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잠 못 드는 인간 [사람]

생각이 많아지는 밤
글 입력 2022.01.2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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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도 잠자기는 글렀습니다. 동틀 녘이 되어서야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군요.

 

저는 이제 침대맡에 있는 스탠드를 키고, 보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열어 이 글을 씁니다. 그리곤 무엇 때문에 잠들지 못해 이 어두운 밤 홀로 거닐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해야 할 게 남았던가요. 생각이 너무 많은가요. 걱정하는 일이 있나요.

 

제가 대답합니다.

 

- 오늘은 진정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아무것도요.

 

자신에게 조금은 실망한 날인가 봅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보다 더 심한 날도 있었으니까요. 이런 기분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요. 아무도 승선하지 않은 커다란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텅 빈 이 마음을 저는 ‘망할’이라 부르겠습니다. 망망대해와 항해를 줄여서 망할!

  

‘망할’이 아니라 ‘망항’인건 저도 알아요. 예, 제 맘이에요.

 


첫번째 사진.png

 

 

어둠에 시야마저 가려져 버린 이 새벽 바다에서 날마다 저는 다른 누군가의 존재를 살피곤 합니다. 가족들은 이미 모두 꿈나라로 가버렸으니 저 바깥세상을 기웃거려 봐야겠습니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요.

  

오늘 맞은편 아파트엔 단 두 명만이 깨어 있군요. 저들은 무얼 하느라 이 밤 아직 잠에 들지 않고 있는 걸까요. 이 시간이 되면 깨어 있는 자들의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예를 들어, 새벽 2시마다 8차선 도로를 시원하게 질주하는 미스터 오토바이는 저희 아파트 주민인 걸로 알고 있는데 저를 태우고 달려 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아니 그보다 새벽 3시에 혼자 강변 산책로를 걷고 있는 당신은 어디를 가는 건가요. 저 멀리 사거리 신호등에 멈춰 있는 차 안 운전자, 당신은 어딜 다녀오는 길인가요. 혹은 어딘가 먼 곳을 향해 떠나는 여정의 시작에 서 계신가요.

 

때때로 저는 새벽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트럭 운전수가 되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스트레인지 데이스』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준코’처럼 애써 스스로를 재우려하기 보다는 새벽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겁니다. 상상이 실제가 될 수 있을까요. 침대 위에 앉아 있던 저는 이제 트럭 앞유리를 비추고 사라지는 수십 개의 가로등 불빛을 맞으며, 차 안을 울리는 라디오 음악 볼륨을 높이고, 아무것도 없는 검은 아스팔트 다리 위에서 엑셀을 밟고 있습니다. 옆자리는 비운 채로요.

 

 

화면 캡처 2022-01-28 185331.png

 

 

어느새 맞은편 아파트엔 불빛이 하나 사라졌습니다. 이제 단 한 명만이 저와 이 새벽 공기를 함께 음미하고 있어요. 할 수만 있다면 유일한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볼 텐데요. 아니면 팩스를 보내 제가 깨어있음을 알리거나, 하늘을 날아가 당신의 창문을 두드릴 수도 있겠어요.

 

인터넷에 ‘유체이탈하는 법’을 검색해 수십 번도 넘게 시도해봤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 이중창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곰곰이 고민해 봅니다.

  

여기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타나토노트』가 있군요. 사람은 죽기 전에 하늘을 향해 이어진 눈부신 하얀 빛을 보게 된다고 해요. 이 책 속 인물들은 모두 죽음 너머 세상을 보기 위한 항해를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죽지 않고 영계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게 되었죠. 그중 하나가 바로 명상입니다.

 

자 저는 잠시 명상에 들어갑니다. 이걸로 영혼만을 몸 밖으로 꺼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물론 잠들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요.

  

저는 지금 차가운 공기층 사이를 부유하고 있어요. 명상은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냥 창문을 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당신을 만나기는 힘들겠습니다.

 

*

 

현재 시각 새벽 4시, 이 순간 깨어 있는 사람들은 다들 어디에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신가요. 제가 있는 이곳은 화성입니다. MARS요. 농담입니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생각나네요. 시애틀은 현재 오전 일 테니 대부분 깨어 있겠군요. 전날 늦게 잠든 사람만 아니라면요. 일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 나오는 샘처럼 ‘잠 못 이루는 시애틀씨’가 되어 볼까요.

 

‘잠 못 이루는 시애틀’씨에게, 이 밤 깨어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해 주심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대가 누구든, 저 멀리 시애틀에 있다고 한들.

 

화성에서 전하는 말,

잠 못 이루는 화성에서.

 

 

새벽은 혼자 있기에 너무나도 좋은 시간이지만 가끔 감정이 물밀듯이 들어올 때가 있어 위험한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오늘처럼 만족스럽지 않은 하루를 보낸 날이라면 가능성은 더욱 커지죠. 새벽의 고요함은 사색이라는 열매의 양분이 되어 줍니다. 이 열매는 평소엔 약으로 쓰이지만 과하게 사용할 경우엔 독이 됩니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하루를 돌아보는 건 좋은 피드백이 될 수 있겠지만, 생각의 꼬리 물기는 불면증이라는 불상사를 일으키는 것처럼요.

 

 

이 지긋지긋한 불면증은 아무래도 질투가 너무 심한 모양이에요. 결코 달콤한 단잠이 제 옆에 오는 걸 허락하지 않거든요. 저는 혼자인 건 싫지만 가끔은 혼자 있을 시간도 필요해요. 하지만 그게 불면증이 필요하단 소리는 아니랍니다.

 

듣고 있나요? 그럼 저리 좀 가줄래?

 

 

동틀 녘이 되면 저는 떠나겠습니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망쳐버린 오늘 때문에 내일까지 망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리셋 버튼이 없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만약 있었다면 저는 아마도 똑같은 오늘을 무한히 보냈을 겁니다.

 

더 이상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상실감을 타인을 향해 돌리지 않으려 합니다. 물론 제 자신에게도 그 비난을 묻지 않을 겁니다. 다만 이제 그만 찐득거리는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생생한 삶의 촉감을 느껴 보기를 바랄 뿐입니다.

 

*

 

멀리 산 능선 사이로 붉은 해가 떠오릅니다. 저는 노트북을 덮고, 커튼을 치고, 스탠드를 끄고 잠에 들어볼까 합니다. 어느새 잡다한 생각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쓸쓸한 새벽을 홀로 버티던 모두가 부디 어제보다 덜 힘든 하루를 보내기를 바라며, 상상으로 가득한 제 새벽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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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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