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뚜껑 없는 열차 [공연]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글 입력 2022.01.20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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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는 안 될 분명한 기억이 있다.

 

공연 도중 객석은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했다. 본디 공연 관람 시 침묵하는 것이 예의일지언정, 그런 유의 침묵과는 명백히 달랐다. 객석 곳곳에서는 단단하고 무거운 침묵의 표면을 깬 틈새로 울음소리가 비집고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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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2021년 캐리커처 작가인 우순은 친구 부탁으로 소녀상의 소녀를 실사로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고민하던 우순은 우연한 계기로 뚜껑 없는 열차를 타고 타임슬립을 경험하여 순심이가 사는 1948년으로 가게 된다.

 

과거로 돌아간 우순은 사람들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자신이 그리려고 하던 느낌과 비슷한 순심을 발견하게 된다. 우순은 순심을 그리고 싶어 찾아가지만 순심 아버지의 반대로 순심을 그릴 수 없게 된다.

 

여러 일을 겪으며 순심과 가까워지게 된 우순은 순심이의 아지트에 가게 되고, 순심은 우순에게 자신의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데...

 

 

 

시간 여행


 

극에서 '뚜껑 없는 열차'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다. 우순은 그 열차를 타고 1948년으로 향한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그저 그런 장치가 아닌, 실제로 과거의 배경이 눈앞에 그려졌다는 것이다. 현재와 과거의 분절이 명확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그것을 분명하게 이해시켜주었다. 의상은 겉옷일 뿐, 그 속의 알맹이처럼 단단하고 섬세한 배우들의 연기는 가보지도 못했던 시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우순이 1948년 그 시절, 그곳에 가 있는 동안 나와 관객들 또한 그곳에 있었다.

 

배우들은 특징이 뚜렷한 각자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1948년 한 시장의 모습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시장 사람들은 과거의 모습이 어리둥절하기만 한 우순에게 시장 음식을 팔기도 하며, 그의 초상화에 관심을 가진다. 우순에게 툭툭대면서도 친절을 베푸는 시장 사람들과, 그들의 모습을 그려주는 우순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순심과 그녀의 가족들의 첫 등장은 조심스러웠다. 행여나 누가 순심을 데려가기라도 할 듯 그녀를 보호하는 어머니의 안절부절하는 모습, 엄마 뒤에 숨어 시장을 오가는 순심, 그리고 늘 술에 취해 있는 아버지. 순심을 발견한 우순은 그녀의 초상화를 한 번만 그릴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낯선 이의 접근이 두렵기라도 한 듯 그들 가족은 우순을 경계한다.

  

후에 우순에게 경계심을 풀며 그와 조금씩 친근감을 쌓아가는 순심의 얼굴에서는 여느 소녀와는 다를 바 없는 해맑음이 드러난다. 우순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순심은 깔깔 웃기도 하며, 그가 나누어 준 맛있는 음식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맛있게 음식을 먹기도 한다.

 

어릴 적 약혼 상대인 영수의 등장에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다. 우순에게 본인이 잠시 어디 다녀온 이야기를 하는 동안은 순심의 얼굴에 잠깐씩 그림자가 일지만, 걱정하는 우순 앞에서 이내 다시 활짝 웃어 보이는 순심이다.

 

때 하나 묻지 않은, 순수함과 해맑음이 만개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들 중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순에게서 받아 온 육전을 엄마와 사이좋게 나눠 먹으려는 순심, 그리고 그녀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엄마. 모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따뜻함으로 덮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조심스럽게 피어난다. 그들 사이에 온정이 감돈다.

  

그들의 안정을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영수 엄마의 등장으로 조심스레 겨우겨우 붙잡고 살아가던 평화의 끈이 끊어지고 만다. 순심과 가족들의 상처를 한 번 더 쓰라리게 한다.

 

영수 엄마는 순심에게 그런 곳을 다녀온 것이냐며 두려움에 눈물을 터뜨리는 어린 그녀를 붙들고 호통친다. 불같이 화를 내는 영수 엄마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는 순심의 엄마와 아빠. 끝내 영수 엄마의 입에서 '더럽다'라는 단어가 터져 나온다.

 

'더러운'

 

그 한 마디에 순심의 엄마는 참아왔던 울분을 터뜨렸다. 꾹꾹 눌러왔던 상처와 씻을 수 없는 아픔을 토해냈다. 사람이 고통에 사무쳐 울부짖는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잘못을 껴안은 채 서로의 상처를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그들 모습에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다. 나는 입에 담기도 싫은 그 단어를 머릿속으로 굴려 보았다. 굴려볼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보는 사람마저 기분 좋게 만드는 순심이의 때 묻지 않은 미소는 그 단어와 절대로 함께 할 수 없다.

  

순심이는 아까보다 더 많이 울었고, 나는 그녀를 따라 울었다. 공연에 방해될까 자꾸만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를 삼켜내느라 목구멍이 따가웠다. 내고 싶은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 이토록 아픈 일이었나 생각했다.

 

 

 

기억하자


 

우순은 다시 현재로 돌아가기 전, 순심을 만난다. 순심은 여전히 해맑고 예쁜 미소를 머금은 채 우순에게 약속할 것을 부탁한다. 그가 사는 시대에서 다시 만나면 자신을 꼭 안아달라고. 그리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며 사라지는 소녀 순심.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뚜껑 없는 열차를 타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다녀온 순심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한다. 안전하게 돌아온 그녀에게 어찌 이곳에 다시 왔냐며 박대한다. 그 모습은 위안부 사건을 대하던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한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과를 내놓지 않았고, 과거에 이루어진 한일협정은 피해자들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했다. 일본의 사과와 더불어, 우리 내부에서부터 그들을 진정으로 보듬고 치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작품은 앞으로 그들을 위해 우리가 어떤 미래를 그려가야 할지 메시지를 던지며, 가슴에 짙은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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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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