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장례식 [문화 전반]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
글 입력 2022.03.0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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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치렀다. 지금껏 가장 가까운 가족의 죽음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그 사람과 함께했던 추억이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썩 유쾌한 추억은 아니었지만. 가까운 가족의 죽음은, 한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성인이 되고 처음 맞는 장례식이었다. 늘 어른들 뒤를 밟기만 하던 아이는 커서 상복을 입고 장례식의 참여자가 되었다. 제사상에 술을 올리고 절을 하고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릴 적 몇 번은 경험했던 장례식이었지만 모든 것이 처음 같았고 모든 것이 생소했다. 난생 처음 주어진 큰 역할에 조금 떨리고 당황스러웠지만 참여도가 커진 만큼 느낄 수 있는 감정도, 그곳에서 얻은 깨달음도 커졌다.


장례식이라 하면 세상을 떠난 사람을 저승으로 무사히 보내주는 의식이다. 장례식의 주인공은 떠나간 그 사람이지만, 내가 할 이야기는 남겨진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내가 직접 겪고 느낀 장례문화를 써보려 한다.

 

 


살아야 할 사람은 살아가야 하니까


 

장례식장에서 내가 주로 하던 일은 손님을 맞고 부의함을 지키는 일이었다. 인사를 하며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고인과 친밀했던 조문객은 고인의 영정을 마주하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친척들의 조문객은 고인에게 절을 한 후 친척들을 마주 보며 눈물짓는다.

 

장례식은 슬플 시간이 없이 아주 바쁘게 돌아갔다. 손님을 받고, 조문객을 맞이하며 인사를 전하고, 그간의 안부를 묻고, 절차에 따라 의식을 치르고, 친척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그 사이에서 웃음이 나오기도 눈물이 지어지기도 깊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장례식은 슬프기만 한 공간이 아니었다. 슬플 때는 온전히 슬퍼하고 웃을 때는 제대로 웃었다. 어두운 감정만이 있는 것이 아닌, 모든 희로애락이 섞인 공간이었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웃음마저 없었다면 이 커다란 슬픔과 상실감 앞에서 모두가 무너졌을 것이다.

 

떠나간 이를 기리는 곳에서 살아있는 이들은 계속해서 살아갔다. 만나고 먹고 놀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살 사람은 그래도 살아가야 하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각자의 방식대로 열심히 살아갔다.

 

 

 

가족과 관계의 회복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막 걸음마를 떼고 말을 하게 되고 혼자서 버스를 타게 될 수 있을 무렵. 사촌동생들과 나는 한 동네에서 같이 뛰어놀았다. 그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우리는 그들의 집에 놀러 갔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녔을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떠한 계기로 마음의 거리는 급격히 멀어졌다. 어른들의 일이었기에 그냥 그런 줄로 알고 그 이후로는 사촌동생들과 만나지 못했다.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어릴 적이었다.

 

가족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다시 가족의 관계를 회복했다. 어른들은 눈물을 보이며, 늙어버린 서로를 안아주었다. 여전히 어른들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의지해야 할 사람이 서로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만 같았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될 때까지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을 10여 년 만에 만나게 되었다. 특히나 동생들은 많은 시간이 흘러 몸도 마음도 성장하여 몰라볼 정도였지만, 여전히 그들은 그들이었다. 앞으로도 서로를 응원하고 돕는 좋은 친구로 남을 것 같다.


 

 

나의 어릴 적 모습을 아는 친구들


 

어릴 적엔 부모님의 지인들만 찾아와 엄마 아빠 뒤에 숨기 바빴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장례의 참여자가 되자 나의 조문객들이 찾아왔다. 부모님과 친해서 같이 놀았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해서 나의 조문객은 아니었지만, 나와 만나야 하는 손님이 생겼다는 것이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함께 놀았다. 같은 공부를 하는 공부 메이트이자 서로의 집을 자유로이 드나드는 가까운 친구였다. 나의 어린 기억에 남아있는 재미있게 놀았던 친구다. 15년이 넘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의 안부와 지금 사는 이야기를 나눠갔다.

 

초등학생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친구는 많이 없다. 나의 모습을 알고 있기에 조금 더 편하고 어릴 적 철없이 놀던 그 시절을 공유하는 친구이기에 소중했다. 어른이 되고 만난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벽이 없었다. 오래전 잃어버린 친구를 찾은 것 같았다.

 

나의 친한 친구들이 화환을 해주었다. 여러 기업과 단체들 사이의 나에게서 온 화환을 보자니 진정 이 장례식의 어떠한 기여는 되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장례 의식


 

장례식의 참여자가 되며 직접 술을 올리고 절을 하는 절차를 따랐다. 또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낯선 사람과 안부를 묻고 소통하며 장례 문화를 배워갔다.

 

그러나 전통적 장례 절차를 밟으며 남성 중심적인 장례문화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고인과 심적으로, 호적 상으로도 가장 가까운 여자 어른이 있는데, 상주를 맡을 남자 어른이 없어 먼 친척을 상주로 장을 치른 것이다. 또한 남자는 정장, 여성은 치마가 달린 상복을 입어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높은 곳을 오를 때, 절을 할 때마다 치마를 밟게 되어 움직임이 불편했다. 발인 때도 관을 드는 것은 남자들의 몫이었다. 여자는 그 관 뒤를 따라가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가장 슬퍼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 상주가 되지 못하고 먼 남이 상주가 되어 장례를 진행하는 것이, 치마와 바지로 상복을 정하는 것, 관을 옮기는 성별이 정해져 있는 것도 현대적 관점에선 시대착오적이라 생각됐다. 마치 관례와 형식에 의해 장례가 가진 의미를 헤치는 것 같았다.

 

세상은 바뀌었다. 성별이 아닌, 가장 슬퍼하고 가까웠던 사람이 상주가 되는 장례문화가 오길 기대해 본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모든 의례를 함께하며 고인을 잘 보냈다. 모든 경험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나는 고인이 남은 사람들을 위해 남긴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다시 만날 수 있게 하고, 서로에게 의지하게 하며 사람들과 교류하며 슬픔을 이겨내라는 계시 같았다.


한 존재의 소멸은 슬픈 일이지만, 장례식이 끝나고 남은 이들은 더욱 단단해지고 끈끈해졌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함께 있을 때 더욱 빛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장례식이었다.

 

 

 

[아트인사이트] 이소희 컬쳐리스트.jpg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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