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조용하면서 가장 고통의 소리, 침묵 : 연극 <그을린 사랑>

글 입력 2022.02.19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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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_포스터.gif

원작 : 와드니 무아와드

연출 : 신유청

 

(본 글은 줄거리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쟁


전쟁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저절로 폭탄 터지는 소리, 전투기의 소리,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직접 겪어보지 않더라도 떠오르게 된다.

전쟁의 참혹함, 피해자들의 슬픔, 엉망진창이 된 모습은 전쟁이라는 단어에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렇다면 가장 조용한 소리, 침묵

전쟁과 침묵은 과연 어울리는 단어일까?

연극<그을린 사랑>을 보며 침묵 또한 전쟁의 참혹함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조용한 소리. 침묵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어느날부터 침묵을 유지한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엄마 나왈에게 질릴대로 질린 상태였다. 그러던 중 나왈은 유서를 남기며 숨을 거뒀고, 그 순간마저 나왈은 잔느와 시몽에게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다.

그에 많은 실망과 상처를 받은 쌍둥이 남매는 소극적인 태도로 공증인에게 유서의 내용을 전달받게 되는데, 잔느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전하고, 시몽은 형에게 편지를 전하라는 유서의 내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잔느는 곧 편지의 주인을 찾으면 나왈의 침묵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편지의 주인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 시절 여자의 침묵


나왈의 어린 시절.

이 때 여자들에게 배움이란 낯선 것이었다. 여자에게는 교육의 기회 조차도 없었던 시기에 나왈의 할머니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린 나왈에게 꼭 글자를 배우고, 교육을 받아 자신의 묘비명을 적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어린 나왈은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글자와 교육을 배우기 위해 가족들을 등지고 고향을 떠난다.

여자들은 침묵했어야만 했던 그 시대에 대한 나왈의 첫 외침이었다.


침묵의 노래


어린 시절, 와합과의 사랑으로 얻은 자신의 아이를 빼앗긴 나왈은 글자를 배워 돌아와 할머니의 묘비명을 쓴 뒤, 다시 아들을 찾아 떠난다. 그 때 사우다가 나타나 자신도 함께 떠나고 싶다고 제안한다. 나왈은 사우다에게 글자를 알려주고, 사우다는 나왈에게 노래를 알려주며 서로 둘도 없는 절친한 사이가 된다. 그러다 아들을 찾기 위해 떠난 길에 버스 폭발 사건을 겪은 둘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전쟁을 겪으며 사우다를 잃고 정부 고위관료를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15년간 복역하게 된 나왈은 사우다가 알려준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며 노래하는 여인으로 불리게 된다. 고문기술자 아부 타렉에게 강간을 당하면서도 나왈은 끊임없이 노래를 부른다.


감옥에서 단 한마디 말을 하지 않고 나왈은 언제나 노래만 불렀다. 자신의 슬픔, 고통, 애환 등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감정을 노래에 담아 다른 말은 하지 않는 침묵의 노래를 부른다.


가장 고통의 소리, 침묵


나왈은 아부 타렉의 끊임없는 강간으로 끝내 임신을 하게 된다. 그전까지 감옥에서 테어난 아이들은 모두 죽었지만, 노래하는 여자의 아이들, 잔느와 시몽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복역을 끝내고 출소한 나왈과 같이 살게 된다.


후에 전쟁이 끝난 뒤 열린 재판에서 고문기술자 아부 타렉과 나왈은 피고인과 피의자로 만나게 된다. 그 재판에서 나왈은 아부 타렉이 자신이 와합과의 사랑으로 낳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이, 자신이 가장 원망하는 존재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나왈은 그만 침묵하고 만다.

차마 그를 증오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는 나왈은 그 고통을 오로지 혼자 침묵하며 감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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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너를 사랑할거야”


나왈이 와합과의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며 끊임없이 약속했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너를 사랑할거야.


전쟁의 시작에서부터 전쟁의 끝을 겪은 나왈에게 아부 타렉의 존재, 잔느와 시몽의 존재는 완전한 사랑으로 대할 수 없는 자신의 자식이었다.

사랑해서 낳은 존재를 사랑할 수 없게 되고, 사랑하지 않아 낳은 존재를 사랑으로 키워낸 나왈은 오로지 침묵으로 그 고통을 견뎌냈다.


잔느와 시몽도 편지의 수신인을 찾게 되며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곧 모두 침묵 속에 빠지며 극은 끝난다.



차마 말할 수 없어 그저 말을 하지 않는 침묵.

귀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만 침묵이 1초 1분 하루 한달이 되가는 동안 오로지 혼자 겪었을 그 고통의 시간이 너무나 잘 느껴진 연극이었다.


연극은 거의 빈 무대에 배경음악도 많이 깔리지 않는다. 그 무대와 그 소리가 마치 나왈의 속마음 같아서, 고통스럽다 못해 공허해진 나왈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같이 슬퍼할 수 밖에 없었다.

 

 

[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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