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Dear. ... Sincerely,

23, 나에게 쓰는 편지
글 입력 2022.02.02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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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을 맞이하는 나는 지난 해와 함께 떨쳐내지 못한 미련과 걱정으로 한 층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2022년의 시작은 그보다 훨씬 경쾌했다. 친구와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 이어폰 너머로 듣는 캐럴이 나를 들뜨게 했다.

 

하지만 매번 그렇듯 새해의 새로움은 빠르게 일상으로 변한다. 한 해를 꽉 채워 마무리한 뒤 갖는 한 달간의 휴식기는 상대적 시간을 체감하게 한다. 1월은 왜인지 모르게 늘 둥둥 뜬 달이 된다. 분명히 내 것임에도 붙잡기에는 아직 무지하고 생경한 느낌이다. 새해라고 해서 새로울 게 없는데 모순적이게도 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눈 한번 깜짝했을 뿐인데 찾아온 2월. 제법 비장해진다. 무언가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휩싸이다가도 초대하지 않은 손님처럼 밀려오는 자괴감에 빠지기 쉬운 때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지인들도 많다. 혹은 그 이전의 이별이라든가. 새해를 축하하고, 평안을 기원하고, 안부를 물었다. 그 애에게 올해는 어떤 의미일까, 고민했다.

 

모든 답장을 마쳤다. 그리고 나에게는 메시지를 보낼 한 명의 스물셋이, 어떤 메시지도 받지 못한 채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한 명이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Dear. 

 

자주 보는 사이니 긴 안부인사는 생략할게. 잘 지내지?

살짝 미안하기도 하고, 조금 섭섭하겠지만 어쩔 수 없겠다.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보다는 새해를 위한 당부의 말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이기적인 편지를 한 통 쓰려고 해.

 

우선, 단언하지 않는 사람이 되길. 그리고 오만을 버리길.

옳다고 믿었던 네 생각이 옳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더 자주 찾아올 거야.

자존심도 상하고 가끔은 이해도 안 될 거고, 상처도 받겠지만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함을 배우길 바라.

 

글 쓸 때도 있지, 네가 쓰는 글의 주인이라는 자유로움이 자칫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을 확정해도 된다는 오만으로 변하기 쉽다는 걸 잊지마.

네 평가와 감상은 자유지만, 그게 거만함의 핑계가 되지는 않아.

 

또, 무엇보다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누군가 네가 한 일에 대한 평가를 하려고 할 때 너도 모르게 움찔하게 되잖아.

고치기 어려운 부분인 건 알지만, 네가 누군가의 평가를 받게 되는 순간도 많아질 거야.

그 평가가 타당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너무 그 순간을 무서워하지는 마.

가끔은 넘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해. 물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미래를 기대하되 예견하려 하지는 마.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생각보다 그 생활이 너무 재밌었다는 얘기 했었지?

겪지 않았다면 정말 아쉬웠겠다, 라는 생각도 여러번 했다고 말했었고.

지금 힘들다는 건 앞으로는 더 나아질 거라는 뜻이고, 앞으로는 네가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펼쳐질 거야.

 

하지만 미래를 미리 보고, 결정하려 하지는 마.

하루의 계획은 그날을 상쾌하게 보내는 데 도움이 되고, 일주일이나 한 달의 계획은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데 도움이 돼.

하지만 더 긴 계획은 가끔 내 발목을 잡기도 하더라.

정해지지 않은 일에 집중을 쏟고 고민을 심다 보면 마치 허공에 손발이 묶인 것 같기도 해.

 

올해의 너는 이전과 조금 다른 한 해를 보내게 될 거야.

처음으로 아무 소속이 없는 상황이 됐지.

어떤 것도 널 속박하고 있지 않아. 

사실 살짝은 두려울지도 몰라.

나름 대담한 선택을 한 건데, 2월이 되니 나머지 11개월도 금방 지나가 버릴 것 같거든.

 

하지만 너무 계산적인 태도로 시간을 바라보지는 말자.

최후의 목적(처럼 보이는 것)에 완벽히 부합하지 않는 과정일지라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거야.

조금은 단순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 같지만 몸이 재미를 느끼는 일이나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온 힘을 다해 휴식하는 시간 따위 말이야.

 

이 세상에서 제일 모르겠는 게 너야.

몸의 여유를 갖는 게 소원일 때도 있었는데, 막상 몸이 쉬니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게 그렇게 어렵다.

분명히 예전보다 잠도 많이 자고, 쉬는 시간도 많은데 그 사이에 잃어 버린 게 참 많아 보여.

몇몇은 잊고, 보내줘야겠지만 몇몇은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면 더 좋은 걸로 새로 갖게 될 수도 있고!

 

우리 늘 기쁘게 살자.

올해는 더 멋진 한 해가 될 거야.

우리는 더 자주 보고, 이야기도 더 많이 나누자.

오늘 편지에서는 잔소리가 많았다.

다음에 만나면 너가 하는 불평, 힘든 얘기들을 모두 들어줄게.

항상 고마워. 사랑해!

 

Sincerely,

 

 

[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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