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짝꿍 하자 [사람]

짝꿍이라는 단어는 정말 모호하다.
글 입력 2022.02.1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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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로 사람들의 일상을 읽는 걸 좋아한다. 요즘은 유독 “짝꿍”이라는 단어가 눈에 걸렸다. 사람들은 짝꿍을 보통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1 - 짝꿍이랑 이번 주에만 벌써 두 번째로 하이디라오에 갔다. 눈썰미 좋은 직원이 우리를 알아보고 서비스를 얹어주셨다. 조만간 또 먹으러 가야지.

 

2 - 붕어빵이 먹고 싶어져서 짝꿍에게 슬쩍 얘기했다. 가볍게 얘기한 것뿐인데, 집에 오던 짝꿍이 정말 붕어빵을 사 왔다. 덤덤히 봉투를 내미는 짝꿍에게 감동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3 - 저녁에 짝꿍과 대화를 하다가 제대로 웃음보가 터졌다. 며칠 전의 일화를 얘기하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그게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짝꿍은 이따금 당사자가 모르는 감정까지 알아채 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두 번째 예시의 짝꿍은 스쳐 가는 말을 듣고도 빠르게 붕어빵을 사다 주었다. 아마 예시의 주인공이 이전에 먹지 못한 걸 밤새 중얼거린 적이 있었을 거라고 예상한다.

 

사람들은 짝꿍과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의 감정 패턴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간다. 점차 상대방의 행동과 감정을 쉽게 추측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안정감은 중독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편한 느낌을 주는 사람과 점점 많은 시간을 함께한다. 둘만 아는 이야기가 쌓여 별것도 아닌 일로 더 자주 웃게 된다. 남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웃음 포인트와 두 사람조차도 왜 이렇게 웃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잦아지며 서로의 짝꿍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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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과 애인은 동의어가 아니다. 동거인이나 아주 가까운 친구일 수도 있다.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부류의 짝꿍이 있다. 이미 아주 가까웠던 친구와 같이 살게 되는 경우이다. 함께 드라마를 보며 가타부타 열심히 입을 움직이고, 집에 오는 길에 ‘먹고 싶은 거 있어?’라며 연락을 하는 사이. 난 그런 짝꿍이 부럽다.


물론 연인을 지칭할 때도 종종 쓰인다. 사람들은 애인을 직접 밝히기 곤란한 상황에 자주 짝꿍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일상 대부분을 함께하기에 숨기기는 어려울 때 짝꿍이라는 호칭을 붙이면 무난히 넘어갈 수 있다.


짝꿍이라는 단어는 정말 모호하다. 친구일 수도 있고, 애인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동성만을 지칭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성별 무관하게 사용한다. 개인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매우 커서 오히려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상한 단어다. (세상 사람들의 편견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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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블로그 일상 글에 부쩍 그 단어가 자주 보이기에 나도 짝꿍이 하나 가지고 싶었다. 유감스럽게도 짝꿍은 마트에서 덜컥 사 올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었다. 친한 친구와 짝꿍은 다르다. 내 친구들이 이걸 읽으면 좀 서운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매일 육성으로 대화를 나누며 숨 쉬듯이 일상을 공유할 사람이 조금은 필요했다. 마땅히 가까이 사는 친구도 없는 내가 짝꿍을 만들 수 있을까. 그저 부러운 눈을 하고 블로그를 구경했다.


그러던 중 최근 새해를 맞아 인스타그램 피드를 정리했다. 보관해둔 옛 사진들을 보며 ‘맞다, 맞다. 이런 일이 있었지’하고 과거의 나에게 맞장구쳤다. 스크롤을 내리고 내리다가 2019년의 게시글에 도착했다. 카페에서 이름이 길고 어려운 음료를 주문한 게 재밌었다는 실없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 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리고 딱 좋은 타이밍에 그 날을 함께한 사람에게 메시지가 왔다. 사진 위에 뜨는 메시지를 보고 문득 깨달았다.


우리, 짝꿍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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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매일 연락하긴 했다. 집이 좀 멀어서 곤란했지만, 그래도 아득바득 시간을 쪼개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만났다. 둘 다 수도권에 사는데도 기가 막히게 반대편 위치라, 편도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 거리라는 극악무도한 거리를 헤치고 만났다. 달랑 한 시간 반 얼굴을 보겠다고 딱 그만큼을 달려 만난 날, 이게 사랑이지 다른 게 사랑이냐며 둘 다 감동보다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하고 웃었다.


어디선가 들은 또 다른 짝꿍 이야기가 생각난다. 친구의 짝꿍은 우울하다는 말만 들으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지금 가겠다고 차 키를 챙긴다고 한다. 짝꿍에게만큼은 시간 같은 건 전혀 두렵거나 아깝지 않다. 이제는 나도 그 감정을 안다.


짝꿍이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네 짝꿍을 사랑하니?” 그렇게 물으면 다들 어렵지 않게 “응, 사랑하는 것 같아”라고 답할 것 같다. 시선 한 번에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글을 다 쓰고 나니 갑자기 신이 난다. 내 짝꿍에게 이 글을 보여주어야지. 우리가 어느새 짝꿍이 된 것 같다고 말해줄 거다. 내 잠재적 짝꿍이 이 뜬금없는 물음과 그 의미를 인정해줄지 궁금하다. 내 짝꿍이니까, 아마 갸웃거리다가도 결국은 수긍해줄 거다.


너도 나를 짝꿍으로 생각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짝꿍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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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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