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이 빠진 자리에 들어서는 것 -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글 입력 2022.03.0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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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opsis

 

시를 모아 책을 만드는 ‘그레이스’와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에드워드’는 29년을 함께 산 부부다. 그러던 어느 날, 29주년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에드워드는 그레이스에게 그녀를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에드워드가 떠난 후, 그동안 사랑이라 믿은 것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레이스는 깊은 슬픔에 빠진 한편 멀어져 가는 부모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제이미는 차츰 두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아득한 시간 앞에서 우리는 모두 연약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영원을 욕망한다. 연인은 조그만 자물쇠에 기대어 자신들의 사랑이 변치 않기를 기원하고, 부부는 만인 앞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서로를 사랑하겠노라 맹세한다. 하지만 그런 바램과 맹세가 무색하게, 두 사람이 함께 시작한 사랑은 어느 한쪽의 변심만으로도 쉽게 무너진다. 하물며 29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일지라도 말이다.

 

호프 갭Hope Gap. 이 영화의 원제인 동시에 영국 남부 해안에 있는 절벽의 이름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에드워드와 그레이스도 그 절벽 앞에 함께 서 있다. 파도가 부서지는 절벽 앞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진 희망의 간극을 인식하고, 그중 하나는 그 간극이 좁혀질 수 없다는 걸 인정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결국 갈라진다. 한쪽은 그동안 함께 지나온 길을 거스르고, 나머지 한쪽은 무망하게 바다를 보고 서 있다.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 걸었던 것일까. 무엇을 놓치고, 또 간과했을까.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은 대관절 무엇이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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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주말에 에드워드는 그레이스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그녀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그레이스는 이런 식의 이별은 용납할 수 없다며 자신에게도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에드워드는 냉정하게 짐을 싸서 나가버린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에드워드의 행동은 변명의 여지 없이 잘못되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이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에드워드의 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영화 속 에드워드와 그레이스 부부는 다른 오래된 부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에드워드는 무뚝뚝하고 과묵하긴 하지만 아내의 잔에 차를 채워주고, 집안일을 돕고, 아들이 보고싶다는 그녀의 말에 아들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집에 오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는 등(물론 거기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름대로 속 깊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레이스는 시와 유머를 섞어가며 적막한 집안에 활기를 채우고 자신의 감정과 상대를 향한 애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모습의 뒤로, 사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많이 망가진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초반부, 학교에서 돌아온 에드워드에게 그레이스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자신의 시 선집 작업에 관해 이야기한다. 에드워드는 그런 그녀를 지나쳐 부엌에서 차를 내린다. 흥미로운 건 이때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 에드워드가 목소리와 두 손, 뒷모습으로만 등장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멀리서 서로를 등진 채로 각자의 작업에 몰두한다. 심지어 이후 장면을 보면 이들은 이미 각방을 쓰고 있던 것으로도 보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 집안에서 에드워드의 존재는 희미하고, 계속 말을 거는 그레이스의 노력만이 두 사람의 관계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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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슬어 가는 자신들의 사랑을 지켜보며 에드워드와 그레이스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위기를 돌파한다. 시를 사랑한 그레이스가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은 ‘말을 거는 것’이었다. 일례로 앞서 언급한 그 장면에서 그레이스는 차갑게 식은 자신의 찻잔을 보고 에드워드에게 차를 채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그녀의 부탁에 에드워드는 ‘왜 항산 당신을 차를 반만 마시는 걸까’라고 툴툴대면서도 그녀의 잔에 따뜻한 차를 다시 채워주었다.

 

이때 차를 채워달라는 말은 그녀가 사랑을 대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그녀는 에드워드에게 계속 말을 걸며 그가 자신에게 진심을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이를 통해 에드워드가 자신의 잔에 따뜻한 차를 채워주었듯,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채워주기를 바랬다. 나아가 희망을 확인하고, 고달픈 현재를 딛고서 부부로서 함께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방식에는 상대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그녀는 사랑에 대한 자신의 부족한 확신을 상대를 통해 채우고자 했다. 문제는 그녀의 이러한 방식이 에드워드에게는 부담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에드워드가 사랑을 대하는 방식은 그녀와는 분명 달랐다. 그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 믿는 사람이었다. 그런 에드워드에게 그레이스의 물음은 그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자책으로 이어졌다. 허나 그레이스는 에드워드에게 끝까지 자신의 사랑 방식을 강요했다. 그의 뺨을 때린 것도 같은 이유였다. 심지어 그녀는 에드워드의 위키피디아 작업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폄훼했다. 결국 에드워드는 그런 그레이스에게 완전히 지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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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에드워드가 망가진 사랑을 대하는 방식은 그레이스와 다르다. 앞서 말했듯 그는 사랑이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말을 통해 사랑의 현재를 확인하고 미래를 꿈꾸는 그레이스와 달리, 역사 교사인 에드워드는 과거를 통해 사랑의 현재를 진단한다.

