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열두 개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남자 : 프로듀서 판다곰

"파블로프의 판다가 되고 싶어요."
글 입력 2022.03.0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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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높은 톤의 목소리, 낮은 톤의 목소리, 숨소리가 섞인 목소리, 선명한 목소리 등 그 유형은 다양하다. 하지만 유형이 다양할 뿐, 성우가 아닌 이상 한 사람은 보통 하나의 목소리만을 가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목소리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목소리는 '나'의 색깔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한 사람의 목소리가 여러 개인 경우는 정말 없는가?

 

아니, 사실 있다. 그것도 꽤 많이 꽤 가까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여러 사람들의 성대를 통해 표현하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귓바퀴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프로듀서'들이다.

 

그리고 필자는 최근 열두 개의 목소리를 가진 한 프로듀서를 만났다. '파블로프의 판다'가 되고 싶다는 프로듀서 '판다곰'과 주고받은 열두 가지 문답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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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곰(Panda Gomm)

비트메이커 / 프로듀서

 

2019 쇼미더머니8 양홍원 - No Cap 작곡

2019 정규 1집 'sleeptalking' 발매

2020 C JAMM, 양홍원 - 불러 작곡

2020 'BAMBOOCLUB [A],[B]' 발매

2021 양홍원 정규 2집 '오보에' 전곡 프로듀싱

2022 싱글 'KILL YOUR DARLINGS' 선공개

2022 정규 2집 'VERTIGO' 발매 예정

 

 



 

Q1. 이름 '판다곰(Panda Gomm)'의 유래는?

 

음악을 랩으로 시작해서 사실 랩네임으로 지어진 이름입니다. 지금은 랩을 안 하지만, 옛날에는 친구들에게 데모를 보내곤 했습니다. 당시 제가 딜리버리가 참 안 좋은 래퍼로 유명했어요. (웃음) 어느 날 한 친구가 제 데모를 듣더니 특정 가사가 '판다곰'으로 들린다고 놀리더라고요. 이제는 그 문제의 가사가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그렇게 제 랩네임은 '판다곰'이 되었습니다.

 

 

Q2. 어떻게 보면 놀림거리였던 것을 이름으로 삼아버린 셈인데?

 

그러네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판다곰'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그 순간이 저라는 존재를 세상에 당당히 내보인 첫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걸 계속 하고자 한다면 지금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까지도 인정해야 하니까요.

 

 

Q3. 작곡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방황하던 청소년 시절에 부모님께서 공부가 아니어도 좋으니 무언가를 꼭 배우라고 조언하셔서 미디(작곡)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요. 배우다 보니 랩보다 작곡이 더 적성에 맞더라고요. 그때 저의 스승이 래퍼 창모였습니다. 그 인연이 이어져서 지난 정규 1집의 타이틀곡 'Friends'에 창모 님이 피쳐링으로 참여해주시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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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힙합’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최근 힙합과 팝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데요, 간단히 답하자면 힙합은 장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힙합은 개인의 태도이자 라이프스타일이에요. 그러니까 저의 힙합과 에디터님의 힙합이 다를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저에게 있어 힙합이란 '하고 싶은 것을 계속 하는 것'입니다. 싱잉랩이든 스킷skit;뚜렷한 중심가사와 선율 없이 효과음 등으로 채워진 트랙이든, 제가 듣기 좋고 작업하고 싶으면 무조건 OK예요. 설령 언젠가 제가 세간에서 '힙합'으로 분류되지 않는 노래들을 프로듀싱하게 된다고 해도, 저는 여전히 '힙합'을 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니까요.

 

 

Q5. 전반적으로 현악기가 활용되며 주제선율이 있는, 몽환적인 비트를 많이 작곡했다. 일반적인 힙합 비트와는 사뭇 다른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그걸 의도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비트를 찍을수록 '힙합 같지 않음'이 저만의 고유한 특성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억지로 세간의 '힙합스러움'을 흉내내기보다는 그 특성을 더더욱 살려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같은 장르의 레퍼런스를 거의 안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국힙보다는 외힙, 가요보다는 오아시스 등 밴드 음악을 많이 참고하는 것 같습니다. '힙합스러움'보다는 '듣기좋음'이 무조건 우선인 편이에요. 그래서 쓰고 싶은 악기를 쓰고 싶은 부분에 마음껏 넣고 있습니다. 그게 저의 힙합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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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6. 구체적으로 작업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필연적으로 공동 작업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비트메이커인지라 래퍼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이기도 하고, 다른 프로듀서들과 협업을 할 때도 많아요. 프로듀싱에도 그림처럼 밑그림 단계와 채색 단계가 존재하는데, 다른 프로듀서랑 협업할 때 저는 보통 곡의 밑그림 부분을 담당하는 편입니다. 저는 짠하고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바로 표현하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거든요. 아이디어들이 워낙 자주 떠오르다보니 채색은 다른 사람에게 맡긴 채 항상 밑그림만 그리게 되네요. (웃음)

 

그리고 래퍼들과 작업하는 경우에는 제 곡에 가사를 입혀 줄 래퍼들에게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줍니다. 이 곡의 제목은 무엇이며 주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곡의 분위기는 어떤지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알려 주는 편이에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보, 곡의 화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를 줍니다. 래퍼들이라면 가사로 표현했을 감정과 자아를 저는 드럼과 기타 리프, 피아노 선율로 표현해두었으니 그걸 설명해주는 거죠.

