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이제 '우리'의 실험을 시작한다 - 뮤지컬 '더모먼트'

자기동일성의 문제, 그리고 운명의 개척
글 입력 2022.02.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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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더모먼트_포스터.jpg

 

 

| CAST  원종환, 주민진, 신재범 |

 

 
“남우야. 저기 하늘의 별은 몇 천년 몇 억년 전에 빛났던 것을 우리가 보는 거잖아.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거야.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지만, 과거와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거야. 마치 운명처럼”
 

 

이 내레이션으로 극이 시작된다. 뮤지컬 더모먼트는 다중우주론을 기반으로 한 지혜와 남우의 러브스토리이다. 극은 본격적으로 한 산장에서 세 명의 남자가 동시에 예약을 하면서 서로의 공간 점유를 위해 싸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서로 산장을 예약했다고 주장하며 서로를 내쫓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이상함을 자각한다. 시계는 7시 37분에서 움직이지 않고, 물건과 길(road)이 하나둘 없어지기 시작한다. 심지어 그들은 산장을 벗어나 아래로 내려가려고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다시 산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다 그들은 우연히 산장에서 한 권의 노트, 지혜의 일기를 발견하게 되고 그들의 처한 상황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된다.


 

나는 너고, 너는 나야. 나는 너고, 너는 나야.

우린 다른 시간을 살고 한곳에서 만난 한 사람

우린 같은 사람이라고!

 

 

[더모먼트] 공연 사진 4_원종환, 주민진, 송광일.jpg

 

 

세 명의 남자는 2004년의 소년, 2020년의 남자, 2032년의 사내로 설명되지만, 사실은 ‘남우’라는 모두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이다. 이들에게 있는 (일정 부분) 과거의 기억은 모두 동일하다. 하지만, 한 가지의 차이는 바로 그들의 현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모두 다르다.

 

2004년의 소년의 성격은 다소 거치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다. 그리고 산장을 내려갈 때에도 앞장서는 등 겁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2020년의 남자는 매우 조심스러운 성격이다. 2032년의 사내는 형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가장 먼저 그들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한다.

 

즉, 이들은 모두 같은 인물이지만, 모두 다른 직업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가지 질문이 들게 된다. 이들은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같은 이름을 가지고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들은 과연 동일 인물인가? 아니면 다른 인물인가?

 


[더모먼트] 공연 사진 3_최호중, 손유동, 신재범.jpg

 

 

이런 질문은 자아동일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수많은 자아동일성의 논의 중 사회철학자 로크의 논의를 가지고 이 극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로크에게서 인격의 동일성은 시간과 경험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지고 형성되어가는 동일성을 의미한다.

 

여기서 ‘기억’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즉 시간의 변화 속에서 인격 혹은 인간의 동일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근거가 기억이다. 로크에게 개인의 정체성은 자신의 경험과 회상을 통해 구성되는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의 시민처럼 사회 내에서 형성되는 정체성이 아니다)

 

식물이나 동물은 하나의 공통의 생명에 참여함으로써 그 생명력을 유지한다. 따라서 이런 유기체에서는 부분들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유기적인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동일한 존재로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유기체의 동일성은 유기체의 조직 또는 기계론적인 유기적 통일성에서 찾아지는데, 이 통일성 속에 로크가 말하는 개체적 생명의 특징이 놓여있다. 동일한 인간의 동일성은 먼저 생명을 지닌 몸의 관점에서 접근될 수 있다. 이 몸은 식물적 생명의 구조와 유사하다. 즉 식물적 생명은 물질의 입자들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서도 이러한 입자들을 하나의 조직된 몸속에서 활력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자신을 동일한 생명체로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로크에 따르면 이러한 설명을 통해 한 인간이 계속해서 동일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확증되는 것은 아니다. 영혼의 동일성 또한 동일한 사람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즉, 실체로서의 물질이나 영혼의 관점에서 인간의 동일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실패는 시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로크는 인간의 동일성이 어떻게 확증될 수 있는가를 탐구하기 위해서 인간(man) 개념이 아닌 인격(person)의 개념에 대해 고찰한다.

