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은 글, 사랑에 빠지고 고백하기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1.2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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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타나는 증상은 대개 이렇다. 먼저 동공이 확장되고, 그 후에는 심장이 기분 좋게 뛰기 시작하며, 손에 땀이 나기도 한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쉽게 눈을 떼지 못하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증상은 내가 좋은 글을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보이는 반응과 거의 흡사하다는 것이다. 좋은 글을 볼 때면 나는 순식간에 그것에 빠져들고 다음 내용을 기대하면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렇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좋은 글을 보면 그 글에 필연적으로 마음을 빼앗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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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좋은 글에는 내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타인의 삶이 궁금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알고 싶었다. 수면에서부터 해저에 있는, 밝은 곳에서부터 어두운 곳에 있는, 머릿속 생각들과 마음속 감정들 모두 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이 쓴 글을 읽는 것은 이러한 나의 호기심을 해갈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방법이 되었다. 글에는 글쓴이의 사상, 감정, 경험, 사색 등 온갖 것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내게 있어 글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 그 자체를 벗어난 지 오래되었다.


어떨 때는 자못, 경건하기까지 하다. 좋은 글을 읽을 때면 그렇다. 좋은 글에는 이상한 힘이 있어서 부지불식간 글을 쓴 사람의 세계에 빨려 들어가 그곳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 사람이 세운, 그만의 세상에 접속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사방이 모두 글쓴이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가 가진 것과 비슷한 것들도 있고 전혀 다른 것들도 있다. 그래서 동질감을 느끼며 공감하거나 위로를 받기도 하고,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거나 신선한 자극을 받기도 한다.

 

물론 나는 타인의 세계에서 외부인이고 이방인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좋은 글에는 마력이 있어서 그런 글을 읽을 때면 그곳에 나의 세계를 가지고 올 때가 많다. 아니, 나의 세계에 그곳을 가지고 오는 것일지도. 한마디로, 좋은 글은 글 쓴 사람의 이야기에서 읽는 사람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타인의 글을 통해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것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좋은 글 속에 있는 한 문단, 한 문장, 한 단어만으로도 기억 창고에 저 멀리 보관되어 잊혀져 있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기도 하며, 불현듯 누군가가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읽은 글은 한 번 읽고 끝나지 않는다. 좋은 글은 나만의 서재에 저장하고 두고두고 꺼내 본다. 유독 좋아하는 문장은 필사하여 더 가까이 두면서 말이다. 지친 날, 위로받고 싶은 날, 조언을 듣고 싶은 날,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싶은 날, 그런 날에는 모아놓은 글을 찾아본다. 그 속의 글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며 나를 영영 떠나지 않을, ‘나의 동반 글’이 되어왔다. 이러니 사랑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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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사람은 가만히 있지 못한다. 끊임없이 그 주위를 맴돌고 기웃거린다. 그리고 종국에는 품고 있는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게 된다.

 

그래서 나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걸음은 쉬웠다. 편지, 받는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고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마음을 보여주면 되었다. 일기, 오늘 있었던 일들을 나열하거나 그날 느꼈던 감정을 쏟아내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형식과 분야의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언젠가부터 내가 쓴 글을 보면 기분이 묘하다. 바람에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내 마음도 왔다 갔다 한다. 하루는 읽고 또 읽을 정도로 좋아서 애정이 가고, 또 다른 하루는 너무 부끄러워서 읽은 사람의 머릿속 기억을 훔쳐 오고 싶을 정도로 감추고 싶다. 내가 쓴 글은 어제나 오늘이나 그대로인데, 그 글을 보는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다. 내 마음을 드러내고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아무도 모르게 나만 볼 수 있도록 꼭꼭 감추고 싶기도 하다.


이토록 모순적이라니. 마치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싶기도 하고 감추고 싶기도 한,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모습과 같다.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있어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혼란한 마음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를 향한 고백인지도 알게 되었다. 아트인사이트에 주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기 전까지, 나는 독자가 그 대상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글을 쓰기 전에 고민하고 생각하는 과정,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과정, 그 모든 과정에서 내가 만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글이든, 결국 나를 향한 고백이었고 나를 세상에 고백하는 것이었다.


글을 쓸 때마다 느낀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 온전히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없다고. 머릿속에, 마음속에 부유하고 있던 말들이 글쓰기를 통해 발현되면서 매 순간 깨닫기 때문이다. 아, 그래. 나 이렇게 생각해.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어. 나만의 글을 쓰면서, 비로소 나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나를 향한 고백을 시작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시간은 나를 만나는 시간이라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그 시간의 농도에 따라, 심도에 따라, 글이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농도가 짙어질수록, 심도가 깊어질수록 글 속에 펼쳐진 쓰는 이의 세계가 단단해진다. 읽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은 그 경도 높은 세계에서 나온다. 내가 좋은 글을 만날 때면 나도 모르는 사이 저자의 세계에 스며드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

 

많은 생각을 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이렇다, 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사실 잘 모르겠다. 앞으로도 쉬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낭만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누군가는 사치라고 부를, 사색과 공상을 양손에 쥐고 있어야 함은 분명하다. 생각하는 힘은 유일한 무기가 된다는 어느 책의 제목처럼, 사색하고 공상하는 힘에서 파생된 나만의 이야기에는 엄청난 힘이 있고, 나는 그것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까지 전해진다고 믿는다. 내가 지금까지 좋은 글들을 보며 살아갈 동력을 얻은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도 나는 좋은 글을 만나면 온 마음을 다해서 그 글과 사랑에 빠질 것이고, 어렵고 혼란스럽겠지만 나를 향한 고백을 멈추지 않고 글을 쓸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글이라는 낭만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끝으로, 나의 글을 읽은, 혹은 읽을 누군가가 자신의 추억 속 한 페이지를 펼쳐보거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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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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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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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스텔
    • 공감이 많이 가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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