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행복을 잃어버린 자, 현실을 잊으려는 자 [도서/문학]

지독하게도 길었던 그날 밤. 유진 오닐 - [밤으로의 긴 여로]
글 입력 2022.01.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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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상처 입은 과거는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 과거에 대해 몇 가지의 스탠스를 취한다. 피하거나, 잊어버리거나, 마주 보거나. 피하는 것은 하책이라고들 한다. 일어난 과거는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살아가는 순간순간 아픈 과거가 떠오를 때마다 도망쳐야 한다. 잊는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도망치는 것의 연장선이라는 말도 있다. 완전한 망각이란 일어나지 않기에, 잊었다고 착각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고통스러운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억지로 의식의 밑으로 밑으로 밀어내야 한다. 그렇다고 마주 보는 것이 상책이냐면 또 그렇다고는 할 수 없는 듯하다. 마주 본다는 것 자체가 상처 입었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어 결투를 벌인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결투에서 승리하면 상처는 아물기 시작한다.

 

미국의 유명 희곡 작가인 유진 오닐은 '밤으로의 긴 여로'를 통해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끄집어내어 결투를 벌였다. 그의 부인 칼로타의 말에 의하면 그가 글을 쓸 때마다 10년은 늙은 듯한 수척한 모습이거나, 울어서 눈가가 빨개진 모습으로 문을 열고 나오곤 했다고 한다. 유진 오닐 그 스스로도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이라고 글을 소개했다. 얼마 전 접한,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장르인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를 읽고 든 궁금증 하나. 유진 오닐은 이 자전적 글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데 성공했을까.

 

 

*

책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이름은 '더 훌륭해졌을지도 모를', 혹은 '더는 아닌', '늦어버린', '안녕'.


 

유진 오닐.jpg

 

 

극은 4막으로 구성되며 크게 네 명의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전개된다. 젊었을 적 유명한 연극배우였지만 지금은 한물 간 아버지 제임스 티론과 수녀원 생활을 했지만 제임스를 만나 결혼한 그의 부인 메리 캐번 티론. 그리고 둘의 자식인 제이미 티론과 막내 에드먼드 티론은 제임스의 여름 별장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제임스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가족에게조차 돈에 인색하다. 메리는 모르핀 중독자로, 중독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 제이미는 술과 여자에 찌든 방탕한 생활을 계속한다. 에드먼드는 중병에 걸려 치료를 받아야 한다.

 

4막으로 진행되는 극은 아침에서 밤으로 이어져가는 하루 동안의 사건을 다룬다. 극의 초반에서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이는 듯했지만 얼마 시간이 지나지도 않아 제임스 티론의 가족들은 여러 가지 갈등 요소들로 인해 흔들린다. 극의 초입에서부터 어딘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메리는 가족과의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지독한 현실을 잊기 위해 다시 모르핀을 투여한다. 가족들은 그런 메리의 모습에 분노와 좌절, 슬픔을 느끼고 술로서 현실을 잊으려 한다. 에드먼드는 중병에 걸린 자신의 상황을 알게 되었음에도 보다 저렴한 요양 시설을 찾는 아버지 티론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다. 제이미는 동생 에드먼드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증오하는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다. 아침의 화창한 날씨를 비웃듯, 저녁이 되어감에 따라 별장 주변은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간다.

 

지독한 현실. 네 명 중 누구도 처한 현실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어미를 증오하고 동생을 증오한다. 형을 증오하고 아비를 증오한다.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낸다. 서로의 아픈 상처를 물어뜯는다. 그러고는 화들짝 놀라 이미 벌어진 상처를 봉합하려 애쓴다. 어미를 사랑하고 동생을 사랑한다. 형을 사랑하고 아비를 사랑한다. 뒤틀린 가족애는 작품을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형용할 수 없는 쓸쓸함을 자아내게 한다.

 

언제부터인지 그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언제부터인지 그들은 무언가를 잊으려 한다. 잃어버린 것들의 향수를 느끼기 위해 모르핀을 맞는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잊고자 술에 취한다.

 

 

내 얼굴을 보게. 

내 이름은 '더 훌륭해졌을지도 모를', 

혹은 '더는 아닌', '늦어버린', '안녕'이라고도 불리지.

 

유진 오닐 - [밤으로의 긴 여로 中]

 

 

 

내가 보이지 않고, 네가 보이지 않는 안개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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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가려주고 세상을 우리로부터 가려주지.

그래서 안개가 끼면 모든 게 변한 것 같고 예전 그대로인 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아무도 우리를 찾아내거나 손을 대지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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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얼마나 자욱한지 길이 안 보이는군 세상 사람들이 전부 지나가도 모르겠어. 

항상 이랬으면 좋겠다. 벌써 어두워지고 있어. 

곧 밤이 될 거야. 다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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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안개의 일부가 된 유령이고 안개는 바다의 유령인 것처럼.

유령 속의 유령이 되어 있으니 끝내주게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유진 오닐 - [밤으로의 긴 여로 中]

 

 

티론의 여름 별장, 화창한 아침. 극 초반의 날씨에 대한 묘사이다. 그렇다면 극 후반에는 어떨까. 오후가 지나고 밤이 찾아옴에 따라 별장 주변에 낀 안개는 갈수록 짙어진다. 등을 키지 않으면 한 치 앞을 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등장인물들의 갈등이 심화되어감에 따라 안개 또한 짙어진다. 그들이 현실을 잊고자 할수록 안개 또한 짙어진다.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숨으려 할수록, 절망적 상황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안개 또한 짙어진다.

