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반오십 INFJ의 인턴 일지 Ep 4. 나만 빼고 퇴사 행렬

글 입력 2022.01.1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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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4-1. 팀장님의 퇴사


 

첫 출근 이후 약 2주가 지난 어느 날, 나의 인턴 생활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수요일 오후로 기억한다. 평소처럼 점심을 먹고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HP를 회복하며 꾸역꾸역 일을 하던 중, 회의실에서 나온 J님께서 말씀하셨다. “팀장님이 부르세요”라고.

 

늘 업무 회의를 위해서는 나와 J님을 동시에 부르셨기 때문에 따로 부르시는 이유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난데없이 떨어진 영상 제작 미션에 골머리를 앓을 때라, 이유를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홀린 듯이 회의실에 들어갔다.

 

작은 회의실에는 팀장님인 T님께서 혼자 앉아 계셨다. 인사를 하고 들어간 후, 조금 전까지 J님께서 앉아 계셨을 거라 추측되는 맞은편에 앉아 잠자코 T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T님께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계셨다. 결과를 아는 지금은 그 미소가 어떤 의미였을지 -아마 씁쓸함과 후련함이 공존했을 것이다- 추측하지만, 그때는 혹시 내가 무언가 잘못을 한 건가 싶어서 괜히 긴장하기도 했다.

 

다행히 T님은 (누군가는 망상이라고도 부를) 나의 온갖 가정과 추측이 시작되기 전에 곧바로 본론을 꺼내셨다.

   

 
“제가 퇴사하게 됐어요.
OO님한테는 많이 미안하네요ㅠ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팀원, 그것도 팀장님의 퇴사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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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많이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꼭 팀장님이 퇴사를 하셔서가 아닌 현재 콘텐츠 마케팅 직무에는 인턴인 J님과 나뿐이었기에, 전적으로 팀장님의 지도하에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개인적인 아쉬움도 공존했다. 늘 나를 꿰뚫어보는 듯했던 T님을 불편하게 여겼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어른으로서 믿고 따를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업무에 있어서도 인턴인 나를 회의에 참가시키고 이것저것 가르쳐주려 하셨으니, 3개월 후에는 많이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마스크를 써도 이처럼 당황했던 감정은 다 드러났을 거라 확신한다. 그 탓인지 T님이 퇴사 소식을 전하신 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직접적으로 궁금했던 것을 다 묻고 말았다.

   

 

“어, 음...언제 퇴사하세요?”

“이번 주 금요일이요ㅎㅎ”

“헉, 며칠 안 남았네요?”

“네, 확실해지면 말씀 드리려 했는데 날짜가 촉박하게 됐네요ㅠㅠ”

“그럼 콘텐츠 마케팅 시니어 분 채용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제가 곧 관둘 건데 제가 뽑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대표님께 맡겼어요. 아마 대표님이 뽑아주실 거예요.”

“아, 네......다음엔 어디로 가세요?”

“아직 정해지진 않았어요. 우선 이 회사는 저랑 지향하는 바가 너무 다르더라고요.”

 

 

횡설수설 이어지던 대화 속, 귀에 박힌 단어는 ‘지향’이었다.

 

T님은 이 회사에 스카웃되어 오신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었다. 회사가 신생 스타트업인 만큼 임원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직원이 비슷한 연차였지만, 당시 6개월 차였던 인턴인 J님보다도 작은 연차였다.

 

그때 T님께서 의도하신 ‘지향’이 기업 문화인지, 업무 스타일인지, 혹은 그 외 개인적인 사유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후로 이어진 다른 직원들의 퇴사 소식과 내부의 소문을 들으며 추측만 할 뿐이다. 3개월 만에 경력 15년차 팀장님을 관두게 만든 어떠한 갈등이 존재했으리라고.

 

그렇게 콘텐츠 마케팅 직무는 나와 J님, 인턴 두 명만 남게 되었다(시니어 팀원은 나의 퇴사 직전에 가서야 뽑아주셨다). 앞으로의 업무는 어떻게 되는 건가 걱정과 의문이 공존했던 일주일이었다. 물론, 이런 걱정은 나보다는 J님이 훨씬 더 컸겠지만 말이다.

 

 

 

Ep 4-2. 팀원의 퇴사


 

그로부터 약 일주일 후, T님에 이어 또 한 명의 팀원과 이별하게 되었다.

 

퇴사의 주인공은 그로스 마케팅 직무였던 W님이었다. 지난 편에 작성했던 것처럼, W님은 나보다도 늦게 입사한 팀원이었다. 그렇기에 W님의 퇴사는 정확히 입사 한 달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고,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퇴사 소식 또한 업무용 메신저 슬랙(Slack)을 통해 듣게 되었다. W님께서 나와 J님을 따로 초대하신 후, 감사와 미안함을 담은 메시지를 보내셨던 것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쉽고, 더 많이 챙겨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메시지를 받은 날은 W님의 퇴사 당일이었다. 그것도 오후 3시 경이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5시가 조금 넘었을 때 W님은 모든 짐을 챙겨 떠나셨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맞이한 이별이기 때문일까, T님의 퇴사 소식보다 10배는 더 놀랐던 것 같다. T님은 그래도 사전에 알고 있었고, 당일에는 꽃다발을 드리며 조촐한 송별회도 열었는데 W님과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심지어 5인 이상 집합 금지로 인해 식사 한 번 하지 못했다).

