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스러움'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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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럽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 중 가장 행복에 가까운 단어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랑스럽다.’라는 말은 보통 사랑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대에게, 무심코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어떻게 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어!’하고 생각할 때 입이 저절로 그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스럽다고 여기는 대상 앞에서 우리의 머리는 백지상태가 된다. 무언가 펑 터지는 것처럼 행복이 피어오르고 그 순간만큼은 그 대상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구 얼싸안고, 예뻐하고, 볼을 한 번 꼭 꼬집어주고 싶은 느낌이 든다.
나에게 그런 감정을 가장 많이 안겨다 주는 주인공들은 바로 나의 반려묘들이다. 조막만 한 발, 뚱뚱한 뱃살, 콧잔등의 둥근 굴곡까지 생김새 하나하나가 날 미소짓게 하며, 뚱땅뚱땅 걸어 다니는 발걸음도, 와다다 달리는 뜀박질 소리도 너무나 귀엽다. 한 마디로, 매분 매초가 사랑스러운 나의 고양이들을 보는 것은 일상 속 가장 큰 힐링이다.
이런 나에게 한국 미술품 중 좋아하는 것들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암의 강아지 그림이라고 주저 없이 답할 것이다.
그림(모견도) 속 값비싸 보이는 목걸이를 하고 있는 어미 개에게는 아주 작은 세 마리의 아기 강아지들이 매달려있다. 한 마리는 어미 등 위에서 눈을 꼭 감고 자고 있으며, 나머지 두 마리는 어미 품에 안겨 열심히 젖을 빨고 있다. 그들의 평화로운 모습은 감상자들이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다음 그림(화조구자도)에서는 어미개가 어디 간 듯 없고, 세 마리가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기서 하나 웃긴 점은, 이전 그림과 연결해 보았을 때 아기 강아지들 개개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흰둥이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먹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식탐이 많은 듯하고, 갈색 점박이는 잠보인 것 같다. 그리고 검은 점박이의 경우는 엄마 젖을 빨 때의 자세도, 옆 그림의 눈빛에서도 왠지 모를 활기와 늠름함이 느껴진다.
강아지들의 성격을 알고 마지막 그림(화조묘구도)을 보면, 어떤 상황인지 머릿속에 빤히 그려지며 웃음이 새어 나온다. 검은 점박이는 깃털을 차지하여 이리저리 물고 다니며 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갈색 점박이는 자다가 고양이와 새 소리에 깨서 아직 멍한 상태로 소리가 나는 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흰둥이는...또 다른 먹이를 찾아간 걸까?
'사랑스러움'이 가지는 힘
어느 미술사 강의 시간에 고사 인물화, 행렬도 등을 보다가 이 그림들이 나왔는데, 그 순간 모든 걸 잊고 강아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만 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공부에 지칠 때면 그 그림들을 찾아보며 힘을 낸다.
내가 수업시간에 그랬듯,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머릿속도 온통 강아지들로 가득 찼을 거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직면하고 있는 지루한 일상보다, 이 그림 주인공들의 귀염성이 더 크게 느껴졌을 거라고 감히 추측한다.
이것이 내가 이 그림들을 최고로 손꼽는 이유이다. 그 어떤 화려한 기법보다, 멋들어진 주제보다 감상자들을 크게 매료시킨다. 그리고 우리가 평생 동안 쫓아다니는 ‘행복’의 감정을, 아주 잠깐이지만 강렬하게 선사한다. 또, 그림에 그려진 장면 그 이상을 끊임없이 상상하며 그 속에 어느새 깊게 몰입하게 한다.
여기서 ‘사랑스럽다.’는 감정을 다시 생각해본다. ‘사랑스러움’은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대상이라도, ‘사랑스럽다.’는 느낌을 받은 이상 그 대상을 마음 깊이 존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차오르고,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참을 수 없을 만큼 그 순간 그 존재 자체가 행복의 근원이 되는데 어떻게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 이 그림을 보며 다른 시대의, 다른 종에게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아주 따뜻하고, 고귀한 감정으로 가득 찬 이 감정의 말로, 그 연약한 존재들을 표현할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멋진 존재인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를 사랑할 수 있으며, 나와 아주 가까운 존재가 아니더라도 그들을 마음 깊이 소중히 여기는 마음. 인간에게 이런 마음이 있기에 생존뿐 아니라 공존이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우리 마음속, 아주 소중한 감정을 기분 좋게 일깨우고 싶다면 이암의 강아지 그림들을 추천하고 싶다. 그림을 감상하며, 동시에 우리 인간이 얼마나 다정한 존재인지도 꼭 한 번 느껴보길 바란다.
[김서윤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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