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으로 위로하는 싱어송라이터, 다린 [음악]

"사람이 사랑이고, 사랑이 사람이니까요."
글 입력 2022.01.2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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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게인>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은 세상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재야의 실력자, 한땐 잘 나갔지만 지금은 잊힌 비운의 가수 등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2020년 11월부터 21년 2월까지 시즌 1이 방영되었었고, 21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시즌 2가 방영 중에 있다.

 

2020년 겨울, 누군가 내게 싱어게인을 보냐며 물어왔고 그게 뭐냐며 묻던 내게 친구는 유튜브로 여러 출연자들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중 나는 '56호'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한 가수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영상 속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성시경의 '태양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앳된 외모와 달리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성숙한 목소리는 자꾸만 내 가슴을 묵직한 바위로 누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팠다. 무언가로 꽉 찬 저음의 노랫소리가 귀를 타고 명치 언저리까지 흘러 내려가 마음속에 한가득 고였다.

 

그녀 이름은 '다린', 본명은 '신소희'다. 다린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값진 선물(darin)'이라는 뜻이며, 그녀가 스스로에게 직접 선물한 이름이라고 한다. 1996년생이며 2017년에 [가을]이라는 앨범으로 데뷔를 했다. 사실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들은 건 [가을] 앨범 노래 중 하나인 '새벽빛'이었다. 정확히 기억을 되짚어보자면 2019년 4월이었다.

 

아직은 쌀쌀한 4월의 이른 아침이었고, 나는 잠이 덜 깬 상태로 일행의 차에 올라타있었다. 차가운 바깥공기를 피해 히터로 몸을 녹이며 졸음과 한참을 싸우던 중이었다. 차에서 잔잔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반쯤 감기던 눈을 치켜뜨며 지금 이 노래 누구의 노래냐며 일행에게 물었고, 그는 스피커에 연결된 핸드폰을 뒤적이다 '다린'이라고 답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무려 1년 반 동안 그녀의 얼굴은 알지 못한 채 오직 목소리로만 그녀에게서 위안을 얻었다. 그녀는 곱씹을수록 저려오는 가사의 노래도 매우 담담하게 불렀다. 담담함 속에는 묵직함이 가득했다. 알맹이로 꽉 찬 담백한 목소리는 울적한 날 위로가 되기도 했고, 들뜨는 마음을 더욱 설레도록 부추기기도 했으며, 자기 전 머리맡 자장가가 될 때도 있었다.

 

그녀는 작사, 작곡까지 직접 도맡아 하는 싱어송라이터다. 내가 그녀를 더욱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노래를 들을 때 늘 가사를 곱씹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꽤 자주,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가사를 되새기며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이 가사를 쓰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곤 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가사를 그렸다.

 

 

 

Fine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돼
그저 나란히 여기에 누워
우리를 껴안는 침묵에
물드는 시간을 봐
괜찮아질 거야 전부 다
흩어지는 새벽 공기처럼
지나간 이야기 될 테니
지금은 잠시
It will be fine

 

 

최근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다. 주로 잠들기 직전, 혹은 늦은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던 밤에 자주 들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그저 옆에 나란히 함께 누워 있겠다는 담담한 배려와 위로를 전하는 노래다. 고요한 그녀의 목소리와 포근한 가사가 늦게까지 뒤척이던 나를 쓰다듬어주고, 어느새 느리고 편안한 호흡을 되찾은 나는 깊은 잠에 빠진다.

 

 

 


 

 

사랑은 여기 있어요
작은 소망들까지 모두 다 변함없이
아직 피어있어요
나는 매일을 살아가고 있어요
이곳에 남아서
우리의 사랑을
부디 약속해줘요
하지만 난 알고 있어
그건 나의 욕심인걸
여긴 그대로예요
그댄 꿈꾸던 세상에 있나요
더 자유롭게
저 멀리로 날아가
훨훨

 

 

다린이 노래하는 사랑에는 왠지 체념이 깃들어있는 것 같다.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기보다 마음 깊숙이 넣어둔 채 묵묵히 그 사랑을, 혹은 그 사람을 응원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사람은 저마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랑은 무수히 다양한 방식으로 갈라진다. 나는 사랑을 할 때면 늘 온몸으로 표현하는 편이었다. 시끄러운 마음을 그대로 꺼내어 보여주듯 요란하게 사랑을 드러내던 나는 '어쩔 수 없음'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다린 노래를 들을 때면, 체념이 비단 포기하겠다는 의미만은 아니라는 것을 온 마음으로 느끼곤 한다. 사랑은 절제할 수 없는 것인데, 기어코 그것을 절제하겠다는 의지가 전해진다. 너와 나를 묶는 '우리'를 위해. 시끄러운 마음을 침묵으로 잠재워야만 하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헤아렸다.

 

 

 

ZERO


 

 

제로
난 무언가 잃어가는 것만 같아
버려진 사람처럼
잠에서 깨곤 해
제로
내 온 몸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아

 

 

2021년이 끝나가던 무렵, 나는 그녀의 콘서트 소식에 망설임 없이 표를 예매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노래를 들으러 갔다. 꽉 찬 객석을 보며 그녀는 수줍게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연약한 제 마음에 여러분들의 발걸음이 너무나 큰 힘이 돼요."


그녀는 알까. 연약한 내 마음에 그녀의 노래가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눈앞에서 노래하는 그녀를 보며 한참을 행복해하다가도, 또 어떤 노래를 듣고는 눈물을 찔끔 흘리곤 했다. 그중 나는 'zero'를 들었을 때가 가장 인상 깊다. 이 노래를 듣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 객석 어딘가에서 조용히 혼자 울었다.

 

콘서트가 열리기 전부터 그녀는 관객들에게 편지를 받는 이벤트를 진행했었다. 신청곡과 함께 사연을 써서 편지를 보내오면, 그중 몇몇 사연을 골라 신청곡을 불러주는 방식이었다. 다린은 어느 한 20대 소녀의 사연을 읽어 내려갔고, 그녀는 촉촉해진 마음을 감추기 위해 애써 밝은 웃음을 띠었다. 그리고 'zero'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머릿속으로 '공허함'이라는 단어가 가진 풍경을 그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한 세계와 또 다른 세계가 만나는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세계는 포개어지고, 고유하던 각자의 색은 서로에게 스며들어 새로운 색이 되어버린다. 각자의 영역을 구분 짓던 경계선이 희미해질 때 즈음, 사라져버린다. 너의 세계가.

 

이제는 누구의 세계인지 분간할 수도 없는, 나에게만 남은 풍경을 바라본다. 그게 '제로'일지라도.

 

 


최유정.jpg

 

 

[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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