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커피 한잔'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

아는 만큼 더 맛있어질 겁니다
글 입력 2022.02.02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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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좋아하세요?


 

몸에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어 술도 못 마시고, 왠지 끌리지 않아 담배도 하지 않는 나에게 유일한 기호 식품은 커피다. 물론 주 5일 출퇴근할 때 커피는 선택 사항이 아닌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 사항이긴 했지만, 커피 그 자체의 맛과 향을 즐기는 사람이니 커피를 정말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카페인에 약한 편이라 늦은 오후에 커피를 마시게 되면 그날 밤엔 잠을 자지 못한다. 그래서 늦잠을 자버린 날이면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커피를 마시지 말아야겠다 다짐하지만, 점심 즈음만 되면 커피 특유의 향기가 벌써 코끝에 맴도는 듯 나를 끌어당긴다. 그렇게 또 커피를 마시고 만다. 이렇듯 나는 커피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사람이다.


이 책은 나와 같이 커피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 커피에 관해 열정적으로 써내려간 책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작가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포함한 커피에 얽힌 각종 이야기들, 커피를 애정한 국내 문학 작품과 문학인들에 관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작가가 소개하는 카페들까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가 생기지 않고는 못 배길 내용이다. (실제로 옴니버스 스타일의 산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이 목차에 이끌려 책을 펼치게 되었다.)

 

 


커피와 문학이라는 조합


 

그러나 커피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 책이 제시하는 커피와 문학이라는 신선한 조합에는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작가는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는 만큼, 한국의 문학에 녹아들어있는 '커피'라는 소재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려준다.


그 중에서도 정지용의 <카페 프란스>에 얽힌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커피를 다룬 문학이라 하면 으레 한 잔의 커피가 가져다주는 여유와 기쁨, 또는 씁쓸한 커피 맛에 비유될 법한 아픈 사랑 같은 것이 먼저 생각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본 유학 시절 문학인 정지용이 자주 들렀던 카페에서 착안한 듯한 시 <카페 프란스>는 식민지 청년의 비애를 담고 있다.


시의 전반부에는 카페를 찾아가는 가볍고 들뜬 마음이 엿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이 가슴에 가득히 차 있는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한스러움이 글자 가득 차오른다. 책장을 몇 장 더 넘기면 소개되는, 역시 일본 유학 시절 문학인 이상이 남긴 시에서도 <카페 프린스>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어 그 시절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었던 아픔이 어느 정도였을지, 그리고 <카페 프란스>라는 시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을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카페에 가고 커피를 마신다



책을 읽다 보면, '커피'라는 음료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이에게 계속해서 기쁨을 가져다 준 매개체였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할 수 있다. 커피의 역사뿐만 아니라, 오로지 커피 한 잔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 '카페'의 역사도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카페 중 '학림다방'이라는 곳이 있다. 그 전까지는 새로운 정보를 얻는 기분으로 가볍게 책장을 넘기다가, '학림'이라는 글자에 순간 책장을 넘기던 손길이 멎었다. 학림다방은 내가 아주 애정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공연을 좋아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혜화에 자주 갔는데, 시간이 좀 있을 때마다 학림다방 앞을 기웃거렸다.

 

대부분은 자리가 없어 돌아나와야 했지만, 운 좋게 자리가 비어있을 땐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예쁜 찻잔에 더 예쁘게 담긴 비엔나 커피, 학림다방에만 있는 2층 좌석에서 내려다보는 카페 풍경,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가 재밌어서 너무 크게 웃는 바람에 주인분께 주의를 받았던 기억까지 학림다방은 나에게 소소한 추억들로 가득한 소중한 공간이다. 그런 공간이 이 책의 작가에게도 추억으로 가득한 곳이라니, 새삼스럽게 작가에게 친근감이 느껴졌다.


이처럼 커피도, 카페도, 이들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공유해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유대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 또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뿐만 아니다. 카페라는 공간 자체는, 그 안에 있는 모든 개인들을 연결하는 역할 또한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렸던 뮤지컬 <명동 로망스>는 과거 명동의 한 다방이 배경이다. 여기서 다방은 다양한 예술가들이 서로 어울리며 교류하는 장이자, 그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우정을 나누며 친구가 되는 바탕이 되어준다. 비록 요즘 카페에서 이런 일은 흔치 않지만, 그래도 아직 작은 가능성이라도 남아있지 않을까.


<커피 한잔>은 이처럼 커피를 더 잘 알아가고 싶은 사람, 그래서 커피를 더 즐기고 싶은 사람, 또는 아직은 어색하지만 커피와 새로운 만남을 해보고 싶은 사람 모두가 원하는 정보도 얻고, 커피를 마시면서 자유롭게 어울리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며 마음 한 켠이 따스해지는 경험까지 얻어갈 수 있는 책이다. 당신의 일상이 조금 더 향긋하게 채워지기를 꿈꾼다면, 이 책을 집어들어 한 장을 넘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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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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