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악몽 시그널 - 달러구트 꿈 백화점

글 입력 2022.02.2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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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오디오북을 통해서였다. 밥 먹으면서 가볍게 들으려고 재생했는데, 기발한 상상력에 놀라고 작가의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아서 책으로 접하게 됐다. 수면과 잘 때 꾸는 꿈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보통 책을 읽으면 내용이 영화나 드라마로 보이는데. 이 책은 애니메이션이 보였다. 애니메이션이 떠오른 것은 어릴 때 읽었던 미하엘 엔데 작가의 「모모」 이후로 처음이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잠을 자는 시간이 아깝고, 쓸데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깊은 잠을 방해하는 꿈을 원망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책 제목이자 주 배경인 꿈 백화점은 잘 때 꾸는 꿈을 판매하는 백화점이다. 잠들어야만 백화점에 입장할 수 있고, 꿈을 구매할 수 있다. 꿈값은 돈이 아니라 꿈을 꾸고 난 후 느낀 감정의 절반이다. 똘똘하고 사랑스러운 페니가 꿈 백화점에 입사하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중 ‘트라우마 환불 요청’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이자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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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런 악몽이 아닙니다. - 트라우마 환불 요청



어느 날,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꿈’을 구매한 고객들이 백화점에 다시 왔다. 악몽을 샀다며 환불요청을 하는 고객들에게 달러구트가 그 악몽은 그저 그런 악몽이 아니라며 대응했다. 유능한 꿈 제작자가 아주 잘 만든 꿈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구매 확정 서약서를 보여줬다. 그 서약서에는 고객들의 자필 서명은 물론이고, 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안내되어 있었다.


구매 확정 서약서를 꼼꼼히 확인한 고객들은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이런 꿈으로 어떻게 정신수련을 하거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냐며, 스트레스만 더 받을 거라고 했다. 또 어떤 고객은 싫은 일을 꿈에서 다시 겪는 것은 불쾌하고, 꿈에서만이라도 좋은 일만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달러구트가 말했다.


 

“정말 싫은 기억이기만 할까요?”


손님들이 일제히 달러구트를 바라봤다. 또 무슨 얘기를 하나 어디 한 번 두고 보자는 표정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거꾸로 생각하면 온 힘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 나가던 때일지도 모르죠. 이미 지나온 이상,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랍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이렇게 건재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손님들께서 강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 「달러구트 꿈 백화점」 p.144

 


달러구트의 말은 분명 고객들에게 하는 말이었는데,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동시에 사려 깊고 예리한 달러구트의 눈빛이 떠올랐다. 사실 나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시절이 가끔 꿈에 나온다. 귀신이나 징그러운 무언가가 나오고, 쫓기는 악몽보다 싫은 기억이 나오는 악몽이 더 무서웠다. 꿈에서 깨어나면 현실이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면서도 온종일 기분이 찝찝했다. 그런 악몽은 한 번만 꿔도 후유증이 큰데, 잊을만하면 같은 꿈을 꾸니 괴로웠다.

 

도대체 이 악몽이 내게 보내는 시그널이 뭐길래 자꾸 꾸는 건지 알 수 없어 답답했는데, 달러구트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그 악몽의 시그널을 알아챌 수 있었다. 환불하러 온 고객 중 절반은 나처럼 달러구트의 말에 힌트를 얻고 다시 그 꿈을 꾸는 것에 도전했다. 그 고객들은 그 후로도 이따금 같은 악몽을 꿨다.


어떤 남자는 재입대 하는 꿈을 꿨는데,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멋지게 전역했으니 악몽에 동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역했을 때의 마음가짐들을 떠올렸다. 그 남자는 재입대하는 꿈을 극복하면서 트라우마가 아니라, 자신의 업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여자는 계속 시험 치는 꿈을 꿨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던 학생이었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시험 치는 꿈에 괴로워했다. 그러다 이제는 시험을 보는 상황도 아니고,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 회사 일, 결혼, 출산에 스스로 기한을 두고 압박을 받는 자신의 모습을 봤다. 그리고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시험을 잘 봤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이전에도 잘했고, 앞으로도 잘 해낼 거라며 압박감을 내려놓았다. 온몸에 힘이 들어간 자신을 느슨하게 풀어줬다.

 

그때, 그 남자의 ‘자신감’과 그 여자의 ‘자부심’이라는 꿈값이 지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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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지난날들은 힘들고, 싫은 기억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날들 덕분에 성장한 내가 있다는 깨달았다. 깨달음은 다시 힘든 일을 겪으면서 잊혀졌다. 그때마다 힘들었던 시절을 다시 겪는 악몽을 꿨던 것 같다.


“넌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았어. 그것을 발판으로 성장한 사람이야. 자부심을 가져. 겸손을 잊지 않는 사람이니까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돼.”


이것이 그 악몽이 보낸 시그널이었다. 시그널이 내게 닿지 않아서 계속 같은 꿈을 꿨고, 악몽이 나를 괴롭혔던 게 아니라 도움을 주고 있었다.

 

띵동. 강득라 고객님께서 요금을 지불했습니다. ‘자부심’과 ‘자신감’이 대량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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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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