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형 데스 게임이란 (2) [드라마/예능]

<오징어 게임>(황동혁, 2021)의 문화적 맥락
글 입력 2022.01.0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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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 데스 게임이란> (1)과 이어집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국내에서 거의 처음으로 시도된 데스 게임 드라마이지만, 그렇다고 선행하는 맥락 없이 갑자기 나타난 작품은 아니다. <오징어 게임>은 앞서 말한 한국의 데스 게임물의 영향 아래 '인물의 드라마'와 '사회 비판적 요소'를 강화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물론 앞서 언급한 <10억>이나 <고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 작품 모두 인물의 드라마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슷한 접근 방식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오징어 게임>의 배경 설정은 일본 데스 게임물의 장르적 규칙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참가자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최자'가 연 '거액의 상금'이 걸린 '목숨을 건 게임'에 참가하고,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른 참가자들과 일시적으로 협력'하기도 하지만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살아남기 위해 서로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러나 기존 데스 게임과의 차이점 역시 분명하게 존재하는데, 이는 <오징어 게임>을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하는 요소다. 기존 데스 게임물에서 참가자들은 강제적으로 게임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자발적인 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중간에 게임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을 현실과 동떨어진 가상의 장소/국가로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의 경우 참가자들은 각자의 절박한 사정 탓에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자발적으로 게임에 참여했으며, 참가자 과반이 동의할 경우 즉시 게임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흥미로운 규칙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오징어 게임>의 현실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작품의 특수성을 확보하는 요소다. <오징어 게임>을 지배하는 은유는 데스 게임과 승자독식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적 유사성인데, 참가자들이 합의 하에 게임을 끝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이유로 게임을 멈추지 못하고 다른 참가자들과 경쟁한다는 서사는 이들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데스 게임을 강제하며 사회적 약자들끼리 서로 짓밟을 것을 강요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오징어 게임>이 한 에피소드 전체(2화)를 활용하여 등장인물 각자의 사연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상기한 주제 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밑작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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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은 이처럼 데스 게임의 장르적 쾌감보다는 창작자의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며 서구의 데스 게임물을 재매개한다. 이는 <오징어 게임>의 핵심 요소인 '게임'에서도 잘 드러난다.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게임은 한국의 길거리 놀이를 거의 그대로 차용한 만큼 기본적으로 굉장히 단순하고 전략이 큰 의미가 없다. 물론 4화의 줄다리기처럼 나름대로 전략이 있는 게임도 있지만, 게임의 규칙과 공략법을 굉장히 치밀하게 설계하는 일본 데스 게임물보다는 그 깊이가 얕다(오징어 게임의 공개 직후 국내 하위문화 팬덤을 중심으로 상당한 악평이 나왔던 것도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길거리 놀이에 이런저런 규칙을 추가하여 독창적인 게임(예컨대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경우 가위바위보를 모티브로 상당히 복잡한 룰을 가진 게임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흥미로운 서사를 구성한다)을 만들 수 있음에도 <오징어 게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신 길거리 놀이도 본질적으로는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경쟁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게임이 본래의 순수한 의도를 상실하고 단순히 승자를 가리기 위한 도구로 변모했을 때 얼마나 폭력적이고 불평등한 것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헐겁게 설계된 게임은 그 자체로 참가자들이 사회에서 겪었던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오징어 게임>의 게임에서는 치밀한 전략보다는 운이나 신체적인 조건이 승패를 가르는 경향이 강하다. 데스 게임물이 일반적으로 참가자들의 신체 조건 차이를 최소화하는 장치(무기나 특수한 규칙 등)를 형식적으로라도 넣는 것을 생각하면, <오징어 게임>의 주된 관심사가 게임의 치밀하고 합리적인 설계가 아니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한껏 부조리한 게임 속에서 진행자(프론트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게임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참가자들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며, 이 게임은 바깥 세상에서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려 온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이를 <오징어 게임>의 내적인 모순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불평등 속에서 형식적인 공정을 외치는 아이러니는 분명 어느 정도 의도된 알레고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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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은 이처럼 데스 게임이라는 장르 안에서 인물의 드라마와 사회 비판적 요소에 집중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나름대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다만 이를 풀어내는 과정이 지극히 동아시아적(혹은 가부장적)인 감수성 아래 전개된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오징어 게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으로 실패한 중년 남성이 어릴 적 자신이 즐겼던 게임(작중 등장하는 게임의 대부분은 중년 남성들에게 익숙한 게임이다)을 하며 그동안 발휘하지 못했던 내면의 정의감을 각성하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과정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작품에 등장하는 다른 사회적 약자들, 예컨대 여성, 탈북자, 노인,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는 그 힘을 잃고 지극히 평면적인 서사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중년 남성의 연민을 자아내는 서사가 착실하게 쌓이고, 그들이 내재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판이 깔리는 동안 여성 참가자들은 게임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강한 남성에게 빌붙어 표독스럽게 생존을 추구하거나 주인공을 위해 아름답게 희생하는 정도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여타 사회적 약자를 묘사하는 방식 역시 기존 매체가 그들을 묘사하는 단편적인 방식을 답습한다. 예컨대 이주 노동자 알리의 경우 다른 창작물 속의 이주 노동자들처럼 순박하고 사람을 잘 믿으며, 그러다가 게임에서 패배하여 목숨을 잃는다.

 

<오징어 게임> 전반에 깔린 동아시아적 감수성이 <오징어 게임>만의 특수성으로서 해외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면도 있겠지만('깐부'로 표상되는 사람 사이의 정이나 일부 주연급 등장인물의 배려심과 희생 정신 등), 젠더적/인종적 차원에서 비판할 여지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

 

혹자는 기존 데스 게임물과 차별화되는 <오징어 게임>의 요소들, 특히 신파적인 드라마와 사회 비판적 요소들이 서구 시청자들에게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기서 ‘새롭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인물의 드라마와 사회 비판적인 요소는 과거 서구의 데스 게임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던 요소이며, <오징어 게임>은 이러한 요소를 동아시아적 감수성이 드러나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매개하는 데 성공한 것이지 서구의 데스 게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서구의 초창기 데스 게임에 담겨 있는 드라마성과 90년대 말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일본 데스 게임에 담긴 장르적 문법의 교차가 서구 시청자들이 한국형 데스 게임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혼종적인 발판이 된 것이다. 한국의 ‘독창적인’ 데스 게임 드라마의 이면에는 이처럼 복합적인 문화적 맥락이 숨어 있다.

 

 

[박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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