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필연적 공간과 우연적 작품들 - 로이 리히텐슈타인 展 [전시]

글 입력 2021.12.24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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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는 고고하고 숭고한 위치에 있던 예술의 지위를 대중의 곁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20세기 초반의 모더니즘 미술이 예술이 인류 사회의 불합리성과 파괴성을 타파하기 위해 인간성으로부터 이탈하려고 한 것이라면, 그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은 너무 고상해져서 인간으로부터 멀어진 미술을 다시 대중의 곁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벤야민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모더니즘 미술은 작품에 아우라를 발생시킨 것이고,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작품으로부터 아우라를 박탈시킨 것이다. 미술과 아름다움의 상아탑적 질서를 붕괴시키고 모두가 향유하고 간직할 수 있는 미술사적인 맥락 속에 팝아트가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삶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 위치하고 있다. 1923년 맨해튼에서 태어난 그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입체주의와 추상조형주의에 대해 공부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발 딛고 사는 현실을 그리고자 했던 그는 추상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세상의 이야기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담아내고자 했고, 여기서 그의 전형적인 벤데이 점(Benday dot) 기법이 등장하게 된다.

 

당대 미술계에서 유행했던 추상미술은 붓과 캔버스의 공간에서 창작되었지만, 당시 사람들이 매일 접하던 것은 신문이나 잡지 같은 인쇄물들이었다. 작품에 현실을 담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인식 체계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이 필요했고, 리히텐슈타인은 인쇄물에서 명암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벤데이 점을 자신의 작품에 활용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대중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확장하기 시작했고, 뒤따라 더 다양한 미술 양식들로 리히텐슈타인의 미술 생애가 채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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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식 인쇄물에서 볼 법한 수많은 벤데이 점들을 보라.

도시적이고 차가운 여인의 시선이 오히려

만화적이게 느껴지지 않는가.

 

 

리히텐슈타인이 활동을 시작했던 1960년대에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도, 팝아트에 대한 담론의 초점은 아무래도 앤디 워홀에게 쏠려 있는 것 같다. 대중 예술에 있어서 앤디 워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팝아트는 실제로는 그보다는 더 넓은 미술적인 차원에서 전개되었으며 다양한 미적 감각을 다루고 있는 것이었다. 데이비드 호크니나 키스 헤링 등 우리 가까이 존재하는 그들의 작품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리히텐슈타인이 있다.

 

상업적 인쇄물의 형식들, 재질감 없는 붓 터치 형상들, 추상 작가들에 대한 오마주 등, 그가 선보인 작품들은 대중에게 새로운 미술적 감각을 선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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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에 대한 재해석이 나타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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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에 대한 오마주


 

이번 전시는 일생에 거쳐 변화하고 발전한 리히텐슈타인의 미술 세계를 담고 있다. 초창기의 만화적이고 선전적인 포스터들에서 시작하여, 전통적인 붓터치의 이미지에서 재질감을 제거한 평면적인 그림들, 더 나아가 피카소와 몬드리안을 재해석한 작품들까지 그의 작품 세계는 순수미술의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를 유랑하는 느낌을 준다.

 

작품의 감각적이고 감상적인 장면들을 평면화, 인쇄물화하는 기법은 감정을 작품에서 제거해버리는 느낌을 준다. 반대로 선전적인 메시지에 색채감 넘치는 벤데이 점을 활용할 때는 어쩐지 묘한 미적 감각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작업은 미술에 일상성을 침투시키고 일상에 미적 감수성을 발생시킨다.

 

한편 예술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각각의 작품에 깃든 리히텐슈타인 개인의 이야기를 만나보는 것도 하나의 매력이다. 미키마우스를 좋아하는 아들의 말에서 얻은 영감들, 혹은 올림픽 포스터를 비롯한 국제적 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들... 이러한 것들은 시대사적인 접근으로 포착할 수 없는 온전한 개인의 이야기이다.

 

팝아트 경향의 작가 중 한 명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인간성 넘치는 개인의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이번 전시를 만나본다면, 그의 작품들이 마냥 키치적이고 엉뚱하게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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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었던 각각의 작품은 정치사회적인 흐름과 리히텐슈타인 개인의 이야기의 교차점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개별 작품의 매력은, 단순한 시각적 분석이나 역사적, 개인사적 접근만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필연처럼 보이는 각각의 흐름들의 우연적인 완성품으로서 각 작품의 총체적인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리히텐슈타인에 관한 모든 것이다. 그 속에서 작품들의 매력을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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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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