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진의 가치는? - 게티이미지 사진전

사진의 영역과 경계선에 관하여
글 입력 2022.02.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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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_02포스터_최종.jpg


 

사진의 가치는 어디서 올까. 최근 몇 달간 여러 회화 전시를 다녀오는 동안, 그림의 미학적인 가치를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판단하곤 했다. 어떤 기법이라든가, 주의를 표방한다는 전문적인 지식에 대한 고찰이 아닌, 작가의 삶에서, 혹은 시대의 흐름에서 작품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

 
DDP에서 진행한 살바도르 달리 전이 그랬다. 작가의 일생 동안 변화해온 그림의 형태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했고, 결국 작가는 당시의 가치관을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가를 자연스럽게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사진이라는 장르는 향유하기 유달리 어렵게 느껴졌다. 평소에 출사를 하러 가는 취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찰나를 담는 예술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단편적이라 느껴졌다. 웅장한 대자연을 담거나, 한평생을 쫓아도 보기 힘든 기적의 순간이 담긴 것이 아니라면, 사진을 통해 기록, 그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록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영상과 사진의 궁극적인 목표는 기록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혁신을 주도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존엄성이나 윤리, 욕망이나 유희와 같은 추상적인 가치들을 증명하고 대변하는 기능을 해준다고 생각한다.
 
게티이미지 사진전을 가기 하루 전, 수원에서 진행한 다른 사진전을 다녀왔다. 게티이미지 사진전을 다녀오기 전, 사진전을 즐기기 위한 적절한 연습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세계관에서 사진이 가질 수 있는 맥락은 무엇일까 알아보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물론 친구와 다녀온 수원에서의 전시는, 실험적이고 예술성을 추구하는 작품이어서 그런지 쉽게 와닿지 않았다. 회화에 대한 오마주는 오히려 기존 작품들의 아우라를 강조해주었고, 세계 곳곳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성 사진들은 깊은 영감을 떠올리게 해주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사진의 가치에 대한 의문을 품은 채 게티 이미지 사진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내가 사진을 향유하는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다. 나에게 사진이란 미적인 예술로서의 가치가 아닌, 르포로서의 역할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예술보단 기록 유산이자 사회의 정의를 표현하는 수단. 그리고 게티이미지 사진전에서 만난 사진들 중에선 사진의 구도와 색감이 아닌 사회의 맥락 속에서 사진이 가진 의미가 아직도 뚜렷이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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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명성만큼이나 유명한 사진이다. 사진의 맥락을 알기 전엔 그저 괴짜 과학자, 어떤 tv프로그램 쇼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 사진은 아인슈타인의 72번째 생일파티에서 촬영된 모습이었다. 기자들의 플래쉬 세례 속에서 아인슈타인은 황급히 자동차에 몸을 싫었고, 아서 사스라는 사진기사가 마지막 미소를 요구하자 아서 사스를 향해 보인 엉뚱한 표정이었다.
 
아인슈타인은 훗날 혀를 내미는 이 엉뚱한 표정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근엄한 표정을 기다렸을 기자에게 혀를 내밀면서 사회적 역할에 맞는 이미지를 보여주길 거부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적색 공포가 만연하던 1950년대, 아인슈타인이 평화주의자로서 사회에 던진 일침이라고 해석했다.
 
아마 우리는 자신의 지위나 체면을 벗어나 유쾌한 인류애를 보이는 이러한 모습 때문에 아인슈타인이라는 인물을 역사적 아이콘으로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크기변환][회전]KakaoTalk_20220203_000640098.jpg

 
 
다음 사진은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사진이다. 마천루의 위에서 인부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듯한 이 사진은 서늘함과 동시에 유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놀랍게도 록펠러 재단의 건물 홍보 일환으로 계획된 촬영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사진 속 노동자들은 모두 유럽에서 온 이주자 출신들이며 당시 대공황 속에서 어려운 일들은 모두 이주 노동자들의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진이다. 여유롭고 밝은 에너지는 이 당시 미국 특유의 낙관주의가 드러나는 듯 하다.
 
이렇듯 게티이미지 사진전에서는 사회의 맥락 속에서 사진의 의미를 찾는 즐거움이 있었다. 전시의 후반부에는 환경 문제나 인종차별을 다룬 사진 작가들의 작품들도 있었는데 그들의 사진엔 단편적인 사건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고통과 저항의 절실함이 묻어져 있었다.
 
결국 그들의 사진엔 한 사람의 사상이나 이야기가 아닌, 사회의 현상과 대중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정용환 컬처리스트.jpg

 

 

[정용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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