 

그레이스를 떠난 후, 런던의 제이미 집에 들른 에드워드는 아들에게 그레이스와 처음 만났을 때를 들려준다. 오래전 기차를 타기 위해 역에 온 에드워드는 멀리서 아버지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사실 그의 아버지는 얼마 전 돌아가셨고, 에드워드가 손을 흔든 사내는 그냥 아버지를 닮은 사람이었다. 이에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던 그에게 기차에서 만난 그레이스는 시를 읊으며 에드워드를 위로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그녀와 대화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그만 내릴 역을 놓치고 말았다.

 

언뜻 들으면 낭만적인 이야기다. 에드워드 역시 그런 줄 알았다. 그녀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행복한 한 쌍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29년이 지난 지금, 에드워드의 생각은 달라졌다. ‘오래전에 난 기차를 잘못 탄 거야.’ 바로 이것이 그간의 결혼 생활을 복기한 끝에 나온 결론이다. 이제 그는 200년 전 러시아 원정을 떠난 나폴레옹의 병사들처럼 29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그레이스와의 곁에서 퇴각하려 한다. 아마도 그는 절대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이런 결정이 그레이스를 조금도 배려하지 않았다며 비난받는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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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두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던 제이미는 딱 한 번 친구들에게 자신의 아픈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가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산책을 나갈 때면 부모님은 제이미의 양손을 잡고 그네를 태워주었다. 어쩌면 가족이란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손을 잡고, 다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는 것. 하지만 에드워드가 떠난 지금, 세 사람은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벌어진 희망(Hope Gap) 앞에서 아버지는 길을 되돌아갔고, 어머니는 홀로 길이 끊긴 절벽 앞에 서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제이미는 흐느꼈다.

 

이별은 그 과정과 별개로, 당사자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 하여, 영화 속 카메라는 함부로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영화 대부분이 두 사람의 아들인 ‘제이미’의 시선을 통해 전개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시도도 무의미하다. 다만 각자의 입장이 있을 뿐이다. 떠난 이와 남겨진 이가 있을 뿐이다. 서로를 상처 입힌 불행한 이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여기 불행한 세 사람이 있다. 그중 둘은 행복해졌고, 이제 하나만 남았다. 그레이스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남겨진 이는 떠나온 가족에 대해 부채감을 지고 갈 에드워드가 될 수도,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부모를 바라봐야 하는 제이미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여전히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추스르고, 남겨진 이를 걱정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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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절벽 앞에 선 어머니에게 제이미는 힘들겠지만 지금의 힘든 여정을 어떻게든 견뎌내 그 뒤를 따라갈 자신에게 귀감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에드워드 역시 그녀에게 친구로라도 지낼 수 없겠냐고 물었다. 비록 이젠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걷지 못하겠지만 서로를 향한 걱정과 응원으로 그렇게 그들은 사랑의 부재를, 가족이라는 관계를 대체한다.

 

에드워드가 떠난 후 그레이스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다시 일어섰다. 여기 와본 적이 있다는 것. 나와 똑같이 아팠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이유는 모르지만 그것은 의외로 큰 위로가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다시 걸어볼 작정이다. 스스로를 위해, 언젠가 자신이 지나온 길을 따라올 제이미를 위해, 지금 이 순간 위로가 필요한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해. 이것은 그녀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이자, 그녀가 잊어버리고 있던 사랑의 방식이다.

 

오래전 기차역에서 그레이스는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빠진 에드워드에게 시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현재, 그녀는 다시 한번 시를 꺼내든다. 운명적인 시작이 될지, 기차를 잘못 탄 결과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그녀는 계속 나아갈 것이라는 거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여기 와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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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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