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파이더우먼 - 루이스 부르주아 [미술/전시]

글 입력 2021.12.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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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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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 배경화면은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엔딩 장면이다. 4년째 꿋꿋이 내 휴대폰을 지키고 있다.

 

이 장면에는 피터에게 벤 삼촌이 남긴 메시지가 담겨 있다. “네가 가진 능력을 세상을 위해 쓰렴” 아이언맨에 빠져 스파이더맨 시리즈에는 다소 소홀했다가 이 대사 한 줄에 꽂혀 1대부터 3대 거미까지 처음부터 정주행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속 벤 삼촌의 대사는 그렇게 내 좌우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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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노 웨이 홈>이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그 어떤 시리즈보다 무모하고 개인적이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이 피터와 친구들의 대학 입시 때문인 것만 봐도 그렇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친절한 이웃’인 어린 영웅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초능력을 가진 영웅에 열광하는 이유는 평범한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세계를 구하고, 쉽게 마주칠 수 없고, 시각적으로도 동경할 만큼 멋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마블 세계관에서 가장 ‘인간적인’ 영웅임에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단순히 가깝고 ‘친절한 이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스파이더맨, 그리고 피터 파커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관객 사이에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영화는 비로소 관람객에게 영향을 준다. 세계를 넘어 우주를 구하는 영웅도 사랑, 우정, 생계를 걱정한다는 사실이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과 위로가 되어 주는 것이다.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긴 거미는 영화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이다. 거대한 거미 모양 청동 조각인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이야기부터 알아야 한다. 그녀의 부모는 파리 근교에서 직물 수선 공방을 운영했다.

 

그런데 공방 대부분의 일은 어머니의 몫이었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들과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부르주아의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그녀의 아버지는 자식들의 영어 가정교사와 바람이 나기까지 한다.

 

병든 몸을 이끌고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와 이를 외면하는 아버지의 파렴치한 모습은 부르주아에게 배신감을 넘어 평생 잊지 못할 상처가 됐다. 이런 그녀에게 예술은 자기 위로의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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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강철과 대리석, 927.1x891.5x1023.6cm, 개인 소장, 뉴욕

 

 

프랑스어로 엄마를 뜻하는 <마망(Maman)>은 철판 조각을 이어 붙인 거대한 거미 조각이다. 실타래같은 몸통과 아랫배에 철망을 두르고 그 안에 하얗고 둥근 대리석을 넣어 알을 품은 모양을 표현했다.

 

9m가 넘는 거대한 거미는 바로 그녀의 어머니를 상징한다. 어머니의 훌륭한 직물 수선 실력은 마치 끊어진 거미줄을 묵묵히 다시 짜는 거미와 같았다. 또한 그녀는 “이 작품은 나의 어머니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아버지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 어머니에 대한 연대감 등 유년의 기억을 불러와 자기 알을 보호하려는 모성과 경외감, 두려움을 거대한 크기로 표현했고 상대적으로 가늘고 약한 다리는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거미 조각의 거대한 크기와 가늘고 약한 다리가 상징하는 바는 인간사에 대한 모순을 대변해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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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498~14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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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Motherhood, 1886년

 

 

미술사에서 ‘모성애’는 특별한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긴 작품은 없었다.

 

일례로 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에서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은 작품을 보는 이도 함께 뭉클하게 만든다. 또한 르누아르의 Motherhood에서 아들 피에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아내 알린 사리고의 모습은 사랑하는 아이를 돌보는 아내를 바라보는 르누아르의 행복한 일상을 엿보게 한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모성애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이 들어 있다기보다 모성애의 보편적인 모습만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보고 받은 인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반면 ‘모성애’라는 정서에 개인사가 들어간 <마망>은 달랐다. 예술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은 작품에 깊이를 더하고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뉴욕 거리를 웹스윙으로 나아가는 엔딩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볼 때마다 전율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번 <노 웨이 홈> 속 장면은 유난히 여운이 길었다. 더 이상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지원을 받을 수 없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잊혀졌지만 그래도 피터는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으로서 시민을 구하는 사명을 다하는 미션을 묵묵히 수행해 나간다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또 눈 내리는 화려한 뉴욕 도심의 모습은 홀로 남은 피터의 고독감을 극대화시켰다. 이처럼 같은 장면이라도 캐릭터의 이야기가 어떻게 담기느냐에 따라 울림이 다르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이를 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때 예술은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이야기는 본인의 삶에 대입된다. 하나의 이야기를 접해 각자의 삶에 적용시켜 또 새로운 이야기를 파생시키는 것. 이것이 문화 예술이 가지는 가장 큰 힘이다. 그리고 이를 응원 삼아 나만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가고 싶다.

 

무모한 일에 ‘그래도 해봐야지’라고 답하는 피터와 친구들처럼, 상처 가득한 유년 시절을 재료 삼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부르주아처럼 마주한 위기에 잘 대응하고 다가오는 기회는 잘 맞이하는 2022년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올 해 남은 일주일을 보내고 싶다.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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