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인생의 주도권은 내꺼야 –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도서]

글 입력 2022.02.06 14:2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가끔 아주 가까운 관계의 사람이 나를 온전히 존중해주지 않고, 돌연변이 취급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이는 주로 가족이라는 형태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러한 느낌은 한 번 들기 시작하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답답함을 없애기 위해 대화를 시도해봐도 여전히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기분만 들고,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상충된 의견은 마치 각진 모서리끼리의 싸움과도 같아서 서로를 찌르기만 하고, 결국 분노와 고독을 낳는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갈등을 겪는 자,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을 1순위로 두어야 하는 K-장녀, 지적 감성적 성장을 저해하는 척박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은 청소년, 집단 속에서 돌연변이라도 되는 듯이 괴짜 취급을 당하는, 누군가는 이들을 관습을 벗어나려는 습성을 가진 ‘이상한 아이’로 바라본다. 그러나 이들은 삶을 자유롭게 그리고 싶어 하는 ‘특별한 아이’일 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훌리아처럼.

 


표지.jpg

 

 

이야기는 훌리아의 친언니인 올가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올가의 죽음은 훌리아의 가족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훌리아의 엄마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사로잡혀 종국에는 올가의 죽음에 훌리아의 잘못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올가의 죽음으로 인해 훌리아는 졸지에 올가의 역할까지 이행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착하고, 순수하고, 고분고분하고, 타지로 대학을 가지 않고,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완벽한 멕시코 딸들만이 하는 것들을 원하는 엄마와 그걸 거부하는 훌리아의 갈등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올가의 죽음 이후 훌리아의 삶은 매일매일 삐뚤삐뚤한 선을 닮아갔다. 그 속에서 훌리아는 얌전한 줄만 알았던 올가의 비밀을 발견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자신을 믿어주는 조언자를 만나고, 아주 잠깐 평화로운 곳에 있기도 한다. 하나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해나가며 훌리아는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했고, 끝내 엄마와 제대로 된 대화를 시도한다.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진 못하지만, 서로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만은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소원인 뉴욕으로 대학을 가며 자유를 쟁취한다.

 

올가의 죽음이 이야기의 시작을 끌어갔던 것에 반해 책에서의 비중은 크지 않다. 오히려 훌리아가 단서를 찾아내고 추리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에 조금 더 의의를 둔 것 같았다.

   

 
“그냥 우린 너무 달라요. 엄마는 내가 거칠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원하는 게 나한테는 말이 돼요. 저는 독립하고 싶어요. 내 힘으로 내 인생을 살고 싶어요. 스스로 선택하고 실수하고 싶다고요. 엄마는 단 한 순간도 빠짐없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려고 해요. 그래서 물에 빠진 것처럼 숨이 막혀요.” -306p
 

 

훌리아는 자유를 갈망하고, 엄마는 그를 저지한다. 자식이 늘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과도한 보호는 훌리아의 목을 졸라맸다. 훌리아의 엄마에게 훌리아는 돌연변이 괴짜에 가까웠다. 자신이 자란 환경에서 형성된 안전 막은 유달리 유순했던 첫째 올가에 의해 더욱 단단해졌고, 멕시코 딸은 안전 막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훌리아에게도 당연히 적용되었다. 그녀는 훌리아와 올가가 자매라는 이름을 빌린 다른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훌리아 자체를 온전히 존중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쌓아 올린 벽을 깨트리려는 훌리아를 감시하고, 사사건건 캐묻는 질문을 하며 불완전한 훌리아를 완벽한 멕시코 딸로 만들려고 했다. 아마도 그녀 역시 완벽한 엄마가 아니었기에 이런 방법 말고는 몰랐을 것이다.

 

부모의 과도한 보호는 때론 자식의 탈선을 야기하기도 하며, 자립성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부모의 눈에 자식은 마흔이 되어도 여든이 되어도 여전히 아기 같겠지만, 언젠가는 그들의 물리적 나이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물리적 나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평소엔 외면하다가 집안이 힘들 때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한다거나 기성세대의 기준에 맞추어 무언가를 강요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삶에 점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감당하는 법을 알려 주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한 선택에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환희와 좌절을 느낄 수 있도록. 어쩔 땐 무너지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어서기도 하는, 그러한 것들 말이다.

 

이 모든 건 내 인생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훌리아는 인생의 주도권을 쟁탈하기 위해 가족과 물리적 거리를 뒀다.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엄마의 감시를 벗어나 꿈에 그리던 작가에 한 발 가까워진 훌리아에겐 이제 선택과 책임을 감당할 일만 남았다.

   

자유를 갈망하고, 선택과 책임을 감당하고 싶고, 자신의 특별함을 마음껏 뽐내고 싶은,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공감을 자아낸 독자들도 삶의 주도권을 쟁취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면 저마다의 방법으로 시도해봐야 할 것이다. 이상함이 아닌 특별함을 가진 것뿐이니 자신의 불완전함이 오답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보길 바란다.

 

 

 

지은정_컬쳐리스트.jpg

 

 

[지은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40207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E-Mail: artinsight@naver.com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Copyright ⓒ 2013-2022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