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한낱 실수일 뿐 -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글 입력 2022.02.1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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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사랑하는 힘



영화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한낱 실수일 뿐이다.”

 

누군가한테는 과장된 경구로 들리겠지만, 일상의 대부분을 음악과 함께하는 나로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는 말이다. 인생이 탄탄한 포장도로처럼 느껴진 적은 없었다. 나는 항상 허점투성이인 상태로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어렵게 걸어오면서 살아왔다. 그런 나의 곁에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그 험난한 도로를 지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나처럼 음악과 일상이 분리가 안 되면 음악마다 특정 시기가 떠오른다.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 그와 관련된 노래가 가장 큰 위로를 받는다.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헤르만 헤세도 이런 점에서 나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헤르만헤세_표지띠지1.jpg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는 대문호 헤르만 헤세가 자신의 일상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 음악에 대해 저술한 음악 에세이다. 1부는 음악에 관한 그의 일상과 견해, 시가 담겨 있고 2부는 그와 더불어 주변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담겨 있다. 400쪽이 넘는 이 두꺼운 책은 오로지 음악에 대한 헤르만 헤세의 사랑만으로 채워져 있다.

 

그가 사랑하는 음악은 주로 클래식이다. 책에는 모차르트, 바흐, 베토벤 등 전설적인 클래식 거장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담겨 있는데, 특히 모차르트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그가 얼마나 순수한 마음으로 모차르트를 동경하는지 알 수 있었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크눌프> 등 수많은 고전 명작으로 전 세계 독자의 마음을 울린 헤르만 헤세도 누군가의 팬을 자처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어찌 보면 그도 사람이니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예술을 사랑하는 힘은 소중하다.’라는 것이다. 음악은 물론 영화, 소설, 전시, 최근에는 연극과 뮤지컬에까지 관심을 뻗치는 나에게 예술은 삶에 없어선 안 되는 친구이다. 그러나 영원히 굳건할 것만 같은 나의 예술 사랑도 효율과 실용성을 내세운 현대 사회의 흐름과 마주하면 위기를 맞곤 했다. 몇 년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데미안>을 사는 것보다 경제실용서를 사는 게 훨씬 유익하다’라는 글에서 이 풍토를 단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저런 의견에 진심으로 동의한 적은 없었다. 진심으로 예술을 사랑한 적이 없으니, 예술에 구원받은 적이 있으니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란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예술을 향유할 때는 이런 의심이 안 드는데, 내가 창작자의 입장일 때 얘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미 뛰어난 작품들이 넘쳐흐르는데, 나 한 명쯤 창작 안 해도 세상은 아무 문제도 없을 텐데, 당장 일용할 양식도 제공해 주지 않는 이 일에 왜 매진해야 하나 회의감이 밀려오곤 했다.

 

‘내가 하는 이 활동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 정말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끝난 줄 알았던 사춘기가 다시 시작되고 또 의미 없는 고민만 이어가던 요즘, 이 책을 읽고 불안한 마음을 잠재울 수 있었다. 예술은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을 살게 한다. 인간을 살고 싶게 만든다. 내가 쓰는 한 글자 한 글자가 소중하다.

 

이 생각을 가장 뼈저리게 느낀 건 책의 초반부 <소나타>라는 단편소설에서였다.

   

 

그녀는 꽃은 꽃일 뿐이고 산책은 산책일 뿐이라는 데 만족할 수 없었다. 꽃은 요정이어야 하고 아름답게 변신한 아름다운 정령이어야 하며, 산책은 의무적으로 하는 소소한 단련과 휴양이 아니라 미지의 것을 예감하는 여행, 바람과 시냇물의 집에 놀러 가는 일, 말 없는 사물들과의 대화여야 했다.

 

-P.40

 

 

가끔 예술이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느끼는 이유 모를 답답함이 정확히 옮겨진 것 같은 소설이었다. 따뜻하고 좋은 남편이지만, 깊이 공감할 수 없다는 그 막막함이 절절하게 느껴졌고, 유일하게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남동생에게서 느끼는 안도감도 뼈저리게 공감됐다. 몹시 우울한 상태였다가 한 음악가의 방에 초대받아 뛰어난 연주를 듣고 곧바로 마음이 풀렸다는 헤세의 개인적인 일화에서도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음악에 관한 헤세의 솔직한 견해 중에선 마치 내가 한 말처럼 느껴지는 문장들이 많아 밑줄을 자주 그었다.

   

 

병들고 산산이 뒤흔들린 우리 세상에서 우리는 이런 경건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꺼지게 두어선 안 될 영원한 호롱불이다. 여기가 보호처고 피난처다. 동방의 쾌활한 심오함에 필적하는.

 

-P.323

 

 

책을 읽는 내내 힘들 때마다 나를 일으켜 주었던 무수히 많은 음악이 떠올랐다. 그 덕분에 나는 이 힘겨운 생애를 버틸 힘을 얻었고, 평탄해 보이지만 굴곡 많았던 삶의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뛰어난 클래식 음악들이 헤세를 지탱해주었고 그 덕에 그가 전설적인 명작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힘주어 말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힘은 소중하다. 그리고 위대하다.

 

 

 

헤르만 헤세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당연히 ‘헤르만 헤세’라는 위대한 이름 때문이었다. 중학생 때 처음 <데미안>을 읽고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매료되었던 경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이후로 <크눌프>를 읽고 더 큰 애정을 느꼈으며. <수레바퀴 아래서>까지 읽은 뒤에야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그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영화 분야에 있어서도 자신 있게 팬을 자처하는 감독이 있다.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다.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어느 가족>,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과 같은 작품에서 일관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을 바라보는 담백하면서 따뜻한 그의 시선을 참 좋아했다. 팬의 마음으로 그의 에세이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들>과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를 읽었는데, 그의 가치관이 영화보다 더 직접적으로 나타난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나와 가치관이 잘 맞는 사람이니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구나’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를 읽으면서도 내가 왜 그렇게 그의 소설을 사랑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예술을 향한 경이, 예술을 비평할 때의 확고한 신념, 전문가와 대중의 영역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태도, 예술가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태도 등이 내가 이상향으로 삼는 가치관과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나는 헤르만 헤세가 인간의 내면을 묘사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를 보면 싱클레어와 한스 기벤라트는 숫기 없고 내성적인, 겉으로만 보면 누구에게도 흥미를 끌지 못할 소년들이다. 그러나 헤르만 헤세는 집요하고 섬세하게 그들의 내면을 묘사했고, 전 세계 독자들이 그들의 고통에 이해하게 만들었다. 이 묘사가 나에게 위로를 주는 이유는 나 역시도 유년 시절 동안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많았는데, 그의 수려한 문장이 이런 나의 내면도 들여다보고 이해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알았다. 그는 자신의 소설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세상을 그렇게 따뜻하고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섬세함이 그에게 불안을 주고 우울감을 심어줄 수도 있지만, 그 덕분에 내면의 상처를 숨긴 수많은 이가 위로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섬세한 그였기에 이 책을 읽는 나는 비언어적인 음악이 문장으로써 살아 숨 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가 묘사한 음악가들을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었다. 더불어 이 독서 덕분에 나와 무관하다고 느꼈던 클래식 음악을 찾아 듣기도 해보았다.

 

혐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대상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예찬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내 눈에는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400여 쪽의 책을 채운 헤르만 헤세가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와 그만큼 수많은 예술가를 사랑하는 나 자신도 전보다 근사해 보였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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