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샤갈'이라는 '이야기'속으로 - 샤갈 특별전

샤갈이 들려주는 '성서' 이야기
글 입력 2021.12.2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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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피카소, 마티스 등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은 다채로운 색감과 몽환적인 화풍을 바탕으로 삶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화가다.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샤갈의 전시는 '성서'라는 큰 주제 아래 '샤갈의 모티프 (Motif of Chagall)', '성서의 백다섯 가지 장면 (105 scenes of Bible)', '성서적 메시지 (Biblical Message)', '또 다른 빛을 향하여 (Towards Another Light)' 이렇게 4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샤갈은 1930년 '성서'에 관한 작업을 의뢰받았으며, 이를 시작으로 유대인의 운명과 고난에 대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이러한 샤갈의 열정은 말년까지 이어졌는데, 특히 1973년 성서적 메시지를 주제로 한 국립 샤갈 미술관을 니스에 건립하면서 평생의 꿈을 실현했다.

  


[꾸미기]201. 에펠탑의 연인들, 최종본.jpg

 

 

 

파리, 영감이 되다



 

1910년 파리에서 저는 반고흐와 쇠라에 열광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저를 놀라게 했고, 시장, 나무 위, 구름과 사람들 사이로 떠도는 저에게 이 도시의 분위기는 생동감이 넘치는 팔레트와 같이 삶 그 자체처럼 느껴졌습니다.

 


1911년 스물네 살이 되던 해 처음 러시아를 떠난 샤갈은 파리에 도착하여 야수파와 입체파에 이르는 모더니즘 회화를 습득하고, 이름 또한 프랑스식 이름인 마르크 샤갈(Marc Chagall)로 개명하면서 파리에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이는 파리가 그에게 얼마나 큰 영감을 주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샤갈의 시선으로 바라본 다양한 파리의 모습은 따뜻하고 다채롭다. 파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에펠탑과 노트르담 성당을 주제로 하면서도 연인, 아기와 엄마 같은 '관계'를 그림에 함께 구성한 것이 샤갈의 그림을 한층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특히 휘고, 구부리고, 흩날리는듯한 그의 독특한 화풍은 마치 어디선가 한 번쯤 봤을 법한 '가족 동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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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과 '암'의 아이러니



 

어렸을 때부터 저는 성서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그것이 역대 가장 위대한 시의 원천이라고 생각해 왔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구약 성서에서 선별한 105개의 장면을 에칭으로 만든 '성서(Bible)' 연작은 성서의 내용을 화려하게 꾸미거나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고 샤갈의 삶 속에 마주했던 일상을 주제와 함께 작품에 차근히 녹여냈다.

 

작품의 표현 기법으로 '에칭(etching)' 기법을 선택한 것이 매우 절묘하며, 방대한 작품의 양에서 알 수 있듯이 노아의 방주, 모세의 기적, 솔로몬의 지혜, 골리앗을 이긴 다윗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서의 내용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들까지 자세하고 섬세하게 즐겨볼 수 있다.

 

'에칭화'란 판화의 한 종류로서 금속판을 산으로 부식시키는 에칭의 방식으로 찍어 낸 그림인데, 종이에 연필로 직접 그리는 것처럼 선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선의 굵기와 명암의 차이만으로도 작품에 집중시키고, 때로는 새하얀 여백까지도 작품의 일부가 되어 의미를 가지게 하는 샤갈의 탁월한 예술적 능력이 돋보였다.

 

또한 겹겹이 쌓인 선이 흐릿하고 부정확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고 뚜렷하게 보이는 묘한 아이러니가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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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석과 숨은그림 찾기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처럼, 나는 이젤에 못 박혔다

 

  

샤갈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치즘으로부터 퇴폐미술가로 탄압을 받았다. 1930년대 후반부터 유대인의 학살을 목격해야만 했던 그는 미국으로 망명해서도 전쟁과 유대인의 운명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성서에서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유대인의 희생과 연관 짓는가 하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로부터 해방시키는 탈출기(출애굽기) 일화를 나치의 핍박으로부터 해방된 유대인들로 재해석하는 등 성서 안의 인물들을 자신의 인생과 결부 시켜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하였다.


무엇보다 작품을 관람하면 할수록 '재해석'이란 말이 깊게 다가왔다. 물론 '재해석'에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샤갈의 작품 중에는 유독 한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들이 많았다. 비록 인간의 시야는 제한적이지만, 시간을 다르게 하고 공간을 뒤틀면서 한계를 뛰어넘어 '재해석'하려는 그의 노력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집중해서 그의 시선을 따라가야 한다. 그저 집중되는 곳만 단순하게 바라보다가는 그가 작품 속에 숨겨놓은 또 다른 재미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꾸미기]208. 또 다른 빛을 향하여.jpg

 

 

 

샤갈의 시그니처



 

만약 제가 유대인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예술가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예술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까지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샤갈은 문학적 감수성도 풍부해 직접 쓴 시와 삽화를 엮어 시집 '시(Poemes)'를 출간하기도 했다.

  

특히 샤갈이 일흔여덟이 되던 해에 쓴 시인 '또 다른 빛을 위하여'는 그의 마지막 작품에도 동일한 제목을 붙인 것으로 미루어볼 때 자신의 노년 작품활동을 신에게 헌사한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게다가 말년에도 '성서'에 대한 탐구를 꾸준히 이어갔다고 하니 '유대인이 아니었더라면 예술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성서'는 샤갈의 예술 창조의 원천이자, 시그니처(signature)였다고 할 수 있겠다.


강렬한 색채와 자유분방한 배열, 몽환적이고 독특한 화풍 등 그와 그의 작품을 수식하는 말은 많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삶과 경험을 재료 삼아 한계를 두지 않고 오랫동안 수많은 작품 활동을 했다는 점이 내겐 그 모든 수식어보다 더욱더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생애 마지막까지 예술에 대한 꾸준한 사랑과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냈으니 샤갈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화가이자 예술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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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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