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본배우 덕질 8개월 차, 일본 연예계 특징 11가지 [문화 전반]

가끔은 덕질이 세계를 넓혀주기도 한다.
글 입력 2021.12.2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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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 반일을 넘어 혐일에 가까웠던 내가 일본연예인을 ‘덕질’하게 됐다. 그간 의식적으로 불매했고 애초에 관심도 없었던 일본산 컨텐츠들을 근 8개월 간 누구보다 깊게 경험(과몰입)했다는 뜻.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생활·문화적 측면에서 한국과 가장 큰 유사성을 띈 나라. 한때 한국 연예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던 나라. 2021년 현재 한국과 일본 연예계는 얼마나 비슷하고 또 다를까. 시장경제논리가 아닌 지극히 ‘팬(덕후)’의 입장에서 ‘팬질(덕질)’을 기반에 둔 생생한 차이점을 적어보고자 한다.


(지극히 필자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어 일본 ‘배우’에 해당하는 부분만 적어보도록 한다. 아직 J-POP 시장은 잘 모른다는 소리.)

 

 

일본연예계차이_8.jpg

(일본의 거장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 中)

 

 

 

1. 일본의 영화·드라마 수준은 생각보다 낮다.


 

1930~40년대 식민 지배를 받던 조선이 겨우 영화를 시작할 무렵 이미 독자적인 스타일로 세계적 인정을 받았다는 ‘내가 배웠던’ 일본 영화… 같은 건 아주 먼 얘기였다.


일본 영화·드라마의 질이 저하된 건 제작 환경의 문제가 크다. 대기업 규모의 소속사가 작품에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배우 위주로 각본이 수정된다. 우리 배우는 노출을 하거나 키스를 하면 안 되고, 정치적 사상이 담긴 연기를 하면 안 되며(이후 광고 캐스팅에 문제가 되니까), 몇 시간 이상의 분량이 나와야 한다―라는 ‘사무소 NG’(요구)에 따라 각본이 점점 밋밋하고 억지스러워 진다는 것이다.


또 일본 배우들의 스케줄은 1~2년 전부터 꽉 차있기 때문에 소속사는 되도록 단기간에 촬영을 끝내고 싶어 한다. 양질의 촬영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진다. 심한 경우 ‘시간제 계약’을 맺어 특정 배우의 촬영을 제한 시간 안에 끝마쳐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더불어 해외시장을 겨냥하는 한국과 달리 자국시장을 주로 하기 때문에 예산의 규모가 작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 (일본의 논픽션 작가 타사키 켄타의 칼럼 ‘일본 드라마가 지난 10년 만에 급속히 어색해진 진짜 이유’를 참고)


내가 왜… 이걸 봐야하지…? 하는 현타를 겪으며 해당 사실을 경험 했는데 실제로 서사와 이미지가 모두 조악하다. 특히 드라마의 경우 1회 차 싱글 드라마를 이틀 만에 찍고 방영해 버리기도 한다. 그 작품의 수준은… 좀 많이 너무 했었다.


 

 

2. 촬영은 짧고 작품은 잦다.


 

일본의 배우들은 소처럼 일한다. 쉬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늘 무언가 일을 하고 있다. 한국처럼 한 작품 끝내고 몇 달 씩 푸욱 쉬는 건 먼 나라 얘기다(물론 진짜 멀긴 하지만).


그러니 근무하는 물리적 시간에 비해 연기의 질적 깊이가 턱없이 얕다. 한 배역에 길게 매달리지 않고 금방금방 감정을 소모해야 한다. 인물의 내면을 체화할 여유는 없다. 정형화된 연기―굳이 힘들일 필요 없는 연기―가 반복된다.


문제적 시스템은 매체의 퀄리티를 포함해 배우의 연기적 한계마저 측정해 버린다. 충분히 훌륭한 인재들이 많음에도 그것을 여유롭게 개발할 환경이 적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3. 만화(망가) 원작이 많다.


