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22년 한국문학과 형식주의 [격주의 문학]

글 입력 2022.01.3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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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형식주의 문예사조에 대해 소개함으로써 21세기 한국문학을 감상하는 데 중요한 문제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 동안 격주로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문학작품을 꾸준히 소개해 왔었는데, 그중에서는 작품 자체의 의미는 크지만 그 형식이 너무 난해해서 감상하기에는 어려운 작품들도 있었던 것 같다. 많은 경우 우리들은 작품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고 싶고, 이를 제대로 파악했을 때 작품을 제대로 감상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작품이 원활하게 읽히지 않고 숨겨진 가치를 제대로 ‘보물찾기’해내지 못했을 때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방식의 독해는 문학을 감상하는 수많은 방식 중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드넓은 문학이라는 공간을 감상하는 데 다양한 전략이 있을 수 있는데, 작품을 보는 관점을 달리하며 여러 방면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은 새로운 문학 감상 방법론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그 동안 격주로 비교적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소개했던 것에 반해, 문학을 감상하는 관점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한 적이 없었다. 형식주의(formalism)적 관점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독서 과정에서 난해함을 봉착하는 독자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일반적으로 문학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해석과 난해성의 문제이다. 독자들은 소설이나 시를 읽을 때, 이것이 작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고, 그 숨겨진 메시지를 해석하는 것에 독서 행위의 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독자들은 난해함을 봉착하면 독서 행위 자체에서 큰 만적을 얻지 못한다. 사실 난해함은 비단 문학뿐 아니라, 연극, 영화, 회화, 조각, 음악, 영상예술 등 모든 종류의 예술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항상 발생하는데, 독자들은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메시지에 좀 더 많이 집착하는 것 같다. 사실 그 바탕에는 언어 예술이라는 문학의 특수성이 존재할 것이다. 그림이나 음악은 그 자체로 감각적인 것이고, 감상자들은 선입견 없이 자신의 시각적, 청각적 감각 기관을 통해 감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문자는 추상적이고 규범적인 것이라서 기본적으로 메시지성을 가지고 있고, 이로 인해 독자들이 해석의 작업에 조금 더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메시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회화나 음악을 감상하듯이 문학을 감상해보라고 독자들에게 조언하고 싶다. 작가나 사회의 메시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텍스트가 말하는 감각에 조금 더 집중한다면 난해한 현대 문학을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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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주의는 미술이나 음악과 같은 추상예술을 감상하는 방법으로 문학을 감상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형식주의는 본래 20세기 초반에 탄생한 문예 비평 이론으로서, 형식주의 비평가들은 문학을 감상할 때 창작 과정에서의 의도나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텍스트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 기본적으로 합의한다. 우리가 몬드리안과 같은 화가의 추상 예술을 감상할 때는 우리의 눈을 통해서 색과 선의 시각적 이미지들을 받아들이고, 오로지 그것들이 일으키는 감정에 집중하게 된다. 인접한 선과 면들의 부분적인 배치, 색채의 전체적인 조화는 감각적인 것이며, 구체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함축하지 않는다. 그 시각적인 배치가 우리 내면에 모종의 감각―조화와 부조화, 자연과 인공, 모순과 역설―을 일으키고, 그 자체로 예술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형식주의 문예가들은 이와 마찬가지로 문학작품 속에서 각 단어들이나 문장들의 배치에서 발생하는 아우라를 조명한다. 마치 미술이나 음악을 감상할 때 오직 자신의 감각기관에 의존하여 작품을 감상하듯이, 문학 작품을 감상할 때도 그 가치를 작품 외부에서 찾지 않고 작품 자체의 요소들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 방법 속에서 비로소 언어적 기법과 서사의 구조에 대해 주목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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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 『빨강, 파랑과 노랑의 구성Ⅱ』, 1930

 

 

형식주의의 반대쪽 극단에 위치하는 비평 이론인 리얼리즘과 비교하면 그 의미가 좀 더 명확해질 것 같다. 리얼리즘 문예 이론은 작품이 드러내는 의미와 메시지에 주목한다. 리얼리즘 비평가들은 작가와 독자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문학작품의 감상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며, 작품을 평가할 때 작품이 현실의 구조를 잘 형상화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비평을 진행한다. 우리가 이상화와 신동엽의 시에서 일제강점기와 4·19 혁명을 읽는 작업은 모두 리얼리즘 방식의 독해에 해당한다. 현실의 갈등을 작품 속에 형상화하고 이를 해결해가는 극적인 방식을 그려놓는 것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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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주의 계통의 문학 비평은 역사적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통의 비평 방법론과 각축의 관계에 위치한다. 형식주의 비평 이론의 입장은 리얼리즘 비평가들로부터 현실을 외면하고 (더 나아가) 현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리얼리즘적 입장에서 보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예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예술의 이러한 역할을 형식주의가 부정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적인 관점으로 접근해 본다면 미래파 예술가들이 나치 정권에 가담한다든가, 미국의 대표적 모더니즘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가 이탈리아 파시즘에 가담하는 등, 형식주의 예술이 파시즘 예술가의 도피처로 활용된 사례들이 있다. 이러한 전례들은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형식주의 예술 이념이 반사회적인 결과로 이어질 위험성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형식주의 예술의 가장 의의는 예술이 예술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형식주의적인 감상법이 도입되기 전에는, 문학은 항상 종교나 역사, 철학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그 가치가 규명될 수 있었다. 리얼리즘적 방법론을 통해 문학을 감상할 때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은 오직 종교나 철학의 이론틀 속에서만 밝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좌절 끝에 구원에 이르는 성경적인 발상, 혹은 계급의 전복을 통해서 혁명이 구현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구조가 문학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이용된 것이다. 형식주의는 근본적으로 이미지와 이미지의 결함, 문자와 문자의 결합을 평가하는 수준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화합하거나 충돌하는 과정에서 작품은 하나의 통일된 분위기를 완성할 수도 있고 부분적으로 분열되어 난해한 분위기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분열과 화해의 구조는 인간과 자연을 이루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것들이며, 이러한 현상들을 통해서 복잡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어와 이미지들의 미시적인 결합에 주목하여 거시적인 종교와 역사의 방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모습들에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형식주의가 추구하는 것이다.


