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이별은 없으니까 - 노매드랜드(Nomadland)

웃고 털어내고 돌아가요
글 입력 2022.02.0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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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와의 첫 만남이 생각난다. 작년 여름, 알바를 마치고 집에 오면 새벽 1시 반이 넘어있다. 아침이 되면 간만에 영화관에 가리라 하고 다짐했고 알람까지 설정했다. 하지만 몸은 피곤하고 졸려 늦잠은 어쩔 수 없는 핑계가 아닌 선택이었고 버스도 놓쳤다. 빠르게 지하철을 탔지만 멍 때리는라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쳤다. '창동역'이 아닌 '방학역'에서 내렸고 결국 먼 길을 돌아 영화관에 도착했다. 당연하게도 원래 보려고 했던 영화는 못 봤다. 대신 가장 빠른 영화를 골랐다. 그리고 첫 만남이었다. ‘노매드랜드’

 

 

"한 마디로 벅찼다. 벅찬 영화다."

 

 

차박에 대한 로망, 캠핑카를 타고 여행하며 사는 로망. 흡사 ‘리틀포레스트’와 비슷한 로망을 준다. '리틀포레스트'에서 농사를 짓고 자연 속에서 얻은 과일을 먹고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는 주인공을 보고 농촌에서의 삶의 힘든 점을 간과한 채 그저 그런 삶을 동경한다. 이와 비슷하게 유랑하며 사는 삶의 힘든 점은 보지 않고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누비는 환상은 가득하다. 나 또한 그렇다. 그저 귀농하고 싶고 차를 타고 떠돌아다니고 싶다. 힘들고 어려운 건 생각 안 하고 동경만 하는 건 어쩌면 그저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애써 외면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까 싶다.

 

‘리틀포레스트’에서 농사의 힘든 점이 나오는 것처럼 ‘노매드랜드’에도 차박의 힘든 점이 나온다. 아주 많이 나온다. 배설물을 직접 치우고 추운 겨울에 떨면서 자야하고 허가받지 않은 곳에서는 주차도 할 수 없다. 타이어가 터지거나 차가 고장 나면 큰 돈도 필요하다. 주인공 ‘펀’도 분명 힘들어하고 사연이 깊은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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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직장을 잃고 먼저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고 잊지 못한다. 그녀의 삶은 차를 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지만 어쩌면 남편의 주위를 맴돌기만 한 건지 모른다. 하지만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위로와 자연의 경이로움은 그녀와 동시에 우리들의 내면을 톡 건든다. 우리도 잊지 못하는 내면 속 깊은 죄책감과 그리움이 있다. 애써 미안하고 보고 싶어서 꾹 잡고 같이 살아간다.

 


"이 생활을 하면서 제일 좋은 건 영원한 이별이 없다는 거예요.

늘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죠.

그리곤 만나요.

꼭 만나죠."


  

하지만 영원한 이별은 없다. 언젠가 다시 만날 거고 그 냄새와 흔적은 다시 기억하며 현실로 가져올 수 있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 ‘펀’ 역시 길에서 만났던 인연들을 다른 곳에서 또 만나 위로를 받았다. 그리운 아버지가 주신 그릇이 깨졌을 때 접착제로 다시 이어 붙이고, 남편과 함께 있던 집을 눈에 한 번 담고 다시 떠나고, 남편과의 추억이 가득한 물건을 정리한 후 그녀는 비로소 떠밀려온 방랑자가 아닌 여행자가 됐다. ‘스완키’가 봤던 알래스카의 풍경을 이제 그녀도 볼 준비가 된 것이다.

 

*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방황한 그녀가 희망을 가지고 엑셀을 밟을 때 영화는 우리에게 위로를 건넨다.

 

잊을까 봐, 못 만날까 봐 한 곳에서 기다리지 말고 언젠가 꼭 다시 만날 테니 떠나라. 주인공처럼, 그녀의 이름 ‘펀’처럼 웃고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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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이 너무 강해 얼굴을 때리는 것처럼 불던 바닷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장 벅찬 장면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때리는 듯한 바람에 뭘 털어내고 날려 냈을까. 늦잠과 나의 부주의로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영화지만 근래 가장 벅참을 줬다. 우연과 운명에 대해서도 다시 느끼게 해준 영화다.

 

언젠가 다시 만나듯 언젠가 다시 찾아보겠지.

 

 

[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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