 

만화적(망가적) 연출도 많다. 이는 오래 전부터 형식화 되어 인물의 보이스오버(나레이션)와 배우의 과장된 연기를 필수로 한다. 일본 영화·드라마에선 조주연 대부분의 심리 진술을 전지전능하게 엿들을 수 있고, 에↗에↘? 하는 감탄사도 이백퍼센트 확률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극적인 연기, 대부분 코믹으로 이어지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

 

 

 

4. 일억 이천 명의 흥선대원군


 

일본의 인구는 일억 삼천 명인데 그 중 일억 이천 명이 흥선대원군이다- 라는 푸념을 본 적이 있다. 무슨 소린고 하니 그만큼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란 것이다.


이(놈)들은 글로벌니폰을 외치면서 온통 바보들뿐이라는 게 팬들의 결론이다. 전 세계 대중들 우리의 위대한 컨텐츠를 보세요~! 하면서 정작 보려면 로그인이 필요하고, 그 로그인을 위한 회원가입을 하려면 일본 현지 집주소와 일본 이메일이 필요하다. 멋지구리한 대작 액션영화가 곧 개봉합니다~! 다들 예고편 먼저 보실래요? 해서 연결된 유튜브 링크를 눌렀는데 국가제한으로 일본 내에서만 볼 수 있다. 이 무슨…


누구보다 글로벌을 부르짖으면서 그 누구보다 폐쇄적이고 경계심 많고 비효율적인 성향. 팬들의 통곡소리가 들린다. 특히 한국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플랫폼 유튜브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것도 특징 중 하나.

 

 

 

5. 소속사 단위의 유료 멤버쉽


 

몇 십 년 전만 해도 일본 연예인들이 소속사를 이적하는 건 암묵적 금기였다고 한다. 소속사 이적은 은퇴 후 재데뷔를 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였다고. 지금은 많이 자유로웠지만 여전히 그 문화가 남아 ‘소속사 단위’ 컨텐츠가 많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소속사 자체 블로그나 영상 플랫폼을 운영하고, 정기구독 결제 후에만 볼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돈을 내는데도 높은 확률로 사이트 인터페이스는 매우 구리다. 어떤 것은 온라인 파칭코와 같은 현란함을 뽐낸다. 다소 촌스러운 사이트 디자인, 소속사 별로 파편화된 플랫폼, 근데 사진 몇 장 올려주는 것도 돈을 내야만 보여주는 시스템. 일본의 폐쇄성이 조금이나마 느껴지시나요? 전 이미 매달 1780엔 씩 뜯기고 있습니다. 결제 날마다 환율이 낮기를 바랄 뿐…

 

 

 

6. 해금 解禁


 

일본 연예계의 가장 큰 특징,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흥미로운 특이점은 역시 ‘해금’ 문화다. 작품 방영 직전까지 그에 대한 모든 정보를 기밀로 부치는 것인데, 크랭크인업은 물론 캐스팅 소식조차 잘 공개하지 않는다.

 

팬들 입장에선 어느 날 갑자기 ‘신작 드라마 , 배우 OOO 출연! 다음 달 방영!’이란 말을 듣는 것이다. 그럼 어…? 저 스틸 컷 보니까… 작년 여름에 라방(라이브방송) 해줬을 때 머리 아냐? 저 때 촬영했던 걸 지금 알려준다고? 근데 당장 다음 달 방영이라고??? 하는 일이 쉴 새 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심지어 이 해금은 결혼 발표에도 적용된다. 십 수 년 단 한 번의 접점도 없었던 두 남녀가 우리 연애해요 X, 우리 결혼해요 X, 우리 저번 주에 결혼했습니다^^ 라고 예고 없이 통보한다. 일본 연예인을 좋아하려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강인한 심장이 필요하다.

 

 

 

7. 성도덕관념 결여


 

‘성진국’이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성性에 관대한 나라. 그만큼 성도덕 관념이 많이 낮다고 느끼곤 한다. 최근 봤던 드라마에선 권력형 성폭행 피해자가 억지로 옷을 벗는 장면을 아주 관음적인 시선으로 찍은 것이 나왔다. 2차 가해는 둘째 치고, 문제는 이런 컷들이 관객을 위한 ‘서비스컷’ 개념으로 제공된다는 것.

