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

글 입력 2022.01.03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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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꾸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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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에 가장 길다는 동짓날 밤도, 이유를 알 수 없이 마음이 붕 뜨는 크리스마스도 지나갔다.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해가 밝아올 이맘때 즈음이면 굳이 다짐하지 않아도, 자연히 지나간 계절과 그 안의 내 모습을 되짚어보게 된다.


해마다 아쉬운 마음, 이기기 어려웠던 순간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걷게 한 사소한 용기들이 쌓인다. 기쁨과 서러움, 타는 마음과 웃음이 파도치던 날들에 어떤 것을 얻었고, 잃었는지를 되돌아본다. 새해의 다짐은 언제나 그랬듯 쉽게 지기 마련이지만, 생각보다 꾸준히 이뤄온 것들도 있기 마련.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더라도, 꾸준히 해온 것에는 알게 모르게 농도 진한 마음이 담겨있다.


2021년 나의 꾸준함은 글쓰기였다. 무엇보다 문화예술에 관한 글을 쓰고 싶어서 아트인사이트를 찾아왔다. 문화는 회화이기도, 클래식이기도 했고, 여행의 모습을 띄기도, 걷는 행위를 넘나들기도 했다. 다양한 범주의 문화를 주마다 떠올리면서 글을 담아왔다. 오래전 즐겨 찾던 블로그도 다시 열었다. 짧고 길게, 날마다 떠오르는 생각과 일상을 올렸다.


글쓰기는 과연 지난해 시작한 취미였을까? 실은 그렇지 않다고, 짧은 일생에 걸쳐 가장 꾸준히 해온 일이라고, 깨달은 순간이 있었다. 글은 형태와 주제를 달리했을 뿐, 이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글쓰기가 주는 즐거움과 자기만족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발견과 다정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선생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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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고요했던 작년 겨울, 나는 무척이나 가고 싶었던 회사의 면접 기회를 얻었다. 코로나 시국답게 떨리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켜고, 화상 면접실에 입장했다. 두 명의 면접관은 나에 대해 천천히 질문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지원 직무나 회사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가치관을 형성한 일에 대해, 나의 평소 모습에 대해서만 묻는 면접이었다. 물론 ‘인성 면접’이라는 이름 하에 개인의 성향과 성격, 취향에 대해 묻곤 하지만, 이렇게 집중해서 나의 역사를 묻는 면접은 처음이었다.


1시간에 다다르는 자기소개 끝에, 마지막으로 ‘오늘의 나에게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롤 모델로 유명인을 생각해두긴 했지만, 내 주위 가까이에서 내 생각과 가치관에 영향을 준 사람? 예상하지 못한 당황스러운 순간을 만나면 의외로 진심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는 걸 그날에 알았다.


나도 모르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중국의 작은 도시에서 살았을 때,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이 있었다. 아직 낯설고 어색한 환경에서 천천히 적응하게 도와준 사람.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발표할 친구를 찾기 위해 연필을 고르곤 하셨다. 연필꽂이에 가득 담긴 연필 한 자루, 한 자루에 반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었고, 뽑아든 연필의 밑동에 있는 이름이 그날의 발표자가 되는 식이었다.


그때에 나는 국어시간에 쓴 글을 발표하고 싶은데 선뜻 나서기엔 용기가 나지 않은 날들이 많았다. 수줍음이 많아 손을 드는 게 망설여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신중히 고르는 연필에 내 이름이 있기를 바라며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꼭 원할 때마다,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정말 신기한 우연이었다. 하지만 꼭 우연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선생님과 헤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복도를 지나치며 우연히 본 한국과 중국의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글쓰기 공모전이 있었다. 조금 망설이던 찰나, 선생님은 나를 불러 그 공모전에 나가보면 어떨까 물으셨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선정 도서였던 <좁은 문>을 찾아 헤맸는데 외국의 작은 도시에서는 어디에도 그 책이 보이지 않았다. 아쉽지만 참여하긴 어렵게 되었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런데 며칠 후, 선생님이 다시 찾아오셨다. 아들의 친구의, 누군가의 누군가를 넘어 빌려온, 글씨가 큼지막한 그림책 <좁은 문>을 손에 쥐어주셨다. 그 책으로 나는 장려상을 받았다. 같은 반 친구는 더 높은 순위의 상을 받았는데, 혹시 그 때문에 마음이 상했을까 염려하며 나를 불러 세우던 선생님, 문장 그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받은 마음은 아직 남아있다.


면접의 공식처럼 두괄식 문장도, 깔끔한 핵심이 담긴 답변도 아니었다. 면접이라는 것도 잊었는지 내 이야기에 빠져 답을 이어갔는데, 순간 면접관도 면접을 떠나 나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온 모습이었다. 누군가 귀 기울여 들어준 그 날, 나는 선생님이, 그때 그 시절이 내 삶에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만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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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알게 모르게 내 글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논술 전형이라면 당연히 대학에 붙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믿음 덕에 합격한 것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나는 글과 관련된 수업들을 좋아했다. 논문을 요약하는 것이든, 내가 탐구한 주제를 담는 것이든, 기왕이면 레포트 과제가 있는 수업이 좋았다. 인권과 예술에 대해, 나의 경험과 생각에 대해 자유롭게 쓰는 과목을 듣는 것이 학교생활의 재미였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나의 글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 비평문을 쓰는 수업을 들었는데, 교수님은 이른바 ‘쁠몰’ 수업으로 A+, B+, C+ 로만 성적을 넉넉히 주시기로 알려진 수업이었다. 당연히 A+ 일 거란 자만심에 차서 수업을 들었고, 성실히 학기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적표엔 B+, 어떤 부분이 부족했을까 교수님을 찾아갔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사실 나는 C+를 받아야 했는데, 좋게 줘서 B+였다는 것이다. 대단한 글 재주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내 글이 부족하다고 직접 들은 건 처음이라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글이란 주관적이고, 어떤 글을 어느 순간에 읽는지에 따라 아주 달라진다는 것을 알다. 그럼에도 그때 교수님의 말은 이어진 학교생활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글과 글쓰기에 대해 힘이 쪽 빠진 날들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지난해부터 다시 아트인사이트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다시 누군가에게 평가받지 않는 나의 글을 써보고 싶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 막막함이 느껴지는 순간도 많았지만, 대체로 글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어떤 글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떤 글은 저 날엔 어떻게 저 글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두고두고 마음에 들기도 했다. 글을 꾸준히 쓰다 보면 그 안에서 나를 만난다.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날에 행복한지, 무엇은 참을 수 없고, 숨기고 싶은 마음은 무엇인지.


아주 매끄럽게 흐르는 문장, 어려운 단어 하나 쓰지 않고 감동을 주는 문장, 수많은 문장에 질투를 느끼곤 했지만, 나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차분한 마음으로 계속하기로 한다. 글은 내가 가장 솔직한 나일 수 있는 언어이니까. 누군가에게도 말하고 싶다. 올해엔 짧은 글이라도 조금씩, 꾸준히 쓰면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좋겠다고.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자주 바뀌는 시대에 내가 쓴 글로 나의 시간에 머물러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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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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