 

예를 들자면 작년 12월에 공개된 '어지러워(Feat. Kid Milli)'의 경우에는 혼란스러워하는 20~21세 남성이 화자였어요. 그 화자의 목소리에 키드밀리 님이 적임자일 것 같아 피처링을 부탁드렸고, 그것이 성사되어서 곡이 완성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키드밀리 님께서 제가 설정한 화자의 목소리를 너무 잘 표현해주셨어요. (에디터: 수많은 래퍼들의 성대로 노래하는 기분은?) 그렇게 생각하면 이번 정규앨범에는 제가 12명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셈이네요. 말을 안 듣는 목소리도 가끔 있긴 합니다. (웃음)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개입하지는 않는 편이에요. 현실에서도 목소리가 항상 우리 생각대로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KILL YOUR DARLINGS 뮤직비디오

 


Q7. 이번에 ‘KILL YOUR DARLINGS’라는 곡이 선공개 되었다. 작업할 때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음악을 통해 '벼랑 끝에 선 탕아'를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위태로움이 느껴질 수 있도록 곡 뒤편에 여러 가지 장치를 설계해 놓았어요. 여기서 포인트는 화자(탕아)는 자신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것을모른다는 거예요. 이러한 설정을 표현하기 위해 불안감을 가중시킬 만한 효과음들ㅡ심오한 느낌을 주는 베이스, 포효하는 듯한 목소리 샘플, 치직거리는 잡음ㅡ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죄다 백그라운드에 심어서 사운드를 연출했습니다. 리스너들이 '이유는 모르겠는데 불안한 기분이 들어'라고 느끼신다면 기쁠 것 같아요.

 

아, 사족이지만 제목 'KILL YOUR DARLINGS'는 1. 예술 작업을 할 때 '너무 사적인 감정들은 배제하라(너무 감정적인 것들을 덜어내라)'는 뜻을 가진 동시에 2.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라'라는 뜻으로도 직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13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 제목을 따온 것이기도 해요. 중의적인 표현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매우 뿌듯합니다.

 

 

Q8. ‘KILL YOUR DARLINGS’에 탄생 비화가 있다고?

 

'KILL YOUR DARLINGS'에는 도중에 꽤 긴 기타 간주가 등장하는데요, 그게 사실은 원래 2절 자리였습니다. 해당 곡의 목소리로 찜해두었던 래퍼 jeebanoff가 군 입대를 앞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1절과 후렴 부분만 급히 녹음을 진행했어요. 그때는 제가 2절에 어울리는 래퍼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물색해봐도 도저히 그림이 예쁘게 나올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간주를 연주해준 기타리스트 OBSN을 피처링으로 기재했죠. (에디터: 사람 성대로 모자라서 이제는 기타 줄까지 본인의 목소리로 쓸 참인가?) 그래도 기타리스트 피처링 기재는 나름 선례가 있어요. 저는 당당합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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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9. 1집에 이어 2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담은 앨범인가?

 

2019년에 발매된 정규 1집 'sleeptalking'의 마지막 트랙이 '자장가'라는 스킷인데, 자장가를 들으면서 잠에 들었으니 이제 무의식 속에서 발생하는 불연속적인 사건들을 곡으로 표현해보고자 합니다. 트랙마다 파편적인 연출을 해야 하다보니 영화로 비유하면 옴니버스식 구성이 될 것 같아요.


Q10. 약간의 스포일러를 덧붙인다면?

 

그야말로 ‘영화 같은’ 앨범이 될 겁니다. 기대해주세요.

 

Q11. 2집 발매 전까지 리스너들에게 복습을 추천하고 싶은 곡이 있다면?

 

정규 1집에 수록된 'Better man'과 '낭만'을 추천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1집에서 가장 애정하는 곡들이거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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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2. 마지막 질문. '내 음악에서 이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요소가 있나?

 

유치해지는 것과 '척'하는 것, 이 두 가지를 극도로 경계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노골적인 건 상당히 유치하다고 생각해요. 음악에 '설명'을 넣는다는 건 상당히 멋없는 일이거든요. 만약 슬픈 가사를 붙일 곡이라면, 비트가 노골적으로 슬퍼서는 안 돼요. 'KILL YOUR DARLINGS'에서 효과음들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백그라운드에 숨겨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사람들이 내 노래를 머리에 달린 귀가 아니라 말초신경으로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사람들의 무의식을 자극하고 싶거든요.

 

그리고 '척'에 관해서는, '힙합인 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힙합인데, 남들이 자주 쓰는 악기나 스타일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이 악기와 이 선율이 정말 '내'가 원해서 사용하는 것인지 항상 자문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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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판다곰은 자신이 '파블로프의 판다'가 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실험 대상이 종소리만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도록 만드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곡을 들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특정한 기분이 들게끔 만들고 싶다고 했다.

 

물론 정말 판다를 닮은 듯한 그의 해맑은 미소도 한몫 했겠지만, 사실 필자 눈에 그는 이미 '파블로프의 판다 되기'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왔음에도 그의 작업실에 머무른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치 꿈을 꾸고 나온 듯, 기분 좋은 아련함이 계속 필자의 주위를 은은하게 감싸고 있는 까닭이다.

 

3월 4일 선공개된 KILL YOUR DARLINGS를 기점으로 시작된 이 '파블로프의 판다곰' 현상을, 이 글을 보고 있는 독자들도 한 번쯤 경험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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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 YOUR DARLIINGS

(feat. jeebanoff, OBSN)


Lyrics by jeebanoff

Composed by Panda Gomm, jeebanoff, OBSN

Arranged by Panda Gomm

Guitar by OBSN


Mixed by Panda Gomm

Mastered by HYOYOUNG CHOI at SUONO MASTERING


ARTIST_Panda Gomm

DIRECTED BY_ DEJAWA (LEE YUNSUN)

COVER ART_ LEE KYEONGCHEOL

CHIEF A&R_ CHOI JUWON

MARKETING_ WOO DOEUI


발매사 (주)엔에이치엔벅스

기획사 BAMBOO STUDIO

 

 

사진제공 Unsplash, BAMBOO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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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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