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시로 떠나는 산책 -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 [도서]

글 입력 2022.02.2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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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손에 쥐길 여러 번, 이내 다시 내려놓길 또 여러 번. 시는 늘 어딘가 어렵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었다. 짧은 글 속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게 컸다. 그럼에도 시인은 하고 싶은 말을 문장 아래 숨기고, 읽는 이는 언어를 찾아 나서는 술래잡기가 늘 궁금했다. 그래서 마음을 편히 갖고 시집을 다시 펼쳤다.

 

시가 아직은 낯설게 느껴진다면, 다른 장르와 어떻게 가까워졌는지를 떠올려보면 될 것 같았다.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미술을 생각해 보았다.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의도와 생각, 그가 살았던 삶을 이해하고 감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전시장에 놓인 작품을 바라볼 때가 더 많았다. 보는 순간 바로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읽을 순 없지만, 경험과 상상을 동원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곤 했다. 유독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 서서 ‘이 작품은 왜 발길을 멈추게 만들까? 색감? 소재? 표현 방법? 구도?’ 질문을 이어가며 이야기를 만드는 식이었다.

 

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시가 마음에 와닿을 순 없다. 여러 편을 천천히 읽어보면서 나는 어떤 시를 좋아하는지, 어떤 이야기에 끌리는지 찾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시와 다시 만나보기 위해 박상수 시인의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를 택했다. 제목을 처음 보는 순간 말하지 않아도, 가만히 건네는 위로의 말을 들은 것처럼 감정이 오갔다.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누구라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숲은 깊었다 나만 알던, 가끔 누워 있기도 하였던 묘지 주변으로 빗방울이 내리면 나무들이 웅크려 비를 막아주는 것만 같았다 잠든 것들이 깨어나는 시간,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누구라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작은 길을 내고 있었다

 

- 안개 숲 中

 

 

시에선 풍선이 부풀어 오르듯 다양한 소재가 순간순간 등장했다. 어떤 글을 좋아한다는 건, 그 안에서 말을 건네는 대상들을 좋아한다는 거라고 생각했다. 박상수 시인이 담은 것들, 안개가 내려앉은 숲, 마르지 않은 축축한 공기, 사람들을 싫어하지만 좋아하는 마음, 그리움과 외로움. 그것들은 언제고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시인은 자연과 사람의 마음을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순간의 감정이 느껴지는 표현들을 들려줬다. 잘린 여름풀의 향, 몸을 떨며 사랑했던 것들을 무대 위로 올리는 밤, 겪어본 적 없어도 겪어본 것만 같은 문장들. 글을 읽으며 같은 경험을 떠올리기도 하고, 글을 읽고 나서 무심코 지나갔을 순간이 중요한 경험이 되기도 한다.

 

 

 

나무 의자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과 다른 시간의 결이 있다면


 

 

걸어도 걸어도 무엇도 보이지 않는 나날이 계속된다면, 갖고 싶어 햇살이 오래 들어오는 2층 창가, 담쟁이덩굴이 흔들리고 윤기 어린 나무 탁자 위로는 바스켓 화분이랑 핸드메이드 유리 동물들이 도란도란 모여 있는 곳, 어른대는 빛 속에서, 내게로 다가오는 아이들이 있구나, 밝게 뛰어와서 내 발에 털을 부비는구나,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지금 네 손에 뭐가 닿는지만 생각해,

창밖으로 눈을 돌리며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기로 하지 나날이 막막하고 또 너무 많지만, 저기 나무 의자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과 다른 시간의 결이 있다면.

 

- 작은 선물 中

 

 

반복되는 하루하루, 그럼에도 살아가다 보면 잠시 멈춰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순간들이 온다. <작은 선물>은 제목처럼, 커다랗고 대단할지 몰라도, 어쩌면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선물 같은 날들을 말한다. 시는 나도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를 천천히 풀어주고, 편안하고 고요한 시간을 선물했다.

 

글을 읽는 이유는 무수하지만, 그중에도 하나를 꼽자면 그렇다. 나에게 찾아오는 생각과 감정이 분명히 느껴지는데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답답하고, 이 순간이 그대로 사라지기엔 너무 아쉬운 때가 있다. 오래 찾아온 문장을 시에서 만나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내 마음이지만 내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미묘한 감정을 정확히 말해주는 문장, 그 앞에서 속이 시원해지기도, 따뜻하게 채워지기도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길, 막연히 두려운 그 길을 걷는 게 삶인 것 같아서 힘이 들 때,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떠올린다. <작은 선물> 속 나무 탁자 위 화분, 건널목 가까이 낮게 비구름이 다가오는 순간, 커피와 쿠키… 끝없이 나열될 이야기. 사소하지만 잠시나마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계속 걸어갈 수 있다.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아, 자꾸 처음으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반복해 읽은 두 편의 시를 소개했다. 아무래도 힘이 나지 않고, 지칠 때에 이 책을 다시 꺼내볼 것이란 예감이 든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표현과 문장 속에서 평화를 누릴 수 있으니까. 시는 참 좋은 것, 더 궁금하고 알고 싶은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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