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의 문제 - 옥수수와 나 [격주의 문학]

글 입력 2022.02.2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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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작품은 김영하 작가의 「옥수수와 나」이고, 「옥수수와 나」는 2012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지난 달에 2022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손보미 작가의 「불장난」이 선정되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김영하 작가의 「옥수수와 나」는 딱 10년 전의 작품이다. 2022년의 독자인 내가 어떤 마음으로 2012년의 수상작을 읽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10년이 지난 오늘에 읽어서도 흥미롭게 느껴질 만한 지점들이 있어서 이를 함께 공유해보고자 한다. 김영하 작가 특유의 글쓰기 방식이 어떤 느낌을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는지, 그 방식이 오늘날 발표되고 있는 소설들의 방식과 어떻게 다른지 이 글을 통해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이를 통해서 10년 전의 소설과 오늘날의 소설에서 작가와 독자의 자세나 역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2022년 현재 대중들에게 있어서 김영하 작가는 꽤 잘 알려진 소설가인 것 같다. 그는 《알쓸신잡》과 같은 TV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여러 매체에 한 동안 자주 등장했고,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대중에게 많은 용기와 위안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그의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주인공들은 마냥 푸근하고 따뜻한 인물들은 아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전직 연쇄살인마(『살인자의 기억법』)나 자살조력자(『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 극단적이고 음침한 서술자의 눈으로 작품의 풍경이 주로 그려지며, 이를 통해서 사회와 관습에 가려진 인간의 내면이 그의 작품에서 잘 나타난다. 어쩌면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 접근해 본 경험 덕분에 대중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들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옥수수와 나」 역시 그러한 문제적인 서술자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작품이다. 스스로가 옥수수라고 믿는 정신병에 걸린 중년 남성 화자. 그에게 펼쳐진 발칙한 상상력의 세계. 이러한 설정은 단순히 세계의 좌절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개인의 성적인 욕망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정말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려고 하는 현대인의 신경증과 관련되는 것일까. 애초에 문제적인 서술자에 대해서 이러한 비판을 시도하려는 접근이 적절할까. 이러한 질문들을 안고 『옥수수와 나』를 읽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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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단편집 『오직 두 사람』에도 수록되어 있다.

 

 

과거에 소설로 이름깨나 날렸던 만수는 자신이 옥수수라고 믿는 병에 걸려있다. 더 이상 그의 소설은 과거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지금은 아내와도 이혼하고 출판사에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신세다. 그는 전 아내의 도움과 출판사 사장의 요청으로 소설 원고를 지필하기 위해서 뉴욕으로 향하게 되고, 열악한 뉴욕의 주거 환경 속에서 지필 작업에 곤욕을 치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서른 살 초반 미모의 여성이 그의 숙소를 찾아온다. 출판사 사장의 이혼한 아내인 그녀가 막무가내로 찾아온 탓에 둘은 함께 숙소를 사용하게 되고, 그 시간들 속에서 그녀가 뮤즈라도 되는 양 물 흐르듯 수월하게 소설이 쓰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갑자기 출판사 사장이 숙소에 들이닥치고 둘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서술자 만수는 주변 친구들의 분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전 아내와 출판사 사장 사이의 불륜을 의심한다.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잃은 뒤로 만수가 주변 사람들의 크고작은 관계들에 집착하게 되었고, 또 그러면서 스스로가 옥수수라고 믿는 병을 얻게 되었다고, 소설을 읽다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이 사실을 확인한 독자들은 결국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한 서술자의 발화를 전해 받게 되고, 서술자의 발언과 실제 사건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서술자는 소위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unreliable narrator)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서술 기법에 의해서 소설의 서사가 독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여러 이질적인 효과들이 발생하게 된다.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를 맞닥뜨렸을 때 마주할 수 있는 효과들 중에서 내가 가장 주목하고 싶은 효과는 집약적 감수성의 파괴에 관한 것이다. 소설을 읽는 전략은 다양할 수 있는데, 상당히 많은 독자들은 (특히 한국의 독자들은) 작가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소설을 창작했다고 가정하고 소설로부터 그 (가장된) 의도를 찾아내면서 읽으려고 한다. 이러한 태도는 독자들이 소설을 하나의 통일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총체적인 작품이라고 받아들이고 각각의 장면으로부터 소설 전체의 분위기와 감수성을 집약시키고 통일하게끔 만든다. 그런데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의 서술 속에서는 실제 스토리, 실제 서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어진다. 서술자가 발언을 하는 데도 사건의 진상을 알아차리기 어렵고 독자들이 얻는 정보는 하나의 진실로 집약되지가 않는다. 결국 서술자에 대한 불신이 존재하는 한, 소설의 총체적인 감성, 작가의 의도, 작품의 문제의식 같은 것들은 완성되지 못하고 해체된다.


작가의 의도를 찾으려고 하던 독자들은 이러한 실험적인 소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만수가 소설을 쓰지 못해서 곤욕을 치뤘던 것처럼) 소설을 읽는 행위에서 의미있는 발견을 하지 못하게 된다.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찾는 과정에 소설의 즐거움이 있었는데, 그 의도를 찾지 못하면 그 즐거움이 유지되지 못한다. 그런데 애초에 소설이라는 장르가 작가의 의도, 특정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서, 그것을 아름답게 포장해놓는 것을 목표로 하야 하는가? 소설의 문제의식, 작가의 의도, 작품의 메시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 소설은 안 좋은 소설인가? (더 나아가) 소설이 삶의 반영이라면, 과연 삶은 반드시 명확한 원인과 결과에 의해 선형적으로 이어지는가? ‘보물찾기’ 식의 독서 방식은 이러한 질문들을 봉착했을 때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는 ‘보물찾기’ 식의 독서 방식이 가진 한계를 간접적으로 지적하게 된다.


2012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옥수수와 나」의 실험적인 서술 방식은 이러한 지점에서 가치를 획득하는 것 같다. 단순히 소설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만을 보면, 좌절스러운 현실을 살고 있는 중년 남성이 정신병을 얻고 우연한 기회에 젊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즐거움을 얻는 단순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적인 서술자 덕에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관계의 진상은 은폐되고, 독자들은 진위여부에서 자유로워져서 좀 더 넓은 시야로 독서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내면과 삶의 국면들에 대해 선입견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김영하 작가가 미디어에 등장해서 대중에게 전해주던 용기나 위안들은 그의 소설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현상의 비선형성, 인간의 비합리성이 가진 가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


물론 서술상의 측면은 김영하의 작품들이 지닌 다양한 가치의 일부일 뿐이다. 「옥수수와 나」 속에 깃들어 있는 하나하나의 문장들, 특히 소설가와 창작 작업에 대한 메타적인 언급들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큰 즐거움을 줄 만한 부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모티프나 내용에 대한 언급과 분석은 상당히 많이 진행되고 있고, 형식과 서술상의 가치들은 가려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지점들을 세심하게 살펴보면 김영하의 작품을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에 의한 효과가 두드러지는 김영하의 작품으로는 앞서 언급한 『살인자의 기억법』이 있고, 비교적 최근 발표된 작품으로는 장진영 작가의 「새끼 돼지」를 내가 리뷰한 적 있다. 사실 국내 소설 중에서는 서술상을 이용한 여러 종류의 작업들이 있다. 1인칭이나 3인칭이 아닌 2인칭 서술을 활용한다든가, 작품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서술자를 계속 전환시킨다든가 하는 작업들이 그 중에서 유명하고, 이들도 특별한 효과를 내는 데 활용되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기법들에 관심을 가지면 작품 한 편을 읽더라도 더욱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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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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