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졸업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

졸업하고 싶지 않았던 막학년의 싱숭생숭함
글 입력 2022.02.18 17:4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드디어 아마도 내 인생에서 마지막일 졸업장을 받았다. 4년의 재학, 그리고 1년의 휴학, 총 5년의 세월을 보낸 대학교로부터 학위수여증을 받았다. 25년이라는 짧은 인생 중 1/5을 차지하는 시간 동안 몸담은 곳과 안녕을 할 시간이었다.


대학의 마지막 학년을 비대면으로 보내다 보니 내가 모든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할 신분이라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여전히 학기가 끝난 2월의 방학 기간인 것 같고, 3월이면 개강했다고 투덜거리며 학교를 나갈 것 같고, 늘 그랬던 것처럼 주어진 과제와 시험 속에서 나를 증명하는 학기가 계속될 것 같은데.


그 생각의 밑에는 고등 교육을 배운다는 이 기관에서 내가 졸업장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g.jpg

 

 

졸업의 사전적 정의는 두 가지다. 1. 학생이 규정에 따라 소정의 교과 과정을 마치는 것. 2. 어떤 일이나 기술, 학문 따위에 통달하여 익숙해지는 것. 규정을 지키며 모난 데 없이 무사히 4년의 교육과정을 밟았기에 첫 번째 뜻의 졸업은 해낸 것 같은데, 두 번째는 자신이 없다.

 

내가 정말 지난 시간 동안 공부한 것들로 사회에 뛰어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 여전히 나는 가르침이 필요하고, 스스로 뭔갈 해내기엔 부족한 아이 같은데 학교는 나에게 어서 떠나라며 졸업장을 쥐여주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제 몫의 인생을 살만한 나이인 지금까지,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학생이라면 언제나 다음 목표를 생각하며 달려왔다. 좋은 성적, 좋은 고등학교, 이름 있는 대학교, 취업 잘되는 전공. 그리고 그걸 다했으니 한 명의 건장한 성인으로서 밥벌이하고 사는 게 당연하다는데.... 나는 아직 모르겠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물어봐 주고 도와준 곳은 하나 없었는데, 각자 덩그러니 졸업장만 내밀고는 홀연히 시간 속으로 사라진 기분이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안은 채 졸업식 날이 다가왔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학교 대강당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졸업식은 취소되었다. 학위복 대여는 가능하니, 학교에 와서 사진을 찍는 것까지는 가능하다는, 불행 중 다행인 소식을 듣고 학교를 다녀왔다.

 

 

5.jpg

 

 

남들 사진에서나 보았던 묵직한 학위복을 입고, 학사모를 썼다. 내가 가장 많이 드나들었던 단과대, 도서관, 호수공원 등을 차례로 다니며 사진을 남겼다. 졸업식 전날만 해도 이곳저곳을 부모님과 함께 거닐며 추억에 잠겨 회상하는, 고상한 시간의 졸업식을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최고 기온이 영하 4도에 강풍이 불던 그날은 요란 법석 그 자체였다. 강풍에 휘까닥 뒤집어진 머리칼 정리하느라, 꽃다발 예쁘게 드느라, 손은 또 꽁꽁 얼어서 핫팩으로 응급처치 하느랴, 정말 정신없었다. 그런데 그게 참 재미있었다. 나의 지난날의 고생을 알아주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감상적이게 가라앉아있던 마음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긴 시간 학교단체활동을 함께했던 친구들도 찾아와 졸업을 축하해줬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었는데, 그 애들의 얼굴을 보니까 생생해졌다.

 

'아, 나 이런 인연들이랑 무척 재미있고 신 났던 일들을 함께했었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적어둔 한 줄이 아니라, 대학생활 동안에 내가 직접 움직이며 이뤄냈던 그 순간들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꾸민 모습은 달라졌어도, 얼굴 생김새는 그대로인 이 친구들이 내 지난 시간의 증거 같았다.

 

 

6.jpg

 

 

우당탕탕 기념사진 이벤트를 마치고 학위복을 반납했다. 그러고 나서 학위수여증을 받으려는데, 담당자가 내게 총 3개의 문서를 줬다. 하나는 당연하게도 학위증이었고, 하나는 우등상, 그리고 공로상이었다. 지난 4년간 노력해 얻은 학업 성적, 그리고 문화서포터즈 단체로 1년 동안 애썼던 시간을 인정해주는 상들이었다.

 

너무나 형식적인 종이 상장임에도, 예상치 못했던 이 종이들은 나에게 자신감을 찾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해온 것들을 별것 아닌 걸로 치부하지 말고, 아끼고 사랑해보라고. 그동안 노력 많이 했고, 참 수고했다고.


대학교 졸업, 이다음의 루트인 취업에 주위 사람들이 망설임 없이 뛰어들기에 나는 좀 작아져 있었던 것 같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게 창피해지고, 속상해지고, 내가 잘하는 게 없기에 잘하고 싶은 것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나만의 비공식적인 졸업식을 마치고 온 지금, 마음이 조금 편안하다. 내가 허무하게 날려버린 줄 알았던 시간은 사실 눈물 콧물 없이는 다시 볼 수 없는 엄청난 순간들이었다는 걸, 학교의 안녕과 함께 깨닫고 돌아왔으니.

 

 

 

아트인사이트 명함.jpg

 

 

[이채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