사실 형식주의와 리얼리즘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인간과 세계를 어떻게 파악할 것이냐의 문제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문학은 인간의 삶 그 자체를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문학에서 인간과 세계를 발견하고 싶어 한다. 우리 모두 각자 삶에 대한 가치관들이 있는데, 개개인의 가치관이 문학을 읽을 때 개입하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도 서로 다르게 이해하게 된다. 형식주의와 리얼리즘의 방법 차이도 기본적으로는 삶에 대한 접근법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리얼리즘은 삶 자체를 (하위 계급의) 지속적인 도전을 통해 가치를 성취해내는 드라마로 인식하고 혁명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긍정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문학적 관점을 선택하게 된다. 반면 형식주의가 1차 세계대전 직후에 등장했다는 점을 통해 추정해보면, 형식주의 문학가들은 전쟁의 참상 속에서 모든 이데올로기가 후퇴하고 매 순간의 현상으로서 인간의 존재를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경우 형식주의는 미시적인 하나하나의 이미지로서 문학과 인간을 파악하려고 하는 시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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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현재 우리 문학은 한국 문단의 어느 시기보다도 다양화되어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독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독해의 시각들을 요구한다.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는 민주화를 성취하기 위한 리얼리즘 문학이 우리 문단을 지배했고, 민주주의를 성취한 90년대 이후에는 갈곳을 잃은 문단이 모더니즘적 문학 기법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서 노동과 인권, 소수자 등에 대한 사회적 이슈들이 조명되면서 이 두 개의 축은 균형을 이루기 시작한 것 같다. 페미니즘이나 퀴어, 노동 등 사회 문제를 조명하는 작품(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김세희 『항구의 사랑』 등)과 문예 기법과 예술성을 조명하는 작품(한유주 『불가능한 동화』, 김사과 『테러의 시』 등), 그 두 가지 유형이 축의 양 끝에 위치하며 수많은 작품들이 그 사이의 한 지점을 점유하고 있다. 오늘날의 문학작품들은 리얼리즘과 형식주의 사이에 연속적인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거대한 스펙트럼 속에서 우리 문학작품을 풍부하게 감상하기 위해서 여러 시각으로 독서를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특히 페미니즘 문학과 퀴어 문학이 중요한 담론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이러한 소설들은 특히 리얼리즘적인 방법론만을 통해서 편향된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작가가 작품을 창작할 때는 여러 가지 수사적·서사적 장치들을 활용해 각 장면의 무게감을 달리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이러한 섬세한 기법들은 조명되지 못하고 작품과 사회의 관계만 분석되는 경우가 많다. 『82년생 김지영』의 경우 페미니즘 문학의 논란 속에서 다양한 파장이 일었지만, 실제로 문단에서는 작가의 문체적 특성에 대한 탐구도 적지 않게 이루어졌다. 르포 혹은 보고서 형식의 서술상이 기존 소설과 어떠한 차이가 있고 독자들에게 있어서 어떠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중요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미디어에서 종이책과 텍스트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디지털 영상 매체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소설의 기법과 형식의 문제가 더욱 섬세하게 다뤄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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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형식주의에 대해 설명하기로 한 것은 문학의 본질을 미시적인 소재들에 귀결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리얼리즘이 사회의 구조를 바탕으로 소설의 내용을 파악하려는 것이라면, 형식주의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주목하는 한 가지 시각이다. 문학은―그리고 모든 예술은― 형식과 내용으로 구성된다. 형식은 내용물을 담는 그릇이다. 동일한 내용을 전달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특별히 부각시킬 수 있는 형식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문학의 예술성은 바로 이 형식에서 발생하게 되며, 형식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같은 내용도 더욱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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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비평 비평가 브룩스(Cleanth Brooks, 1906-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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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형식주의 비평가 쉬클로브스키(Victor Shklovsky, 1893-1984)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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