 

상황이 종료된 후에야 며칠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W님과는 같은 팀이지만 다른 직무라 마주칠 일이 없었고, 또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으니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데, 유일하게 길게 대화를 했던 날이 있었다. 바로 우연찮게 퇴근길이 겹쳤을 때였다.

   

 

“아, 인턴이세요? 그럼 이 회사는 어떻게 오셨어요?”

“교내 취업 공고를 보고 지원했어요. W님은요?”

“저는 예전부터 여기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왔어요.”

 

 

W님 또한 나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으니 나와 J님이 인턴이라는 것과 아직 학생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셨고, 내 답변에 놀라셨다. 나 또한 W님은 다른 회사에 재직 중 이 회사에 관심을 갖고 이직했다는 소식에 놀라웠고, 그럼 여기가 두 번째 직장이냐는 질문에 자신은 직장 경력이 오래됐다는 답변에 한 번 더 놀라기도 했다.

 

서로에게 놀라며, W님은 이것저것 질문을 더 이어가셨다.

   

 

“회사 생활 어떤 것 같아요?”

“전 여기가 첫 회사라 비교대상은 없지만, 스타트업이라 그런지 확실히 자유로운 것 같아요.”

“그래요? 글쎄, 사실 전 여기가 자유롭진 않은 것 같아요ㅎㅎ”

 

 

‘자유롭진 않은 것 같다’는 마지막 말이 W님의 퇴사 이후 머릿속을 맴돌았다. 당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복장부터 호칭 문화까지, 아무리 봐도 자유로우면 자유로웠지, 보수적이라고 느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흘러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T님의 ‘지향’이 꼭 기업과 업무 등 한 가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듯, W님의 ‘자유’ 또한 복장과 호칭 등 눈에 보이는 기업 문화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리란 걸.

 

이유가 어찌 되었듯, 모든 사람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관심 있었던 회사를 한 달 만에 관두게 만든, 결정적인 기준이.

 

 

 

Ep 4-3. 남겨진 사람들


 

T님과 W님의 연이은 퇴사 후, 우리 팀은 나와 J님, 그리고 E님까지 세 명만 남게 되었다.

 

바로 옆자리에 위치한 다른 팀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팀원이 입사하며 빈자리가 채워지는데, 우리 팀은 자리가 텅텅 비었다. 그렇게 시작된 8월은 돌이켜보면 제법 힘들었던 것 같다. 이끌어줄 팀장님이 부재했으며, 중심을 잡아줄 시니어 팀원도 없었고, 그 외 소소한 인간관계와 관련한 문제도 있었던 탓이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콘텐츠가 오픈해야 그와 관련한 SNS 콘텐츠와 광고 소재를 제작할 텐데, 하반기 대규모 프로모션으로 인해 8월에는 오픈 일정이 텅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포스트 작성 등 기존의 일을 지속하면서 다른 팀들의 SNS 관련 일을 돕곤 했다. 하지만 본래 우리 팀의 일이 아니었으니 명확한 기준을 알 리가 없었고, J님 또한 마찬가지였다. 8월 한 달은, 말 그대로 파도처럼 휩쓸린 달이었다.

 

그래도 사람의 기억은 미화가 되는 걸까. 숨통이 트인 9월의 어느 날, 동기 L을 만났을 때는 회사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적절히 섞어 말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8월 이후에는 제대로 된 업무를 할 수 있었던 덕에 제법 재미를 붙였을 때였다.

 

하지만 L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친한 동기 중 가장 먼저 취업한 L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더니 딱 한 마디를 던졌다. “빨리 도망가라”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기업에 재직 중인 L의 눈에는 팀원이 3명이고, 그조차도 인턴이 2명인 회사의 상황이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L의 칼 같은 성격을 잘 알기에, 나는 이 또한 다 경험이 아니겠느냐고 웃으며 넘어갔다. 사실 별로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친구 H는 또 달랐다. L이 한 말을 전해 듣고는 의문을 표했던 것이다. “그래도 네 일인데,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너는 “기분이 나쁘지 않느냐”고도 덧붙였다.

 

같은 상황임에도 이토록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나를 위해서 한 말이라는 것을 알기에 옳고 그름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친구 관계에서도 이럴진대 하루의 대부분을 속해 있는 회사에서는 더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T님과 W님이 퇴사를 결심하게 만든, 나는 알지 못하는 이유처럼.

 

 

[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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