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스러움'의 미학

글 입력 2022.02.22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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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럽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 중 가장 행복에 가까운 단어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랑스럽다.’라는 말은 보통 사랑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대에게, 무심코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어떻게 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어!’하고 생각할 때 입이 저절로 그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스럽다고 여기는 대상 앞에서 우리의 머리는 백지상태가 된다. 무언가 펑 터지는 것처럼 행복이 피어오르고 그 순간만큼은 그 대상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구 얼싸안고, 예뻐하고, 볼을 한 번 꼭 꼬집어주고 싶은 느낌이 든다.

 

나에게 그런 감정을 가장 많이 안겨다 주는 주인공들은 바로 나의 반려묘들이다. 조막만 한 발, 뚱뚱한 뱃살, 콧잔등의 둥근 굴곡까지 생김새 하나하나가 날 미소짓게 하며, 뚱땅뚱땅 걸어 다니는 발걸음도, 와다다 달리는 뜀박질 소리도 너무나 귀엽다. 한 마디로, 매분 매초가 사랑스러운 나의 고양이들을 보는 것은 일상 속 가장 큰 힐링이다.

 

이런 나에게 한국 미술품 중 좋아하는 것들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암의 강아지 그림이라고 주저 없이 답할 것이다.

 

 

모견도-국립중앙박물관.jpg


 

그림(모견도) 속 값비싸 보이는 목걸이를 하고 있는 어미 개에게는 아주 작은 세 마리의 아기 강아지들이 매달려있다. 한 마리는 어미 등 위에서 눈을 꼭 감고 자고 있으며, 나머지 두 마리는 어미 품에 안겨 열심히 젖을 빨고 있다. 그들의 평화로운 모습은 감상자들이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114_20200819080603376.jpg

 

 

다음 그림(화조구자도)에서는 어미개가 어디 간 듯 없고, 세 마리가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기서 하나 웃긴 점은, 이전 그림과 연결해 보았을 때 아기 강아지들 개개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흰둥이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먹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식탐이 많은 듯하고, 갈색 점박이는 잠보인 것 같다. 그리고 검은 점박이의 경우는 엄마 젖을 빨 때의 자세도, 옆 그림의 눈빛에서도 왠지 모를 활기와 늠름함이 느껴진다.

 

 

화조묘구도.jpg



강아지들의 성격을 알고 마지막 그림(화조묘구도)을 보면, 어떤 상황인지 머릿속에 빤히 그려지며 웃음이 새어 나온다. 검은 점박이는 깃털을 차지하여 이리저리 물고 다니며 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갈색 점박이는 자다가 고양이와 새 소리에 깨서 아직 멍한 상태로 소리가 나는 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흰둥이는...또 다른 먹이를 찾아간 걸까?

 

 

'사랑스러움'이 가지는 힘

 

어느 미술사 강의 시간에 고사 인물화, 행렬도 등을 보다가 이 그림들이 나왔는데, 그 순간 모든 걸 잊고 강아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만 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공부에 지칠 때면 그 그림들을 찾아보며 힘을 낸다.

 

내가 수업시간에 그랬듯,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머릿속도 온통 강아지들로 가득 찼을 거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직면하고 있는 지루한 일상보다, 이 그림 주인공들의 귀염성이 더 크게 느껴졌을 거라고 감히 추측한다.

 

이것이 내가 이 그림들을 최고로 손꼽는 이유이다. 그 어떤 화려한 기법보다, 멋들어진 주제보다 감상자들을 크게 매료시킨다. 그리고 우리가 평생 동안 쫓아다니는 ‘행복’의 감정을, 아주 잠깐이지만 강렬하게 선사한다. 또, 그림에 그려진 장면 그 이상을 끊임없이 상상하며 그 속에 어느새 깊게 몰입하게 한다.

 

여기서 ‘사랑스럽다.’는 감정을 다시 생각해본다. ‘사랑스러움’은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대상이라도, ‘사랑스럽다.’는 느낌을 받은 이상 그 대상을 마음 깊이 존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차오르고,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참을 수 없을 만큼 그 순간 그 존재 자체가 행복의 근원이 되는데 어떻게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 이 그림을 보며 다른 시대의, 다른 종에게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아주 따뜻하고, 고귀한 감정으로 가득 찬 이 감정의 말로, 그 연약한 존재들을 표현할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멋진 존재인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를 사랑할 수 있으며, 나와 아주 가까운 존재가 아니더라도 그들을 마음 깊이 소중히 여기는 마음. 인간에게 이런 마음이 있기에 생존뿐 아니라 공존이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우리 마음속, 아주 소중한 감정을 기분 좋게 일깨우고 싶다면 이암의 강아지 그림들을 추천하고 싶다. 그림을 감상하며, 동시에 우리 인간이 얼마나 다정한 존재인지도 꼭 한 번 느껴보길 바란다.

 

 

[김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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