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음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글 입력 2022.02.1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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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잘 산다는 헛된 말로 타인을 안심시키다 자기 자신까지 속여버리는 법. 둘째는, 착실하게 죽어감을 인정하는 것. 말하자면 동네카페에 갈 때마다 꼼꼼히 모으던 스탬프처럼, 하루하루 죽음을 축척해 가는 것. 의사는 그게 정신병이라고 했고, 무당은 조상령이라 했다. 굿판에 김을 앉혀두고 그의 모친은 온 몸을 신복으로 싸멨다. 가득한 게 풍악의 소음인지 칼을 타는 서늘한 감각인지, 이름 모를 좁쌀 따위를 맞으며 김은 생각했다. 굿은 지체되지도 멈추지도 않았다. 눈 앞이 까매지는 것은 항상 자신이 ‘잘 살아오던 아이’로 회자될 것이 분명하다는 억울한 생각에 다다를 때 쯤이다. 김의 권태는, 그런 오후가 벌써 6년째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해 여기서 끝나 있었다. 김은 어쩌다 잘 사는 방법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내리게 됐는지, 김과 친모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6년의 권태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김은 그 권태를 어떻게 다뤄갈 것인지, 이들 중 어떠한 답도 얻을 수 없는 무책임한 이야기이다. 아니, 이건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문장들만 쌓이고 쌓이다 보면 내 세계는 냉장고에 다닥다닥 붙은 단발성 메모와 다를 바 없어질 것이다.

 

페이지를 넘긴다.


 
행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하지 않은 기분은 너무나 잘 알았다. 불공평했다. 인생을 이루는 모순의 8할은 이 사실로부터 기인함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단식을 결심했다. 성아는 나의 단식 선언을 기꺼이 수긍해주었다. 퇴근하는 성아의 손에는 일주일의 한 번 꼴로 누런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는데, 먹는 입이 하나 줄었다고 간간이 사오던 닭강정 8000원어치를 5000원어치로 바꾸는 선택 따위는 하지 않았다. 성아는 꿋꿋이 밤을 새웠고, 8000원 어치를 홀로 먹어 치웠다. 나의 단식이 성아의 과식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리고는 8000원어치의 행복이 꼭 5000원 정도로만 느껴지는 병에 걸렸다며 억울해했다.
 

 

이게 뭐야. 행복하지 않음과 단식이 어떻게 이어지는 건데. 생의 모순에 괴로워 서서히 죽어가겠다는 선언인 건가? 생이 괴로워진 원인은 무엇인가? 성아는 연인인가? 가족인가? 사랑하는 이의 단식 선언을 아무 문제 없이 받아들여 준 건가? 하여튼 너무 많은 설명이 결여되어 있는 건 마찬가지이다. 알 수가 없다.

 

또 다시 넘긴다. 은은한 혐오감 위에 애써 기대를 포개며.


 

"익사는 가장 최종적인 죽음의 형태예요. 왜, 음모론에 진심인 놈들이 그런 말을 종종 하잖아요. 견갑골은 등지느러미의 흔적 기관이고, 쇄골은…. 아, 뭐라고들 떠들던데. 아가미 뚜껑의 초기 형태랑 유사하다던가. 그게 그쪽에서는 꽤 신빙성 있는 주장이라나요. 삼촌이 그 분야에 있거든요. 하여튼 그쪽도 씹히는 말이 많다던데. 누구는 등 뒤로 흙인가 돌인가 하는 걸 던졌더니 인간이 쑥 생겨났다고 하고, 누구는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하고. 사실 다 웃깁니다. 그런 거 보면 과학이나 정치나 다를 게 없어요. 납득보단 설득의 문제죠."

 남자가 이온 음료를 들이킬 때마다 날개뼈가 울렁였다. 파하, 하고 터진 숨에 습기가 그득히 차올랐다. 자켓 소매를 올린 그는 징그럽게 떨어지는 땀을 죽 닦아냈다. 그새 안면 좀 텄다고 궁금하지 않은 말들을 땀처럼 흘려냈다. 부채질을 차차 늦춘 이장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뭐, 증거는 좀 잡혔다나?"

"영감님, 증거는 잡히는 게 아니라 잡는 거예요."
"참나, 범인보다 트집을 먼저 잡아버리네."

