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음 생의 너를 만나기 위해 [영화]

글 입력 2022.03.07 13:2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약 79억 5000만 명. 80억의 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는 것, 지문이다. 만 17세가 되면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지문이 포함된 주민등록증을 만들고 그 주민등록증은 우리의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 주민등록증을 제외하더라도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순간 지문을 사용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의 전원을 켤 때도 지문을 사용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문과 더불어 사람들은 고유한 ‘이것’을 가진다. 1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개의 ‘이것’이 있다. 바로 홍채, 눈이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눈은 ‘이성’, 즉 인간의 주체성을 상징하는 요소로서 인간 문화 속에서 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는 눈을 찔러 자기 자신을 벌했다. 스스로 주체성을 포기한 것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유명한 구절도 있다. 우리는 타인을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눈을 마주친다. 시선이 부딪힌다는 것은 서로 다른 주체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오디션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종종 나타나는 출연자들 간의 신경전에서도 끝까지 눈을 피하지 않은 사람이 승리자가 되지 않는가.


또한 시선의 주체는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모두가 갈망하는 ‘절대 반지’가 그런 존재이다. 그 반지를 끼면 투명 인간이 되어 타인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나만이 타인을 볼 수 있다. 시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눈은 물리적인 고유성을 가지고, 사람의 주체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런 눈, 홍채가 같은 두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같은 사람인가? 같은 홍채를 갖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 일인가?

 

여기 눈을 중심으로 과학과 종교의 충돌을 다룬 영화가 있다. 2014년 개봉한 마이클 카힐 감독의 작품 ‘아이 오리진스’이다.

 


557cbd088e020eea07ca18b0479a6659d83c4177b9224f2596d13ea34f29f623818187f70d22b1efe8c57b3463685071f9e9dd3cb27af0f4f4f2441cd81897fe16c69cabcd129f42e777baafd31545d8ea493e0869b2da9427c942f9357871fe.jpg

 

 

*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이안 그레이’는 홍채를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그는 생물의 진화 시작점을 찾고 싶어 했고 그 답이 홍채에 있으리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의 눈을 카메라로 담아왔던 여느 때처럼, 그는 카메라를 들고 한 파티에 간다.

 

그리고 카메라 렌즈를 사이에 두고 한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순식간에 그 눈에 매료되어 여자와 파티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그 여자의 이름이 ‘소피’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건 한참 후의 일이다.


이안과 소피는 연인 사이가 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그들 사이에는 신념의 차이라는 장애물이 있었다. 소피는 신을 믿고 인간 너머에 영적인 존재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현상들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학자인 이안은 소피를 이해하지 못한다. 둘의 차이는 갈등으로 연결되기도 했지만, 서로를 향한 답답함보다 사랑이 더 컸다.

 

 

20220306161858_kofqiqgq.jpeg

 

 

혼인신고가 승인되기까지 하루의 시간 동안 둘의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일어난다. 평소처럼 이안의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약품이 이안에게 쏟아지는 사고가 일어났고 그는 눈을 다치게 된다. 이안은 눈에 붕대를 감고 소피는 그의 눈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들이 탄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이안은 소피를 잃는다. 그 후 이안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세상을 떠나버린 소피를 안고 우는 것뿐이었다.


남겨진 사람의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이안은 눈도 회복하고, 홍채 연구에도 성공하여 명성을 얻는다. 연구실 동료인 ‘카렌’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가정도 꾸린다.

 

어느 날, 카렌과 소피는 아이의 홍채가 과거에 세상을 떠난 남자의 홍채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심지어 아이는 남자의 얼굴, 가족, 집의 사진을 보며 울고 웃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카렌과 이안은 여러 실험을 통해 혹시 아이가 남자의 ‘환생’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달한다. 이런 현상을 전혀 믿을 수 없었던 이안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소피의 홍채를 가진 사람이 인도 델리에서 발견된다.


이안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지금까지 과학자로서 연구해왔던 모든 사실이 절대적인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의 아이가 누군가의 환생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토록 사랑했던 소피가 다른 모습으로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인도로 간 이안은 소피의 홍채를 가진 소녀 ‘살로미나’를 찾아 소피와 관련된 사진을 보여주며 실험을 진행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체념하고 살로미나를 돌려보내기 위해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려는 순간 살로미나는 엘리베이터에 공포를 느끼며 울음을 터트린다.

 

소피의 마지막 순간이었던 엘리베이터를 무서워하는, 소피와 같은 홍채를 가진 소녀. 그 소녀와 함께 이안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긴 여정을 끝낸다.

 

 

20220306161959_sfaiiqre.jpeg

 

 

살로미나가 고른 사진들이 소피를 가리키지 않았을 때 이안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소피의 환생이 아니라는 실망감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과학적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이었을까. 그리고 살로미나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안겨 왔을 때, 이안은 소피를 다시 만났다는 희망과 환희를 느꼈을까 아니면 믿음이 흔들리는 불안을 느꼈을까?

 

사실 엘리베이터를 무서워하는 반응이 살로미나에게 소피의 기억이 남아있다는 것을 완전히 증명해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믿는 것을 선택했다. 자신의 과학적 믿음이 아닌 소피가 믿었던 영적인 존재를 선택한 것이다.


가장 대척점에 있는 과학과 종교의 사이에서 이안은 ‘가능성’을 받아들였다. 절대 깨질 것 같지 않았던 믿음에 틈이 생긴 강력한 계기는 사랑이었다.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믿음’이듯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또한 ‘믿음’이다. 자신이 믿는 것만이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이안이 이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다음 생의 소피를 만나기 위해, 이안이 빛이 들어오는 문틈을 열고 나갔기 때문이다.

 

영화 '아이 오리진스'의 원제는 'I ORIGINS', '눈'을 의미하는 'EYE'가 아닌 '나'를 의미하는 'I'이다. 단순히 눈의 기원을 찾는 게 아닌 나를 구성하는 믿음들을 되돌아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믿음은 절대적인 진실인지, 만약 나의 믿음이 흔들린다면 그 계기가 무엇이 될지, 다른 믿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를 더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김민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