 

잘생긴 남배우가 벗으니 좋지? 너네 이런 거 좋아하잖아~ 내가 벗겨줄게~ 라는 다분한 의도에 기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가 인격모독 당하는 장면을 보고 흥분하겠는가. 대중 컨텐츠로서의 윤리, 성도덕관념의 결여를 느끼는 경우가 빈번했다.

 

 


8. 화보 홍수


 

이 와중에도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바로 ‘잡지’가 많다는 것. 여전히 지류시장이 활발하기 때문에 매월 4~5개 정도의 화보와 인터뷰를 접할 수 있다. 어느 정도가 인기가 있는 배우라면 단독 화보집을 내는 일도 빈번하다. 다양한 컨셉으로 순간을 포착하는 정지사진에 매우 매력을 느끼는 나로서는 유일하게 좋은 점이라 꼽을 수 있겠다. 최고의 떡밥!

 

 

일본연예계차이_9.jpg

 

 

 

9. 변화를 두려워하는 민족 심리


 

메일에 PDF를 첨부하는 게 어려워 아직도 팩스를 사용한다는, 팩스를 금지하자 반발했다는 일본의 공무원들. 변전소 화재로 밝혀진 공공기관의 윈도우2000 사용 현황. 모두 2021년 최근에 벌어진 일이다. 투표를 위해 1만여 개의 연필을 직접 깎아볼까 했다는 발상, 경험컨대 일본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한때 미국을 넘어설 강대국으로 뽑히던 일본이 버블경제로 폭삭 주저앉았던 원인으론 ‘자만’과 ‘폐쇄성’이 뽑히곤 한다. 현재에 대한 교만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나라를 고착화 시켰고 세계적인 도태로 이끌었다는 것. 이러한 기조는 일본 전체에 여전히 깔려있는 듯하다. 왜냐면 그 태도에서 비롯된, 그런 사람들에게서 파생된 문화 컨텐츠가 그것을 너무나도 잘 증명해주고 있으니까.

 

 


10. 탄탄한 자국 시장


 

그럼에도 일본은 여전히 ‘오타쿠(덕후)’의 파워가 강한 곳이다. 질은 좀 떨어지더라도 양적으론 풍족한 내수시장, 유료화에 익숙해진 자국 소비자들. 오랜 시간 적립된 시스템이 남들 눈엔 답답하지만 꽤나 착실히 굴러가는 듯하다. 여전히 세계 음악시장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J-POP을 생각한다면, 역시 자국시장의 규모를 무시할 수 없다.

 

 

일본연예계차이_2.JPG

('그' 문제의 소속사 멤버쉽 사이트)

 

 

 

11. 덕질은 상대의 문화를 이해해보는 것이다.


 

일본 배우를 좋아하며 처음으로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의 본업인 영화·드라마의 제작 환경을 살펴보는 건 물론, 도시락 먹는 사진 한 장 때문에 한일 도시락 문화에 대한 비교연구 논문을 찾아 읽기도 했었다.


가끔씩은 덕질이 세계를 넓혀주기도 한다. 가장 순수한 호감과 열성적인 호기심으로 타인에 귀 기울인다. 특히 그것을 ‘직접 체험’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깊이에 차이는 있겠지만 활자화된 책을 읽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보고 싶은 영상이 눈앞에서 제한 당하는 답답함, 2021년에 360p짜리 저화질을 보고 있는 어이없음 같은 것을 언제 겪어볼 것이냔 말이다.

 

솔직하고 객관적인 심정으로 오늘의 결론은 결국 이렇다. 생각보다 K-컨텐츠의 수준은 매우 높으며 그 다양함은 이루 말할 데가 없습니다. 그러니 일본 것을 멀리하고 한국 것을 보는 게 훨씬 낫습니다. 하지만 덕후는 이미 발목이 잡혔고… 그들이 귀화해주면 안되나? 하는 쓸모없는 상상만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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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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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ycwsm
    • 가감없는 서술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ㅋㅋㅋㅋ 콘텐츠 하나에 꽂혀 덕질하다가도, 객관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멀어지고 싶은 일본 문화에 공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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