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입이 있으면 말을 해!" - 공:감각 展 [전시]

장애는 곧 '언어의 차이'를 의미한다.
글 입력 2022.02.0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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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분의 개성(2022), 점토에 자석. ©성채민

 

 

언어란 무엇인가? 언어는 곧 '인간의 자격'이다. 그리고 나와 다른 타인이 연결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통로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같은 언어를 말하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같은 문화권 내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같은 한국인이더라도 나와 다른 지역의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조금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던가.

 

자,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있다. 우리나라의 법정 공식 언어는 무엇인가? 한국어인가? 이것은 반만 맞은 응답이다. 대한민국의 법정 공식 언어는 한국어를 제하더라도 하나가 더 있다. 바로 한국 수어다.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한국 수어는 지난 2016년부터 한국어와 함께 법정 공용어로 사용되어왔다. 하지만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장애인 또한 '인간의 자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필자는 최근 매우 인상적인 전시를 하나 발견했다. 전시 서문에서 주최자들은 '장애인'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했다. '언어의 차이로 인하여 소통에서 배제된 사람들.' 주최진은 장애를 서술하면서 신체 특성의 차이를 언급하지도, 지적 능력의 차이를 언급하지도 않았다. 단지 언어가 다를 뿐이라고 설명했다. 언어가 '다르다'고 언급한 것은 곧 장애인들에게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배리어프리 기획전, '공: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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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 - 언어의 경계를 허물다>

 

[기간]

2022년 2월 3일(목) ~ 8일(화)

 

[시간]

평일 11시 ~ 18시

주말 11시 ~ 17시

 

[장소]

마포갤러리

 

[주최]

아트앤쉐어링 시각예술팀 '아트기움'

 

 

공:감각 - 언어의 경계를 허물다 이 진행되고 있는 작은 갤러리에 들어가면 늘봄 작가의 〈난(亂), 희로애락〉, 유선지 작가의 〈하이파이브〉, 성채민 작가의 〈성분의 개성〉, 전소연 작가의 〈Cubes inside the cube〉, 이유진 작가의 〈노루는 범〉, 봉혜언 작가의 〈춤추는 신체〉, 최예지 작가의 〈느낌〉, 김희진 작가의 〈의자의 가설〉, 김민주ㆍ김희진ㆍ윤수민 작가의 〈here WE are〉, 윤수민 작가의〈It's your turn to move〉까지 총 10점의 작품들이 벽면을 빙 둘러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전시가 '배리어프리(Barrier-Free)'라는 콘셉트를 아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작품에는 작품별로 맞춤제작된 점자 이름표가 붙어 있으며, QR코드를 활용한 오디오 해설을 제공하고, 소리를 활용한 작품의 경우 자막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전시의 주제인 '공감각'에 맞게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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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브(2022), 접지·비닐장갑·마네킹 손. ©유선지



이를테면 작품 〈하이파이브〉는 작품과 관람객이 직접 '하이파이브'를 하도록 유도하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관람객들은 '비닐장갑'이라는 한 겹의 장벽이 둘러진 상태에서 손 모양의 조형물을 만지게 되고, 형형색색의 재료들로 치장한 조형물들이 시야에 빤히 보임에도 비닐장갑을 씌운 손바닥으로는 그것들을 절대 온전히 느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때 관람객의 손에 씌워진 비닐장갑은 코로나 19 사태 이후 사회적 약자들이 느끼게 된 '장애'를, 관람객들에게 건네진 마네킹의 손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언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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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브(2022), 접지·비닐장갑·마네킹 손. ©유선지

 

 

하지만 작품 감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감상을 마친 후, 관람객들은 손 모양의 전지에 '하이파이브'를 함으로써 비닐장갑을 벗어 던진다. 하이파이브는 서로에게 긍정적인 인사를 전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신체언어다. 즉, 관람객들은 장애인들의 세상을 우회적으로나마 접한 후 그 세계를 인식했다는 뜻을 하이파이브를 통해 전달하고, 이때 비로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장애가 벗겨지는 것이다.

 

필자는 하이파이브를 마친 후 되찾은 손 끝의 촉각을 음미하다가, 문득 코로나 19 이후 시각장애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팬데믹 선언 이후 전 세계는 '위생'에 대한 경각심이 매우 높아졌다. 여러 사람의 손이 거치는 물건들은 전부 만져서는 안 될 물건 또는 집중 소독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 사람과 사람 간의 악수마저도 병균이 옮을까봐 자제하는 추세다.

 

그렇다면 사물을 손 끝의 감각으로 섬세하게 해독하는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세상과 대화할 수 있는가? 그들은 점자를 읽기 위해 다중이용시설의 난간 및 손잡이를 쓸어내릴 때마다 바이러스 감염 위험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닿고 싶은 이들에게 마음껏 손을 뻗지도 못했을 것이다. 비닐장갑을 끼고 만지면 되지 않으냐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비닐장갑을 낀 후의 세상은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작품 중 하나인 〈춤추는 신체2〉의 경우 아로마 오일이 함유되어 후각을 사용해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인데,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관람객들에게 이 향이 와 닿는 데에 한계가 있다. 아무리 작품에 코를 갖다 대도 방역용 마스크에 막혀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몹시 서글펐다. 만약 후각을 주요 언어 기관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 코로나 19 이래로 언어를 모조리 박탈당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입이 있으면 말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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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your turn to move(2022), ·나무·찰흙·철사·우드락·본드·종이. ©윤수민

 

 

우리는 종종 상대에게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라며 당당히 언어를 요구하곤 한다. 하지만 왜 입으로 표현된 언어만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눈 앞에 있는 사람의 언어는 손으로 표현되는 수어일 수도 있고, 손끝으로 느껴지는 점자일 수도 있지 않은가? 당신이 상대의 움직이지 않는 입술만 쳐다보느라 못 알아들었을 뿐, 정작 상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손 아프게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공:감각 - 언어의 경계를 허물다〉 展은 관객들로 하여금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의 존재에 대해 인지하게 하고, 그들의 언어를 잠시나마 배우도록 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시도임에 틀림없다. 기회가 된다면, 부디 10개의 작품 속에 담긴 10개의 언어들을 현장에서 직접 오감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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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아트앤쉐어링(Art&Sharing)'은 

매년 문화예술 프로젝트로 더 나은 사회 만들기를 꿈꿔온 비영리 단체로서, 

시각예술팀 '아트기움'과 공연예술팀 '공드리'로 이루어져 있다.

본 전시는 시각예술팀 '아트기움'에서 기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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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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