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벌새', 치열한 날갯짓이 향한 자리 [영화]

세 가지 키워드로 살펴보는 '벌새'의 숨겨진 이야기
글 입력 2022.02.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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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는 벌새의 주요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감상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꾸미기][크기변환]벌새_포스터.jpg

 

 

 

영화 '벌새'를 아시나요?



나는 ‘벌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그것은 어느 날 오후, 버스를 탔을 때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우리나라 독립영화인 벌새가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고 있어 자랑스럽다는 DJ의 말에 나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벌새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되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주인공인 박지후 배우를 운명처럼 학교 후배로 만나게 될 줄은.

 

 

[꾸미기][크기변환]모토로라.jpg

 

 

 

대놓고 드러나지 않는, 그래서 더 인상깊은.


 

초반에 여주인공 ‘은희’에서 초점을 맞춰 시작한 영화는 곧 재미있는 방식으로 시대적 배경을 드러냈다. 지금은 사라진 휴대폰 ‘모토로라’는 지금보다 오래 전의 한국이 배경임을 내게 상기해주었다. 많은 영화들이 처음 시작할 때 ‘1992년, 한국’과 같은 식으로 관객들에게 배경을 알려주곤 하는데, 이렇게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영화는 은희가 경험한 일들을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장면으로 드러냈고, 이런 연출은 영화를 보면서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요소는 ‘혹’, ‘영지선생님’, 그리고 ‘사랑’이었다. 이 3가지 키워드에 대해 내가 느낀 점들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꾸미기][크기변환]혹수술.jpg

 

 

 

혹은 어디로 갔을까


 

먼저, ‘혹’에 대해서다. 작중 은희는 턱에 혹이 생긴다. 처음에는 귀밑 간지러움으로 시작했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엄마가 왜 지금에서야 말했냐고 하자 은희는 ‘이제야 알았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은희의 귀밑 간지러움이 언제 시작된 것인 것 알지 못한다. 어쩌면 작중 등장한 것보다 훨씬 전부터 은희는 귀밑이 간지러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작품에서 등장한 차별과 폭력이 은희의 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은희와 은희의 친구는 오빠에게 폭행을 당한다. 은희는 부모님에게 오빠가 때렸다는 말을 하지만 부모님은 일방적인 폭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싸우지 말라는 말로 일단락시킨다. 이처럼 폭력이 당연시되고, 아무도 진심으로 생각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은희는 친구에게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지만 마치 은희의 턱에 생긴 혹처럼 그들은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 나중에 그 혹은 처음보다 점점 심각해져서 결국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하기에 이른다. 아빠는 그제서야 눈물을 흘린다.

 

은희는 수술이 끝난 뒤 혹이 어디로 갔냐고 거듭 묻는다. 이 장면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혹이 폭력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혹, 그러니까 폭력이 정말 사라진 것인지 거듭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정말 근본적인 해결이 된 것인지 물음을 던진 것이 아니었을까? 은희는 얼굴에 큰 상처가 생겼고 주변에서는 흉터가 남을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겉으로 흉터는 남지 않았다. 하지만 폭력에 의한 상처에는 마음에 오래 흉터가 남는다. 오히려 흉터가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내면의 흉터를 생각해보게끔 의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꾸미기][크기변환]영지 왼손잡이.jpg

 

 

 

선생님의 왼손


 

그렇다면 은희가 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게 해준 존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은희의 소중한 한문 선생님, 영지 선생님이다. 은희와 영지 선생님의 첫만남은 특이했다. 선생님이라는 이미지에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게, 담배를 피고 있던 영지 선생님은 은희가 그 동안 만난 어른들과는 달랐다.

 

아이들이 자기소개를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름, 나이, 소속학교. 이런 단편적인 것들로 아이들을 정의 내렸던 사람들과 달리, 영지 선생님은 그들에게 좋아하는 것을 물었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던 관심사를 수줍게 이야기하고 꿈을 말하는 아이들은 빛났다. 영지 선생님은 위태롭게 흔들리던 은희에게 이정표를 제시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느낀 은희가 편지를 쓸 때, 나는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영지 선생님이 필기할 때 왼손으로 쓰는 게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은희 역시왼손잡이였다. 단순한 우연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에 비해 그 수가 적은 편이니까.

 

선생님은 병원에 간 은희에게 “너 이제 맞지 마.”라는 조언을 한다. 당연시되는 폭력에 대한 저항, 둘은 작은 혁명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왼손잡이를 특이하고 고집이 센 괴짜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를 뿐, 틀린 것이 아니다. 왼손잡이가 소수인 것처럼, 당시 사회에서 ‘그만해!’라고 저항할 수 있는 사람도 소수였다. 은희와 영지 선생님이 처한 입장을 왼손잡이라는 장치를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말도 안되는 일이 참 많지."

 

영지 선생님의 이 말이 처음에는 복선이 될 줄 몰랐다가 결말 부분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성수대교라는 큰 다리가 무너져서, 영지 선생님이 죽게 되는 일.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어난 것은 작중에서나, 역사적으로나 사실이었다.

 

은희는 영지 선생님이 한 것처럼 손가락을 움직인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기분이 들 때 위안을 주는 행동이다. 그 장면을 볼 때 나는 뭔가 가슴에서 울컥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는 은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상상이 가서.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간다. 살아가야만 한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고 나서, 상처가 남은 아빠의 팔뚝이 조명되었을 때도 나는 이 느낌을 받았다. 상처가 있어도 사람은 붕대를 붙이고 남은 일생을 살아 간다. 이 영화가 던지는 덤덤한 메시지였다.

 

 

[꾸미기][크기변환]여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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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한번쯤 겪었던.


 

은희는 여자친구와, 남자친구가 있었다. 어쩌면 상황 자체에는 관객들이 쉽게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은희는 그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의지할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은희는 청소년기에 우리의 흔한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는 존재이다. 부모님께 관심을 받고 싶어서 사고를 치기도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랑하고 싶어한다.

 

도둑질을 하거나 두 명과 사귀는 일은 없을지 몰라도 비슷한 감정은 누구나 한번쯤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과 헤어지고 새롭게 만나는 그런 은희의 흔한 경험에 공감하게 된다. 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그렇다. 은희가 겪은 구체적인 일에 공감하기보다는 그냥 그 시절에 상상하고 생각했던 것들, 느꼈던 감정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꾸미기][크기변환]마지막.jpg

 

 

 

마치 벌새처럼


 

영화는 예쁜 풍경이 등장하기도 하고, 번화한 도시보다는 시골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실제로 겪을 법한 일들로 이루어져있지만 나는 작품을 보는 내내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언젠가 파멸할 것만 같은 느낌. 지금 와서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니 작품에 내재되어있는 폭력의 요소, 불안한 인간관계가 어린 은희에게 얽혀 그녀가 잘못된 선택을 할 것만 같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은희는 그냥 그렇게, 덤덤하게 살아간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겠지만 우리는 이를 받아들이고 산다. 영화가 언젠가 터질 것같이 불안한 이유는, 우리 인생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은희처럼 아픔을 수용하며 상처를 딛고 계속 살아갈 것이다.

 

인생을 그려낸 영화 ‘벌새’의 치열한 날갯짓처럼.

 

 

출처

벌새(2004), 김보라 감독, 엣나인필름 배급

 

 

[변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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