 

 

아이고, 이 웃기지도 않은 말장난은 뭐지. 장르물 써보겠다고 꽤나 신났던 모양이다. 하여튼 대강의 개요와 인물 설정을 휘갈겨 놨긴 한데 조잡한 건 둘째 치고 도무지 이야기의 저의를 알 수 없다. 아니, 그때도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는 없었을 지 모른다. 해야 한다는 강박뿐이었을 지도. 어쩌면 나는 바다만큼의 거대한 항상성을 지닌 인간일 지도 모른다. 야속하다.

 

더 이상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낡은 창을 내리고, 커서만 바쁘게 깜빡대던 문서 창도 내리고, 침대 위에 몸까지 내린 채 나는 끝없이 낙하하는 폭포 한 줄기가 된 기분에 휩싸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날들의 찌꺼기 앞에서 나는 자주 얼굴을 붉히고, 그보다 더 자주 고민한다. 스스로를 선택의 기로에 세운다. 그때보다야 조금은 더 어른이 된 내가 책임감을 업고 이를 버려야 할지, 시원한 이불킥 한 번으로 그냥 털어내야 할지,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유약한 믿음 하에 기꺼이 머릿속 냉동고 문을 열어 얼려 두어야 할지. 적어도 끝없이 부패하며 악취를 풍기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대개 마지막 선택지를 고른다.

 

그러나 이젠 꽉 들이 찬 냉동고를 열어 보기가 두려워 바쁘게 진동하는 하얀 몸체 앞에서 귀를 틀어막는 인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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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게 된 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와의 술자리에서야 적당한 이야기를 안주 삼아 꺼내 놓을 만큼의 사회성은 있으나, 필시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다. 들려 주어야만 하는 이야기는 더더욱. 가벼운 화두로만 위태롭게 쌓아올린 대화는 그 어떠한 만족감도 상실감도 남기지 않고 그저 시간에 의해 풍화된다. 꼭 어떤 가치를 가져야만 발화될 자격을 부여 받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창작자라면 그러한 이야기들을 기꺼이 내놓고 싶다.

 

비슷한 종류의 권태감에 시달릴 때마다 이 문제가 '듣고 싶은 이야기의 부재'로부터 기인하는지 자주 고민했다. 그러나 여전히 듣는 것은 즐겁다. 새로운 사람에 늘 목 마르다. 뉴스의 범람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박탈되고 녹슬어가는 것이 항상 안타깝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발굴해 새로 쓰는 것도 분명 무척이나 의미 있는 일이 될 텐데, 그러기엔 두려움이 앞선다. 내가 뭐라고 싶은 두려움. 나는 이야기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에 불과하다는 체념.

 

맞다, 사실 다 핑계이다. 나에게 쓰지 못함은 곧 연결되지 못함이다. 그 누구와도 쉽사리 연결되지 못한다 느끼는지, 요즘 답지 않게 내가 외로운가 보다.

 

이 글은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 거듭 스스로를 혐오하다 간만에 용기 내어 냉동고를 열어본 후일담이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결론은 '없음'이다. 인생을 이루는 수많은 사건들이 그러하다 느낀다. 결국 '없음'을 향해 달려가는 '있음'들의 삶이다. 슬프게도 나는 이야기 보따리에 이야기 대신 바람만 가득 채워 놓은 사람이고 -적어도 쪼그라 드는 꼴을 보는 것이 괴롭기에-, 완성하지 못하고 유기한 수많은 문장들을 애도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화하고 쓰려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야기로서 나를 증명하는 존재가 되고 싶기 때문일 테다. 다소 거창하더라도.

 

단단히 묶인 매듭을 전혀 풀 수 없어진다면 잘라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앞서 첨부한, 차마 이야기가 되지 못한 문장들은 그때의 내가 과감히 잘라낸 실의 한 조각일지도 모르겠다. 어설프게 끝을 맞은 것들에서마저 의미를 찾고 마는 것이 내 유약한 장점이기도 하니까, 적어도 그들을 아주 혐오하진 않으려고 한다.

 

내 삶의 터전이 다분히 이야기할만 한 공간이 되기를, 내가 충실한 이야기꾼으로서 굳어갈 수 있기를 기도하는 요즘이다. 그 과정에서 기꺼이 나를 읽어줄 누군가가 생긴다면, 더욱 좋겠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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