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운명'은 있을까 [영화]

영화 <이프 온리>와 <동감>으로 보는 운명
글 입력 2022.01.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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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결정, '운명.' 운명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운명이 있다고 믿는 자와 없다고 믿는 자, 그리고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자와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

 

어릴 적 보았던 영화 두 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두 작품은 모두 로맨스 영화이지만, 볼 때마다 사랑보다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더 골몰하게 만든다. 운명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 운명은 사람의 능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인가. 어디까지가 정해져 있는 것이고, 어디까지를 바꿀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이프 온리>와 <동감>은 나를 끝없는 생각의 굴레에 갇히게 만드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프 온리>의 이안이라면, 내가 <동감>의 소은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들과 다르게 행한다면 결과를 바꿀 수 있을까. 처음 보았을 때도, 시간이 흐르고 다시 보았을 때도 여전히 정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만 던지게 되지만, 그 시간은 내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프 온리(If Only)>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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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이동하는 타임 리프 소재물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사고로 잃는 꿈을 꾼 이안(폴 니콜스)는 꿈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현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는 데자뷔 현상을 겪게 된다.

 

미래를 바꾸고자 하지만, 깨진 손목시계와 택시 기사를 통해 운명을 거스를 수 없음을 알게 된 그는 사만다(제니퍼 러브 휴잇)과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 평소에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고백하고 아낌없이 사랑을 표현한 그는, 결국 그녀를 대신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던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화의 끝을 알리는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며, 나는 빨갛게 충혈된 눈을 꾹꾹 누르면서 다시는 이 영화를 보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이프 온리>에는 무서운 장면이 나오지 않지만, 당시 내게는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 무섭게 느껴졌다.

 

어릴 적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도, <이프 온리>는 내가 여전히 찾아서 보고 있는 영화 중 하나이다. 멜로 영화를 보고 왜 그토록 무서운 느낌이 들었는지, 다시 보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기도 했다. 아무리 애쓰고 발버둥 쳐도 바뀌지 않는 슬픈 결말은, 당시의 어렸던 내가 감당하기 벅차고 힘든 내용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내게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하기도 했지만, 이처럼 예고된 운명을 피할 수 없는지에 대해 더 큰 감정을 느끼게 했다.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그럼에도 불가능한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운명이라 부르는 것인가, 생각했다.

 

영화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오면서 멈춰진 내 머릿속 생각과 질문들은, 시간이 지나고 보게 된 또 다른 영화를 통해 다시 발현하기 시작했다.

 

 

 

<동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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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옛날 영화를 보고 싶은 밤이었다. '<클래식>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영화'라는 후기를 보고 충동적으로 선택한 <동감>은, 늦은 밤 나에게 아련한 감수성 한 움큼과 애틋한 여운 한 줌을 양손에 쥐여 주었다.

  

영화는 두 시대를 그린다. 1979년에 살고 있는 소은(김하늘)과 2000년에 살고 있는 인(유지태)는 우연히 무선기를 통해 교신하게 된다. "2시에 시계탑 앞에서 만나요."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것을 알게 된 그들은 만남을 약속하지만, 당연히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서로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누군가에게 쉽게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서로에게 털어놓으며 가까워진다.

  

21년이라는 시차를 뛰어넘어 교감하는 그들의 모습은 풋풋하고 사랑스럽지만, 과거와 미래의 연결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아니, 혼란스럽다 못해 잔인해진다. 상상도 하지 못한 미래를 듣게 된 소은은 결국 자신의 절절한 사랑을 포기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인은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여운 때문일까,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나는 자꾸만 만약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다른 결말을 상상했다. 그들이 무선기로 통신하지 않았다면, 그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혹은 소은이 사랑하는 상대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미래는 바뀌었을까. 그녀의 사랑은 이루어졌을까.

 

이러한 나의 사색에 대해, <동감>은 대사를 통해 대신 대답해주는 듯하다. 소은과 자신의 부모님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알게 된 인이 무선기를 던지려 하자, 학교 경비원이 건네는 대사이다. "고치려는 폼이 아닌데. 왜? 던져서 부숴버리려고? 쉽게 안 없어질 거다. 어서들 가라.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더라고."

  

그렇다면 나 역시 미래를 알게 되면 소은처럼 현재의 사랑을 포기하게 될까. 시간이 흐르면서 내 생각도 점차 변해갔다. 과거의 나는 소은과 같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결국에 실패한다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 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실패가 아니며 헤어진대도 지금의 사랑과 행복을 놓칠 수 없다'로 바뀌었다.

 

*

 

영화 <이프 온리>와 <동감>을 통해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운명은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자유 의지로 만들어 가는 것인가. 아직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든 질문이지만, 영화에서처럼 운명은 바꾸기 힘들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매 순간 고민해서 내리는 '선택',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 그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결론'이라면, 너무 허탈하고 허무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운명은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의 답을 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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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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