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획득할 수 없는 진실 [영화]

글 입력 2022.01.0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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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羅生門, 1950)', 구로사와 아키라

 

 

나생문(羅生門). 삶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곳. 혹은 널려 있는 곳. 서로 다른 삶들은 자신의 색으로 다른 것을 덮어버리려 애쓴다. 각각의 입은 자신이 뱉은 진실이 결백함을 주장한다. 쏟아지는 불일치 속에서 관객의 위치인 제삼자는 참인 증언을 어떻게 구별해낼 수 있는가?

 

나생문은 일본을 넘어 세계 영화계의 거장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작인 <라쇼몽>의 한자식 이름이자,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1915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두 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흑백영화는,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객관성과 인간성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950년 개봉된 이후 이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으며, 그 유명한 ‘라쇼몽 효과’라는 신조어를 파생시킬 만큼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심도 있는 주제와 플롯만큼 다양한 비평과 해석들이 존재하는데, 특별히 객관성 및 주관성에 관한 논의가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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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은 네 명의 등장인물―강도 다조마루, 사무라이의 아내, 사무라이, 그리고 목격자인 나무꾼의 주관적 진술이 차례로 나열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다조마루는 자신이 사무라이를 속여 그를 포박해두고 그의 아내를 범했는데, 아내가 자신에게 매혹되었고, 이후 정정당당한 승부를 통해 승리를 쟁취하였으나 아내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고 진술한다. 관객은 사건에 대한 다조마루의 첫 묘사를 별다른 의심없이 진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하나의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고, 플롯이 진행될수록 사건의 진상 파악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사무라이의 아내는 자신이 다조마루에게 겁탈당한 후 남편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아 절망에 빠진 채 정신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반면 사무라이는 아내가 자신을 배신한 뒤 다조마루와 한패가 되어 자신을 죽이기를 종용했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결투에서 패배해서가 아니라 배신감과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 단도로 자결했다고 무녀의 입을 통해 증언한다.

 

이때 모든 것을 목격한 나무꾼의 증언은, 세 인물의 엇갈린 증언이 철저하게 자신의 입장에만 기반한 것임을 증명한다. 다조마루는 사무라이의 아내를 겁탈한 뒤 열렬하게 그녀를 구슬려 데려가려 했으나, 사무라이가 아내를 비난하며 그녀를 버리려 하자 다조마루도 이에 동조하여 유혹을 멈추고 급변한 태도를 보인다. 졸지에 갈 곳을 잃게 된 아내는 둘을 부추겨 결투 상황을 유도한다. 결투라는 단어가 민망할 정도로 졸렬한 몸싸움을 지속하다 끝내 다조마루가 사무라이를 살해하지만, 아내는 도망쳐버리고 다조마루는 사무라이의 칼을 챙겨 떠난다. 이것이 나무꾼이 말하는 진실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나무꾼이 사무라이의 아내가 사용한 단검을 몰래 챙겼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그 또한 객관적 관찰자가 아닌, 사건의 이해관계에 개입되어 이를 편집하여 전달했음이 폭로된다. 관객은 나생문 아래 복잡하게 얽힌 증언들 속에서 오직 파편화된 사실 몇 개만을 주울 수 있을 뿐, 진실 전체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비로소 인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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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라쇼몽>에서 드러난 진실은 우리는 결코 진실을 알 수 없다는 것뿐이다. 진실이 영원히 획득할 수 없는 대상이 된 까닭은 역사 속에서 결코 주관성을 말끔하게 소거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에 있다. 그리고 그 불가능성은 인간의 본유적인 이기심, 혹은 자기 중심성에서 기인한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개인은 언제나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아름답게 그리는 방향을 선택한다. ‘라쇼몽에 살던 도깨비도 인간이 무서워 달아났다 하더군.’ ‘세상은 지옥이다.’ 관람자는 비로소 영화 속 대사가 지닌 함의를 이해하게 된다. 인간이 인간을 믿을 수 없는, 불신이 가득한 지상에서 우리는 누구의 이야기를 진실로 믿어야 하는가? 사건에 대한 자기 중심적 해석은 인간 오감의 불완전성과 결합하고, 종래에는 진실의 존재 여부에 대한 불신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지점에서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역사는 과연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또 가치 중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줄곧 역사의 ‘객관성’을 신뢰해왔다. 그러나 역사가 누군가가 선택한 간접적인 기록이며 편집 및 조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우상화되었던 역사는 넝마가 되어 지하로 추락한다.

 

우리는 실상 ‘객관’과 ‘진실’이라는 단어가 언제나 부재했음을 절감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저 허상에 빠진 채 누군가의 주관을 두고 중립적이라 믿으며 살아왔다는 비극적 결론에까지 이르게 된다. 관객은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 거대하고 견고한 벽을 마주한다. 벽의 이름은 획득할 수 없는 진실이다.

 

진실이 없다는 진실. 이토록 절망적인 명사구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 어쩌면 인간은 지상에선 결코 태어날 수 없는 것들을 오래전부터 갈망해 온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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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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