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Another woman [영화]

영화 <또 다른 여인>, 우디 앨런 감독, 1988년 작
글 입력 2022.02.0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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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50대에 이른 내 인생을 평가해보라고 한다면, 개인적으로 또 직업적으로 남부럽잖은 성취 수준을 이뤘다고 말하겠다. 그 이상으로는 "굳이 파고들지 않겠다"라고 말할 것이다.

 

철학과 교수인 마리온 포스트는 책 집필을 위해 입주한 작업실에서 옆 방의 정신상담 내용을 접하게 된다. 새어 나오는 말소리를 베개로 막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몹시 슬퍼 보이는 여성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살아온 나날을 반추하게 된다.

 

 

한밤중에 자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시간이 지나는데 묘한 그림자가 있더라고요. 뭔가 진짜 같지 않은 것. 거짓투성이. 그 거짓들은 아주 여러 가지였고 대부분 내 일부가 되었어요. 이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됐어요.

 

 

삶에 대한 불확신과 불안을 고백하는 내담자에게 직감적인 공명을 느낀 그녀는 어느 샌가부터 옆 방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애써 외면해온, "굳이 파고들지 않았던" 본인의 어둠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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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삶의 어두운 민낯들이 하나씩 드러나며 마리온의 안전지대가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인간관계에선 이제껏 눌러온 고질적인 문제가 불거지고, 꿈에서는 아픈 과거가 생생히 재현되어 그녀를 괴롭힌다.

 

동생 폴은 그녀가 줬던 상처에 대해 말하며 다시 가까워지려는 손길을 밀어낸다. 폴은 마리온이 자신의 글을 "과장되고 지나치게 감성적"이며 "너한테는 의미 있는 꿈일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너무 낯뜨겁다"고 해 상처받았던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 일을 기억조차 못 하는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수치심, 동생에 대한 밀려드는 죄책감으로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틀어진 관계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의붓딸은 마리온이 "너무 판단적"이며 "사람을 내려다보며 값을 매기는 것 같아" 자신은 싸구려가 된 기분이라고 뒷담화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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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을 함께한 클레어는 그녀와의 재회를 기뻐하기는커녕 과거 서운했던 일들을 나열하며 마리온을 원망한다. 그에 더해 둘은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의도적으로 끊어낸 관계임을 강조한다. 이 모든 것이 마리온이 자신이 좋아하던 남자를 홀렸기 때문이라 비난하는 클레어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나름의 진솔한 해명을 되풀이하는 일뿐이다.

  

겉으론 더없이 화목해 보이나 남편 켄과도 수시로 삐걱거린다. 마룻바닥에서 섹스한 경험을 떠드는 친구 부부에게서 정열을 감지한 마리온은 켄과 자신의 상황을 곱씹으며 회의를 느낀다.

 

왜 자신과 섹스하지 않는지 물으며 건조해져버린 관계를 되돌리려 애쓰지만, 그러한 노력이 우습게 부부동반 모임을 같이하던 리디아와 켄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며 걷잡을 수 없는 배신감에 휩싸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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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리온 또한 켄과 불륜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것도 켄의 아내가 난소 제거 수술을 받는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마리온은 과거 파티장에 불쑥 찾아와 울분 섞인 저주를 퍼붓던 전 아내의 얼굴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허탈함에 잠긴다.

 

켄과의 메마른 관계를 비집고 들어온 것은 켄의 친구 래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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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는 혼란스러워하는 마리온에게 "당신 또한 분명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아냐며 발끈하는 마리온에게 일러준다.


 

"어떤 일은,

그냥 알아버리는 거니까"

 

 

마리온 또한 마음을 투명하게 표현해오는 래리에 호감을 느끼지만, 원칙주의적인 성향과 도덕에 대한 강박 탓인지 되려 거부감만을 표출하고 끝내 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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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마리온은 울먹이는 목소리의 내담자와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미술 작품을 보고, 식사하고, 산책하며 둘은 끊임없이 서로의 생각과 상태를 공유한다. 마리온은 상처로 남은 과거의 낙태 경험에서부터 현재의 외로움, 절망감, 불안함까지 숨김없이 꺼내 보인다. 닮은 듯 다른 두 여자는 처음 보는 사이에 더없이 깊은 교감을 나누고 헤어진다.

 

마리온은 작업실에서 그 내담자가 자신을 묘사하는 것을 엿듣게 된다. "보기엔 모든 걸 다 가진 여자"지만 사실 아무것도 없었으며 오랫동안 다 괜찮은 척했지만 실은 그저 "자신을 잃어온 여자"라는 설명이었다.

 

위의 말은 예상과 달리 마리온을 해방한다. 제삼자의 시선을 말미암아 그녀는 비로소, 들여다보기를 꺼렸던 자신의 면면들과 만나고 화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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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걷히고 보다 선명해진 삶의 길에서, 그녀는 래리가 주었던 것들을 회상한다. 그리고 문득 그녀를 모델로 한 인물이 등장한다는 래리의 소설을 찬찬히 읽어 내려간다. 왠지 마리온을 향해 발신하는 듯한 래리의 문장은 아래와 같았다.

 

"그녀에겐 강렬한 열정이 있으며 언젠가는 스스로 그것을 풀어내리라"

 

어떤 일은, 그렇게, 그냥 알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유여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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