 

안개가 끼는 묘사에 집중해서,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안개에 대해서 생각하는 대사에 집중해서 작품을 감상한다면 그들의 내면은 이미 뿌옇게 낀 안갯속에서 방향을 잃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시나브로 낀 안개는 시야를 앗아간다. 방향감을 앗아간다.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알 수 없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두려움에 그저 우두커니 서있거나 어느 곳으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그저 걷는다.

 

1막의 중간쯤에서 메리는 화창한 아침의 풍경을 보면서도 다시 안개가 낄 거라는 묘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당황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흉한 손가락을 가리키며 '일기 예보는 당신보다 관절염 걸린 이 손이 더 정확하죠'라는 변명을 한다. 어쩌면 메리는 그날 밤의 파국을 미리 짐작한 것이 아닐까? 연극에서 이 부분이 어떻게 묘사될지 무척 궁금한 부분이다.

 

 

 

아니면 취해서 다 잊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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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 우리 취하려고 아녜요, 예? 아버지, 우리 피차 솔직해지자고요. 오늘 밤만은. 우린 잊고 싶은 게 있잖아요.

 

티론 : 그래.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포기하는 것뿐이지...... 또다시.

 

에드먼드 : 아니면 취해서 다 잊든지.

(시몬즈가 번역한 보들레르의 산문시 [취하라]를 신랄하고 풍자적으로 멋지게 낭송한다.)

 

늘 취해 있어라. 다른 건 상관없다. 그것만이 문제이다. 그대의 어깨를 눌러 땅바닥에 짓이기는 시간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쉼 없이 취하라.

무엇에 취하냐고? 술에든, 시에든, 미덕에든, 그대 마음대로. 그저 취해 있어라.

그러다 이따금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가 풀밭에서나, 그대 방의 적막한 고독 속에서 깨어나 취기가 반쯤 혹은 싹 가셨거든 바람에게나, 물결에게나, 별에게나, 새에게나, 시계에게나, 그 무엇이든 날아가거나, 탄식하거나, 흔들리거나, 노래하거나, 말하는 것에게 물어보라. 지금 무엇을 할 시간인지 그러면 바람은, 물결은, 별은, 새는, 시계는 대답하리라. '취할 시간이다! 취하라, 시간의 고통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거든 쉼 없이 취하라! 술에든, 시에든, 미덕에든, 그대 원하는 것에.'

 

유진 오닐 - [밤으로의 긴 여로 中]

 

 

메리가 지독한 현실로부터 벗어나 과거의 망령과 춤을 추기 위해 모르핀을 맞는다면, 아버지 제임스와 두 아들 에드먼드, 제이미는 술로서 현실을 잊고자 한다. 가족들 간의 갈등이 절정에 이르기 전에는 물 탄 위스키를 마시지만 3막을 넘어서며, 그러니까 갈등의 절정에서 제임스는 아들 에드먼드에게 '진짜 술로 한잔하자'라며 지하실에서 술을 가져온다.

 

단순히 물 탄 위스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앞서의 안개처럼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함께 감상한다면 조금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갈등이 켜켜이 쌓이고 현실이 점차 지독해짐과 비례하여 등장인물들은 술에 취해간다. 에드먼드가 폐병에 걸린 것이 확실해짐에 따라, 메리가 결혼을 후회하며 신랄한 독설을 내뱉음에 따라, 제이미와 에드먼드의 갈등이 표면 위로 불거져감에 따라 그들은 술에 취해간다. 술에 취해 이성을 마비시킴으로써 현실을 외면하고자 한다.

 

한 마디 내뱉고는 한 잔을 마시고, 한 마디 듣고는 한 잔을 마신다. 4막이 지나가며 그들은 급격하게 취해간다. 이렇게 그날 밤이 지나가겠거니- 생각한 순간 약에 취한 메리가 1층에 나타난다. 그 순간 그들의 취기는 한순간에 날아간다. 아. 이게 현실이구나. 잊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지독한 현실이구나. 그것을 깨달았던 것이 아닐까.

 

 

 

여로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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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설정과 이름의 변형을 제외하고는, [밤으로의 긴 여로]는 유진 오닐의 인생을 그대로 그린 작품이다. 끔찍하게도 아픈 과거사를 끄집어내어 직면했던 유진 오닐은 작품을 쓰는 과정 속에서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작품을 완성한 후 '자신의 사후 25년이 지나기 전에는 절대로 작품을 공표하지 말라'라는 말을 남긴다. 유진 오닐은 과거와의 결투에서 승리했을까?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했을까? 그 여로의 끝에서, 안개는 걷혔을까?

  

많은 이들이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지나간 행복은 발에 족쇄를 채우고, 암담한 현실은 어깨를 짓누르고, 확신하지 못하는 미래는 공포를 준다. 공포를 극복하자니 방법을 모르겠고, 짓눌린 어깨를 펴자니 여간 쉽지 않고, 족쇄를 풀자니 열쇠를 잃어버렸다. 모든 것을 품고 나아가라는 입에 발린 말을 들으면 도대체 어떤 몹쓸 놈이 말한 것인지 찾아 따지고 싶어진다. 상처를 입어봤냐고. 현실에 치여봤냐고. 당신의 미래는 마냥 밝냐고.

 

다시, 누구에게나 상처 입은 과거는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 과거에 대해 몇 가지의 스탠스를 취한다. 피하거나, 잊어버리거나, 마주 보거나. 처음의 말을 바꿔 질문하고자 한다. 피하는 것은 하책인가? 잊는 것은? 마주 보는 것은? 글을 쓰는 나 또한 취한 채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또 무엇을 잊고자 할까. 내 여로의 끝에서 과연 안개는 걷혔을까.

 

 

 

 아트 인사이트 에디터 테그.jpg

 

 

[최원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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