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록을 정리해야 한다는 집념에서 조금 벗어났다 [사람]

글 입력 2022.02.2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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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정리가 안 되는 기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친구와의 가벼운 대화에서 이번 글의 주제가 튀어나왔다.

 

N: "여기저기에 적다 보니 기록들이 다 흩어지는 것 같아. 너는 기록을 잘 관리하는 방법을 찾았어?"라고 친구가 물어보았다.

 

내가 답했다. J: "일과 관련된 기록은 체계적으로 기록을 해야 하겠지만 영감이나 내 생각은 굳이 깔끔히 정리하지 않고 쌓아두고 있어. 이제는 그게 괜찮아. 예전에는 적어놓은 글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았었거든. 그런데 이제는 일단 모아두고 나중에 필요할 때 꺼내서 수기로 적어봐. 이렇게 하니까 쌓여있던 과거의 내가 적은 기록이 정리도 되고 의미도 있더라고. 쓰임새를 찾은 거지. 이제는 꼭 당장 정리를 해서 당장에 쓰임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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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고 내 친구도 그렇고 쌓여있는 글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미완성인 채로 남겨져 있는 개인적인 기록부터 세상의 멋진 말을 옮겨놓은 인용구까지, 버리지 못하는 글들이 많았다.

 

날을 잡고 여러 번 정리를 해봐도 여전히 감당할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그 무게에 답답함을 느낄 정도로.

 

하지만 최근에 나는 이러한 '감당이 되지 않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는 최근 일련의 사건들이 영향을 끼친 것 같아 기록해보려 한다. 아래의 세 가지가 용의자들이다.

 

1) 김연경 선수의 자서전 2) 드로우앤드류/김짠부의 영상 3) 책장 정리

 

 

 

김연경 선수의 자서전


 

오늘 아침 늑장을 부리며 집에서 나왔다. 커피를 마시면서 머리를 비우고자 글을 썼다. 예전에 쓰다만 김연경 선수의 자서전 서문을 옮겨 적었다. 그때 이 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렇게 배구에 몰입하기 위해 삶의 다른 부분은 여유롭게 생각했다. 조금은 허술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완벽하려 하지 않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한발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최근에 내가 너무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완벽해지려 의식하고 행동한 건 아니지만 남에게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버둥거리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도 없고 내가 잘하는 부분 외의 영역에서는 조금 허술해도 괜찮은데 나도 모를 '다 잘해 보이고 싶다'는 강박을 은연중에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을 옮겨 적으면서 그제야 힘을 뺄 수 있었다.

 

 

 

드로우앤드류/김짠부의 영상




 

아침에 늑장을 부리면서 유튜버 드로우앤드류와 김짠부가 함께 이야기하는 영상을 시청했다. 주 내용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일로 돈을 벌어보자는 이야기였다. 방법론적인 내용이 아니라 생각을 깨뜨려주는 영상이었다.


기계공학과 친구가 한 달동안 코딩공부에 열중한 후에 '이제야 제대로 된 공부가 뭔지 알겠다'며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하던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배우고자 하는 일에 몰두해보고 제대로 '내가 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것. 나도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인문학도로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 몰랐다. 확실한 꿈이나 목표를 갖고 있지 않아서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나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영상을 보며 조금은 갈피가 잡혔다. 그래서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것, 아무리 쓸모없고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해도 일단 적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김연경 선수의 글을 옮겨둔 후 공책의 새로운 면을 펼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적어보았다.

 

 

 

책장 정리


 

어제저녁에 갑자기 책장 정리를 했다. 원룸에서 지내면 정리를 자주 하게 된다. 금방 지저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화장실, 부엌, 서랍, 침대는 자주 청소를 하는데 책장은 손을 못대고 있었다.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 지 모르겠기에 오래도록 미뤄왔는데 어제 갑자기 가득 찬 책장이 답답해 보였다.

 

보이는 곳에 가득한 종이와 책이 답답했다. 그래서 아주 갑작스럽게 책장을 비우고 지금 당장 사용하는 책들만 꽂았다. 나머지는 안 보이는 책장 아랫부분으로 모두 옮겨두었다. 보이는 곳에 꽂아두면 책을 잘 꺼내 보고, 공부하거나, 언젠가 쓸 것이라 생각해서 꽂아두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바로 쓸 것 같아도 일주일 동안 당장 쓰지 않은 책들은 예외없이 아래로 내렸다.

 

한층 비워진 선반을 보니 좋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깨달았다. 아무리 잘 보이는 곳에 두어도 안보려면 안 본다는 것. 잘 보이는 곳에 두든 안 보이는 곳에 두든 어차피 안 하면 평소에 정신 사납지 않도록 비워두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비움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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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ro.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


 

'감당이 안 되는 글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내게 정말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김연경 선수의 말처럼 그보다 내게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깔끔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건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은 아니기에 완벽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그래서 내게 지금 중요한 일은 뭘까?'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이 질문은 드로우앤드류/김짠부의 영상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써보는 활동으로 이어졌고, '정리 안 된 영감을 가끔 수기로 적는 활동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적당히 정리가 안 된 기록으로도 이미 나는 괜찮았었는데, 깔끔하고 완벽하게 정리를 해야 한다는 집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좀 알게 되었다. 책장에 잘 쓰지 않는 책들까지도 다 보이는 곳에 넣어두면 답답하고 지저분하게 느껴진다는 것. 어차피 꺼내둬도 잘 안쓰니 차라리 정말 잘 쓰는 책들만 꺼내두고 빈 공간을 남겨두는 게 훨씬 더 낫다는 것.

 

이처럼 삶에서도 내게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 중요한 일들에 집중하고, 이를 단련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다른 부분에서는 조금 헐렁하고 엉망진창이어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완벽해지는 게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사람이 다 잘하고 모든 면에서 완벽할 필요도 없었다.

 

좋아하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는 잘하지 않더라도 그러려니 여기는 마음가짐. 이런 마음을 배우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기록을 정리해야한다는 집념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이진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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