 

로크는 데카르트가 주장하는 사유를 통한 자신의 동일성의 관점에서 벗어나, 기억에 기초한 인격으로서의 자아를 주장한다. 이 인격 개념을 통해서 사유하는 실체 또는 즉각적으로 행위 하는 논리적 자아와 구분되는 자신의 회상 기억을 통해 만들어지고 구성되는 자아 개념을 확립하고자 한다. 로크는 인격을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동일하게 있는 생각하는 사물로서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간주할 수 있는 생각하는 지적 존재라고 정의한다. 즉, 인격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항상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파악할 수 있는 존재, 다시 말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자기 자신의 동일성을 파악할 수 있는 지적존재이다.

 

따라서 인격, 인격의 동일성은 의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의식은 단지 순간적인 자각이나 즉각적인 논리적 사유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성 속에서 지속되는 의식도 지칭한다. 그리고 의식이 시간성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의식은 기억을 전제로 삼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로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 의식이 어떤 과거의 행동이나 생각을 향해 과거로 확대될 수 있는 만큼 멀리 그 인격의 동일성을 도달한다. 당시 있었던 것은 지금과 같은 자아이고, 그 행동을 한 것은 지금 그것을 성찰하는 이 현재의 자아와 같은 자아이고, 그 행동을 한 것은 지금 그것을 성찰하는 이 현재의 자아와 같은 자아이다”. 이처럼 로크에게서 인격의 동일성은 의식이 과거의 행위를 기억하는 범위까지만 확장되고 구성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사내, 남자, 소년은 동일 인물임과 동시에 동일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들은 과거의 동일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동일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인격은 모두 다르다. 극의 마지막에서 이들은 지혜의 수많은 실험 속에서 만들어진 실험체 중에 하나이며, 그렇기 때문에 모두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 김여우리(작곡, 음악감독)에 의하면 이야기 속 세명은 사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같은 생을 사는 사람들이고, 각자의 선택에 의해서 다른 삶을 살게 된 사람이라고 한다. 정해진 운명이 아닌, 개인의 선택에 따라 개인의 운명이 바뀔 수 있음을 피력하는 장치이다.

 

 

20220202024408_uuitvuvw.jpg

 

 

그들이 2월 29일 라이카 산장에 모이게 된 이유는 바로, 그들의 연인인 지혜의 실험 때문이다. 그들은 ‘빡빡이’라는 살인범에 의해 살해당하는 운명에 처하는데, 그들의 여자친구인 지혜가 그 미래를 막기 위해 계속해서 상황을 바꾼 후 바꾼 미래를 노트에 적고 원하는 운명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실험을 해 나간다. 빡빡이는 지혜의 아버지로서, 지혜는 자신의 아빠가 자신의 남자친구인 남우를 살해하는 운명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지 수많은 조건들을 수정하며 실험을 실행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실패하자,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번도 바꾸지 않았던 변수였던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세 남자는 자신들이 처한 운명을 어떻게 바꾸고, 그를 통해 지혜를 만날 것인지 대한 고심을 시작한다. 지혜의 노트에 써져 있는바에 따르면 노트를 가진 사람만이 시공간이 뒤틀린 이 공간을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노트는 두 권뿐이었고, 이에 그들은 누가 나가서 운명을 바꿀 수 있는지, 바꿀지에 대해 고민한다. 고민 끝에 사내는 자신이 남고 남자와 소년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 후 사내는 혼자 산장에 앉아 그들이 운명을 바꿀 것이라 믿으며 미소를 짓고, 극은 끝난다.


 

너에게 가는 길이 너무 멀어. 난 그래도 너에게로 가

멈춘 시간을 타고 너에게로 내가 달려가는 이 길이

너에게 닿으면 시간이 흘러

 


이 극은 정해진 운명을 과연 인간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막이 내리는 순간, 답은 사실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이 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 사내, 남자, 소년이 모두 다른 나이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내재되어 있다. 또한, 세 남자의 인격은 모두 다르므로, 이들이 순간순간할 선택들은 모두 달랐고,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이 극은 자아동일성의 문제와 의지를 기반으로 한 운명 개척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러한 내용에 양자역학과 다중우주론의 개념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적 사용에 있어, 과연 적절하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또한, 바이올린과 피아노, 두 악기로 구성되어 전개되는 넘버들의 멜로디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동시에 극의 전체적인 맥락의 일관성을 부여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프레스 김소정 명함.jpg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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