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모두 낯선 이방인 -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 [공연]

낯섦의 다른 말
글 입력 2022.01.22 08:5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1)스핏파이어 그릴_포스터_저용량.jpg


 

[스핏파이어 그릴]은 감옥에서 갓 출소한 주인공 퍼씨가 위스콘신주의 작은 마을 길리앗에 머무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다.

 

모종의 이유로 복역을 마치고 길리앗에 머물게 된 주인공 '퍼씨'와 오래된 비밀을 간직한 채 '스핏파이어 그릴'을 지키며 굳건히 살아가는 '한나' 그리고 남편 '케일럽'의 그늘 속에서 숨죽여 살아온 '셸비'가 '스핏파이어 그릴'에서 만나 서로를 통해 위로받고 치유하는 이야기가 주축을 이룬다.

 

길리앗의 유일한 식당인 '스핏파이어 그릴'은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 같은 장소다. 오래도록 낯선 사람의 방문이 없었던 이 작은 마을에 찾아온 퍼씨는 동네 사람들에게 '낯선 이방인'이자 의심과 경계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스핏파이어 그릴'의 주인인 한나가 갑자기 다리를 다치게 되면서 셸비와 함께 가게 운영을 맡게 된 퍼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언제나 평온한 것 같은 마을 사람들에게 각자만의 상처와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꾸미기]common (1).jpg

 

 

작품은 '낯선 이방인' 퍼씨가 한 마을의 일원이 되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탐색하고, 오해하고, 이해하면서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관계를 맺는 데서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가 서로를 신뢰하는 '친구'가 되기 위해 비밀을 공유하고, 위로하고, 의지한다.

 

특히 극 중에서 "들새는 둥지를 틀지 않아"라고 말하는 퍼씨의 대사처럼 유독 '새'에 대한 비유가 많이 나오는데, 이는 '새'의 작고 여린 이미지와 더불어 자유로움, 불안함, 낯섦 등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도구라고 생각된다.

 

또한 복잡한 계단의 형태가 무대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 주인공들의 어려움과 갈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더불어 공연 내내 무대의 전환이나 역동적인 변화는 없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작고, 조용하고, 별일 없는 마을의 분위기를 설명하기에 알맞다.

 

다만, 주인공들이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되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방식과 구성이 진부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연과 이야기에 관객들이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건, 주인공들이 가진 상처와 아픔들이 그들을 충분히 나약하게 만들 수 있었음을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도 주인공들의 비밀과 상처를 하나둘씩 알아 갈수록 내적 친밀감이 상승하고 더욱더 몰입하게 되는 걸 부정할 수가 없었다. 역시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에 대한 은밀한 비밀의 공유인 것 같다.

 

 

[꾸미기]common (2).jpg

 

 

아마도 퍼씨에게 길리앗은 '두려움'임과 동시에 '설렘'이었을 것이다. 낯선 공간과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게 '두려움'이었을 테고, 그만큼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는 곳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곧 '설렘'이었을 거다.

  

이렇듯 우리는 때로 무(無)의 상태에서 서로를 바라볼 때 오히려 편안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을 둘러싼 익숙한 관계에서 벗어나 길리앗으로 온 퍼씨에게 마을 사람들은 낯설지만 편안한 존재였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낯선 이방인' 퍼씨가 늘 익숙하고 단조로운 생활 속에 긴장과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주인공들이 이런 '낯선 편안함' 속에서 자신의 비밀과 속마음을 드러내며 점차 서로를 위로하고 관계를 발전시켜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낯섦이 곧 편안함이 되는 아이러니를 인정해야만 했다.

 

그 '낯섦' 덕분에 퍼씨는 아는 이 하나없는 고립된 마을 길리앗을 찾아왔고, '스핏파이어 그릴' 식당 운영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평생 스스로가 중심이 되지 못한 채 살아왔던 마을 사람들도 '이방인' 퍼씨의 '낯섦'을 통해 한층 성장하고 깊이 위로받는다.

 

낯설다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처음부터 익숙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는 매일 새로운 시작 앞에 서 있다. 어차피 우리 모두가 '낯선 이방인'이라면, '스핏파이어 그릴'의 주인공들처럼 조금만 더 서로를 배려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에디터_서은해.jpg

 


[서은해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