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죽음, '끝'이 아닌 것 - 당신이 살았던 날들

글 입력 2022.03.01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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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등학교 시절 수련회를 가면 꼭 한 번쯤 입관 체험을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관에 들어갈 때 그저 하나의 공포 체험으로 밖에 여기지 않았다. 나 역시 단순히 살아있는 상태에서 어두컴컴하고 좁은 곳에 갇히니 답답함 말고는, 그다지 별 생각이 없었던 듯 싶다. 그 어린 애들이 친구들이랑 놀 때 말로만 "죽어라!" 하지, 정말로 '죽음'에 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었을까.


그런데 이제와서 관 속 체험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거절할 것 같다. 배움이 많아지면서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인 문제에 관해 스스로 생각해보는 사람이 되고, 장례식장을 한 번, 두 번 가게 되면서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고, 정말로 내일 당장 내가 눈을 감고 저 관에 들어갈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드니 입관 체험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체험임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옛날, 불로장생에 목을 메었던 게 아닐까.

 

 

 

2


 

죽음은 왜 무서울까. 죽음에 들어설 때는 아마 감당할 수 없거나 느껴보지 못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보다는 아마 할 수 있는 것을, 더 이상 하지 못 한다는 사실이 가장 크지 않을까.


좋아하는 집 앞 카페의 커피 한 잔을 더 이상 마실 수 없고, 꼭 가고 싶었던 여행을 위해 모아둔 돈을 쓰지도 못 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될 것이다. 몸의 아픔 보다는 이별, 상실을 통한 마음의 아픔이 너무 무서운 일이다.


그런 와중에 죽음은 아름다운 것, 죽는다는 것은 슬퍼할 일이 아니다- 라는 비슷한 말들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죽음의 사전적 의미는 객관적이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주관적 해석이 가능하다. 나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 수 있다.


프랑스의 세 번째 여자 랍비이자 <당신이 살았던 날들>의 작가 델핀 오르빌뢰르는 쇼아 생존자의 손녀로 지극히 많은 죽음을 목도한 사람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일을 직접 겪은 당사자는 아니겠지만, 그 당시의 생존자의 피를 이어 받았다면 관련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동양에서 이승에서의 삶은 끝이 나더라도 사후 세계가 있다고 하듯, 죽음을 더 이상 '끝'으로 생각하지 않는 유대인의 사상에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절망스럽고, 우울하게 담아내지 않았으며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하지만 저자가 겪은 죽음은 생각만큼 맘 편하게 받아들이기는 조금 어려울 듯 하다.


 
그래서 어떻게 한 여자의 이야이가 모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말해야 한다. 여기서 모두란, 그녀의 동시대 사람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먼 훗날 '이 일들'이 일어났었다는 의식을 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한다. 사라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녀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역사를 말해야 하고, 이 여성을 통해서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일을 환기하고 각 세대가 그것을 기억하도록 해야한다. -p.90~91
 

 

우리는 죽음 언저리에 다양한 차별과 혐오도 마주하게 된다. 저자의 윗대가 겪은 쇼아 학살 사건도 역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 기로에 서있다.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누군가를 죽이는 이 현실이 과연 맞는걸까.

 

더 이상 타인을 배제하는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사나 불상사가 아닌 죽음을 우리가 겪을 이유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죽음이란게 결국 엄청나게 무겁게 느낄 것이 아니라고 얘기했지만, 그렇다고 하염없이 가벼운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정말로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더 말해주고 싶다. 누리지 못한 삶을, 그 곳에서나마 보낼 수 있기를.

 

 

 

3


 

살다보면 다양한 매체에서 이런 말을 보고 듣게 된다. 우리가 내일 당장 죽을 수 있으니 오늘 하루를 보람차게 살아야 된다는 등의 말. 그렇지만 이 말은 죽음의 앞에 선 자들에게 굉장히 실례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 중에서 "나는 죽더라도 너는 살아라"라는 뜻의 말을 전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그들의 말을 들어주면 된다. 하지만 인터넷 기사나 뉴스에서 쉽게 접하는 많고 많은 안타까운 사망 사건들을 보면서 위와 같은 생각을 하는건 다소 불편함이 느껴진다. 그들이 살고자 했던 내일을 왜 그들이 갖지 못 하고 왜 엉뚱한 타인에게 넘기는지, 왜 그들이 죽어야만 하는 건지 안타까움만이 따른다.

 

모든 사람들이 헛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으면 싶지만, 어찌되었건 죽음은 결코 우리와 멀어질 수 없다. 죽음은 지금 당장 우리 주변에 맴돌고 있는 공기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몇 번이고 죽음을 본다 하더라도 익숙해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만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래도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어디선가는 죽음이 또 다른 시작이라고도 말하는 이유가 있듯이 말이다.


 

당신이 살았던 날들-표지-띠4.jpg

 


[배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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