인 원한을 산 장본인으로서 후회나 반성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당장 죽이지 않은 건 건물에 보는 눈이 많고, 무엇보다 지금 마틸다를 죽이면 레옹을 놓치리라는 심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경찰과 총이 마틸다와 레옹을 붙잡기 위해 동원되었다. 동료 경찰을 죽였다는 명분을 들어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동료들을 불러들이는데 거리낌이 없다. 막상 본인은 참여하지 않으면서 사람 2명 잡는데 수백 명이 달려들어도 해결하지 못한다면서 성질을 낸다.


수적으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레옹이 불가능해 보이던 작전을 성공한 듯했다. 마틸다를 먼저 탈출시키기 위해서 레옹이 했던 말이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볼수록 그게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걸 뒤로하고 마틸다와 저 멀리 떠나서 마음 편히 뿌리내리고 싶은 마음. 처음 사람을 죽인 이후로는 상상하지 못했던 바로 그 삶을 찾고 싶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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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탠스필드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고 모두를 건물에서 내보낸 채 레옹이 지나갈 곳에 숨어있었다. 무사히 건물 밖을 빠져나가려는 마지막 몇 발자국을 앞두고 레옹에게 총을 쐈다. 이전에 마틸다에게 말했듯, 살고 싶은 열망이 있는 사람을 죽일 때 더 짜릿한 재미가 있어서일까. 레옹은 정말 등 뒤에 그가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을까? 왜 늘 가지고 다니던 총은 하나도 없었을까? 같이 총을 겨누기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일부러 기다린 것일까. 총알 2발을 쓰고도 모자라 보이는 스탠스필드에게 레옹은 예상이라도 한 듯 최후의 수단이라는 수류탄을 선물했다. 프로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할 수 있어서 프로인걸까. 마틸다가 사랑하던 사람도, 마틸다가 미워하던 사람도 모두 죽었다.


이 영화의 4줄 요약을 영화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 '가족들은 마약 때문에 경찰한테 살해당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과 도망쳤는데 그는 살인청부업자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그가 죽었다. 도와주지 않으면 오늘 나는 죽는다.' 마틸다가 학교의 원장 선생님에게 한 이야기를 보면 그녀가 겪은 상황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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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에게 레옹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이었다. 죽음의 위기 속에서 그는 탈출구였고, 덕분에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그녀는 이전에 사랑이 아니면 죽음뿐이라고 했지만 레옹으로 인해 사랑과 죽음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를 사랑해서,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걸 말이다. 함께 하든, 함께 하지 않든 그녀의 삶에 레옹이 남아있다. 학교에 다시 돌아갈 수 있었던 것도, 앞으로의 미래도 레옹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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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에게 마틸다는 자신을 변화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잊고 있던 감정을 되살려주고 삶에 대한 의지나 관점을 바꿔주었다. 마틸다가 사고를 친 덕에 숙소도 종종 옮겨야 했고, 마시던 우유 외엔 아이들이 먹는 과자나 체리 코크도 사게 됐다. 게임이라는 명목으로 소소하게 장난도 치게 됐다. 글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다친 손을 숨기고 예쁜 원피스를 선물하기도 했다. 앉아서 자던 잠을 누워서 잘 수 있게 되었다. 쓰지 않고 모아두던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마틸다에게 쓰기로 했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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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를 만난 게 레옹에게는 불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와 엮이고 나서 결국 그녀로 인해 죽은 셈 아닌가. 이렇게 확실한 사망 플래그가 있을까. 아니다. 굳이 따지면 그 망할 놈의 복수가 문제다. 마틸다의 남동생이 죽은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복수는 추천할 만한 게 못된다. 레옹의 경험담이 그렇다. 사랑하던 이를 잃고 복수를 해봤고 별로 통쾌하지도 못했으니까. 게다가 스탠스필드는 앞뒤 가리지 않는 총질로 어쩌면 곧 발각되어서 스스로 망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멋대로 죽여놓고 치밀한 변명을 할 줄도 모르고 얼버무리기 일쑤이니까. 따지고 보면 스탠스필드도 굳이 복수를 하다가 죽고 말았으니, 이건 그에게도 해당된다.


그러나 레옹은 이 모든 걸 불행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마틸다를 혼자 남게 해서 미안해하고, 다시 학교에 돌아간 걸 기뻐하고, 레옹이 아끼던 화분을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묻어준 걸 고마워할 것이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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